유방암 환자의 유쾌한 하루 -1

한 건 했습니다... 진작 이러고 살걸~

등록 2007.07.04 11:35수정 2007.07.1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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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치료를 마다하고 한방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벌써 1년 6개월입니다. 3년 전 수술한 유방암이 1년 반 전에 재발했으니 유방암 환자로 사는 지도 5년이 되어갑니다.

"몸은 자연이니 자연의 섭리에 따라야…."

나의 지론과 맞아떨어지는 한의사의 처방에 '아! 금방 죽지는 않겠구나∼' 약간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한의사는 우리 부부 앞에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암 치료 효과를 보려면 다섯 가지가 합쳐져 백 프로가 되야 합니다. 음식 20%, 약 20%, 운동 20%, 마음 20%, 그리고 가족의 도움 20%입니다."

속으로 환호를 질렀습니다. '음∼ 뭐∼ 이 정도라면∼.' 긴장 속에 치료를 받던 3개월은 암세포가 약간 줄어들면서 마음이 들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암세포가 내 인간성을 떠보는 건지 컸다 줄었다 하면서 두 번째 여름을 맞고 있습니다.

한방치료 10개월이 지나면서 몸무게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목욕탕에 갈 때마다 1킬로씩 꾸준히 빠지더니 6킬로가 빠진 후부터 더는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돌아다니니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앙상한 제 다리를 볼 때마다 아프리카 난민 같다며 가슴 아파합니다.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죠? 그런데 주말이면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 씩 그 소릴 합니다. 그래도 남편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기에 번번이 웃고 말지요.

평소에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소양인인지라 10여 년 전부터 운동을 꾸준히 해 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성격이 원만하고 착해서(?) 김치찌개, 된장찌개, 콩나물,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소고기, 닭고기, 꽁치, 고등어, 갈치, 귤, 수박, 참외, 삼계탕, 추어탕은 물론이고 파, 마늘이 든 음식은 절대 먹지 말라는 한의사의 말을 눈물겹게 지키고 삽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남편은 제 치료비를 위해 직장을 옮겼고, 저는 원불교를 만나 행복한 마음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친정어머니와 함께 사니 살림은 어머니가 거의 해 주시고요. 물론 약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습니다.

그런데 왜 병에 차도가 없는 것인지 좀 답답합니다.

'안 되겠어. 오늘은 얘기 좀 해야겠어.'

남편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저녁에 좀 볼 수 있을까요?"

늘 약속이 있는 남편이 좀 얄밉기도 하고 해서 사정없이 문자를 날렸습니다. 물론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약속이 있었는데 당신이 할 말이 있다기에 뭐 좋은 일인가 하고…." 싱글싱글 웃는 남편의 얼굴이 약간은 이방인 같습니다.

"나도 내 건강을 위해 당신만큼 노력하고 있거든. 그런데 아직 마음 편치 않은 게 있어. 자다가 새벽에 눈떴을 때 옆자리가 비어 있으면 기운 빠져. 이 사람, 나 땜에 속상한 마음 술로 풀고 있나 보다 생각하면서도 화가 나. 나 좀 도와줘. 한의사가 밤 9시부터 새벽 3시까지는 꼭 잠자리에 있으랬는데 나 좀 편히 자게 해주라."

목요일 밤에 조근조근 부탁했건만 금요일 밤을 넘겨 토요일 새벽이 되어도 남편의 코빼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새벽 2시 반,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습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악을 썼습니다.

"야∼ 아∼ 이래도 되는 거야? 이렇게밖에 할 수 없어? 정말 치사하다."
"에∼ 곧 들어가겠습니다."


'흠∼ 속 시원하다. 진작 이러고 살걸∼. 그래 내 탓이야. 내가 너무 착했어. 만날 입장 바꿔 생각하느라 나 너무 힘들었어. 이젠 나도 이기적으로 살꼬야∼'

연극배우의 대사처럼 후련하게 내뱉고 나니 별일 없었던 것처럼 스르르 잠이 옵니다.

에해야∼데야∼ 바람 분다. 연을 날려 보자. 동요까지 흥얼대며 잠을 잡니다.
#유방암 #환자 #한방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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