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사! 피서 중인데 집에 물난리라니

[여름휴가 실패기] 피서 중 걸려온 한통의 전화..."집에 물난리났다!"

등록 2007.08.03 15:11수정 2007.08.0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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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잊은 거 없어?"
"없어, 출발해!"
"방안에 불 다 껐어? TV는? 가스는?"
"다 껐어! 출발해, 어∼서."



서울에서 자취를 하던 때였다. 지난 2005년도 여름에 직장에 다니던 나와 친구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한 달 전부터 계획했던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충남 예산의 덕산 스파캐슬. 이곳은 사시사철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아는 사람을 통해 싸게 방을 예약해 여름 휴가지로 선택했다.

목적지가 날씨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놀 수 있는 곳이었으나, 날씨 또한 화창했다. 아니 따사로운 여름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a [덕산스파캐슬 전경] 겨우 방을 얻어 갔으나, 집에 물난리가 나는 바람에 남은 휴가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껏 멋내며 사진도 찍고(오른쪽)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텐데...

[덕산스파캐슬 전경] 겨우 방을 얻어 갔으나, 집에 물난리가 나는 바람에 남은 휴가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껏 멋내며 사진도 찍고(오른쪽)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텐데... ⓒ 김동이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덕산 스파캐슬에 도착했다. 먼저 여장을 풀고 반바지로 옷을 갈아입은 후 곧바로 풀장으로 향했다. 일단 수영복을 입고, 스파를 즐긴 후 바로 옆에 있는 풀장으로 나갔다.

스피드를 만끽할 수 있는 보트를 먼저 타고, 이어서 바다에서 치는 파도와 같은 효과로 만들어놓은 파도 풀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튜브를 타며 마치 바다에나 온 듯한 기분으로 파도 풀을 만끽했다. 그렇게 즐기는 사이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하며 콘도에서 식사와 더불어 술을 한 잔 했다. 술을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자니 하루가 금세 흘렀다.


할머니의 전화 한 통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고 스파를 하러 가려는데 난데없이 전화가 울려댔다.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 전화였다.


"총각! 지금 집에 없어?"
"예, 할머니! 지금 멀리 와 있는데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어제 비 많이 왔는데, 거기는 안 왔나 보네."

비가 많이 왔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내가 서울에서 거주하는 집은 반지하로 언제 물이 넘칠지 몰라 비가 올 때면 항상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지금까지는 잘 지내왔는데, 할머니가 직접 전화까지 한 걸 보니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총각네 집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 집에는 방에 물이 차서 지금 집 치우고 있는데."
"예? 물이 방에 들어왔다고요? 어떻게요?"
"하수관이 역류해서 물이 넘쳤는데 방안까지 들어왔어."
"우리 집에도 들어왔으니까 총각네 집에도 물이 찼을 건데 어쩌지?"
"그럼 큰일인데요. 쌀도 바닥에 있고, 이불, 옷도 다 젖었겠는데요."
"언제와? 내가 주인집한테 얘기해서 문 열고 물이라도 빼줄게."
"고맙습니다. 저희도 지금 올라갈께요. 한 3∼4시간 걸릴 거예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주인집한테 장마 오기 전에 미리 하수관 손보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말 안 듣더니 이게 뭐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지 이게 무슨 일인가! 기분 좋게 휴가 왔는데 물난리가 났다니…. 부랴부랴 짐을 챙겨 서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직 휴가는 하루가 더 남았는데, 겨우 부탁해서 잡은 휴가지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너무 아쉬웠다. 아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집이 물에 잠겼다니 어쩔 수 없었다.

3시간여를 달려 집에 도착했다. 집안에 들어간 나와 친구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은 다 빠졌지만, 거실에는 신발이 흐트러져 있고 바닥에 있던 쌀은 물에 잠겨 먹을 수 없게 되었고 옷과 이불은 전부 다 젖어 있었다.

일단 쌀과 이불, 옷을 밖으로 빼내고, 다른 짐들도 한 편에 쌓았다. 그리고 난 후 장판을 걷어냈다. 이젠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물이 스며든 부분을 말려야 했는데, 이를 위해 결국 보일러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더운데 한여름에 보일러라니…. 근데 방바닥을 말리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쩌냐,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오늘은 찜질방에 가서 자야 되겠다."
"그려, 낼 이면 다 마르겄지."

그러고 나서 밖으로 나와 물에 젖은 쌀을 펴 말리려고 하는데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어쪄? 쌀은 물에 젖으면 밥은 못해 먹는겨."
"그럼 어떡해요?"
"떡이나 해먹어야지. 많이도 나오겠네. 이참에 빌라에 사는 사람들한테 떡이나 돌려."

반 가마나 되는 쌀을 떡을 하라니….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버리느니 떡이라도 해먹어야지.

"한 여름에 떡 잔치하게 생겼네" 하고 하소연하고 있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내려와서는 미안하게 됐다며 자기네 쌀하고 바꿔먹자고 했다.

"괜찮습니다. 이참에 동네 사람들한테 떡이나 돌리죠, 뭐! 인심도 얻을 겸."

이렇게 한바탕 물난리 소동은 끝이 났다. 여름휴가는 다 망친 상태로….

이날 친구와 나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어차피 휴가는 망쳤고, 오늘 집에서도 못 자니까 시원한 맥주 한 잔 먹고 시원한 찜질방에서 잠이나 자자구."

그리하여 서울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떠났던 나의 여름휴가는 그렇게 흘러갔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여름휴가 실패기>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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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름휴가 실패기 #홍수 #반지하 #물난리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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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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