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추석 콩쿨대회 무대에 섰습니다

경기도 김포 '대곶면민 화합의 밤 노래자랑 큰잔치'에 나가다

등록 2007.09.28 11:41수정 2007.09.2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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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날 저녁(25일).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사무소 하늘 위로 휘영청 보름달이 떠올랐습니다. 그 달빛 아래 반가운 만남의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저마다 형님이고 동생이라 등짝에 불이 나도록 등을 두들겨대기도 하고 손에 경련이 일도록 반가움의 악수를 하기도 합니다. 어릴 적 소꿉친구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들 만났습니다.


앞집 순이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고, 옆집 철이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순이야, 철이야" 불러대는 중년의 곰삭은 우정이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대곶면민 화합의 밤 노래자랑 큰잔치'가 열리는 대곶면사무소 앞마당은 그런 반가움의 아우성으로 시끌벅적합니다.

그 옛날 '콩쿨대회', 양은냄비 못 타고 바가지만 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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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곶면사무소 앞마당에 세워진 노래자랑 무대 ⓒ 김정혜



어릴 적. 추석이면 절대 빠지지 않는 마을행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마을단위 노래자랑대회인 일명 '콩쿨대회'였습니다. 한가위 저녁이면 냇가 정자는 '콩쿨대회' 무대로 변했습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동네 사람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삼삼오오 정자로 모여들었습니다. 정자 맨 앞에 수북하게 쌓아놓은 상품들을 보며 동네 사람들은 노래도 부르기 전, 먼저 상품에 눈독들을 들였습니다.


"엊그제 우리 집 냄비에 구멍이 났는데 이번에 냄비나 하나 장만해봐야겠네."
"우리 집 바구니를 백구가 물어뜯어서 못쓰게 됐는데…."
"우리 집 바가지는 어떻고…. 욕심내지 말고 바가지나 하나 타면 좋겠는데…."
"라디오가 고장나서 연속극 못 들은 지 석 달도 넘었는데 이 라디오는 꼭 내가 타야겠다."


삼십 육칠 년 전이니 상품이라야 양푼·대야·라면, 단지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큰 냄비 안에 크기별로 대여섯 개의 냄비가 차곡차곡 들어 있던 노란 양은 냄비세트는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인기있었던 건 대상으로 받는 라디오였습니다. 동네에 기껏해야 TV가 한대 있을까 말까 한 시절이었으니 라디오의 인기야 두 말 하면 잔소리. 너도 나도 라디오에 눈독을 들인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대식구가 살던 우리 집에서는 해마다 삼촌들과 고모가 '콩쿨대회'에 나갔습니다.

삼촌들은 나갈 때마다 보무도 당당하게 양은냄비 세트를 타겠다고 호언장담했건만 늘 플라스틱 바가지만 수북하게 타곤 했습니다. 어느 해인가는 갓 시집온 숙모가 라디오에 눈독을 들여 새색시의 수줍음도 뒤로 한 채 용기 있게 무대에 섰는데, 숙모도 결국 바가지 하나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수북하게 탄 플라스틱 바가지들을 온 식구가 하나씩 들고 집으로 돌아오자면 은빛으로 쏟아져 내리는 대보름달빛에 온 식구가 한참을 달구경에 넋을 놓곤 했습니다. 그 때마다 어린 저는 달을 보고 그렇게 빌었습니다.

'내년 콩쿨대회에선 우리 식구 중 하나가 꼭 라디오를 타게 해주세요'라고.

중년이 되어 다시 만든 '노래자랑'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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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콩쿨대회'의추억을 떠올리며 달타령을 부르고 있는 나. ⓒ 김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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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에서 가족들의 열렬한 응원에 보답하고자 죽기살기로 노래 부르는 나. ⓒ 김정혜



올 추석 '대곶면민 화합의 밤 노래자랑 큰잔치'에 나가게 된 건, 바로 어릴 적 그 추억 때문이었습니다. 중년의 나이에도 추석명절만 되면 가슴이 이리 아련한 건 바로 그 '콩쿨대회'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며, 그 '콩쿨대회'의 추억이 지금도 이리 생생한 건 잊힐 수조차 없을 만큼 소중하고 고운 추억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저도 딸아이에게, 그리고 조카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는 그런 고운 추억 하나쯤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노래자랑 신청을 하려고 하니 여간 망설여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면사무소 앞마당에 모여든 사람들을 쭉 한번 훑어보니 아는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띄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 딸아이와 같은 반 아이 부모님들, 딸아이가 다니는 학원원장 선생님, 구면인 면사무소 직원들까지….

등수 안에 들면 천만다행이겠지만 만약에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까 지레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이럴까 저럴까 한참 망설이던 그 순간.

"우리 딸 노래실력이면 대상도 타고 남는다 아이가. 대상에 텔레비전 준단다. 대상 아이면 압력밥솥 주는 금상도 괜찮고. 아니면 전자렌지 주는 은상도 좋고, 가스렌지 주는 동상도 좋고, 이도 저도 아니면 농협상품권 주는 특별상은 안 받겠나. 십년만 젊었어도 내가 한번 나가 보는 긴데…."

고슴도치 사랑에 넋이 나간 친정 어머니의 주절거림을 외면한다면 그 또한 불효다 싶기도 했습니다. 잠시 망설인 끝에 결국 노래자랑 신청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딸아이와 조카들에게 저처럼 소중한 추억 한 자락 만들어주고픈 엄마마음과, 제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인 줄 알고 계시는 친정어머니의 고슴도치 사랑을 외면할 수 없는 자식 마음이 한데 엉켜 이미 저는 출연자 명단에 이름 석 자를 적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불렀는지 모르게 불러버린 '달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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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밤. 면사무소 앞마당을 가득 채운 대곶면민들 ⓒ 김정혜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긴장도 강도를 더해 갔습니다. 침이 마르고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습니다. 나오는 사람마다 어찌나 그리 노래들을 잘 하는지…. 하여간 노래방 문화가 음치 탈출에 아주 지대한 공헌을 한 사실에 대해 절실히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무대로 나갔습니다.

노래는 추석명절에 걸맞은 '달타령'. 반주가 시작되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노래방이려니 생각하고 편하게 부르려 해도 마이크를 잡은 손이 덜덜덜 떨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리는 것 같은 순간, 노래는 끝이 나 있었고 그때야 박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선 통과였습니다.

이어 본선. 처음보단 다소 용기가 생긴 까닭인지 노래 부르기가 조금 수월한 것 같았습니다. 처음 부를 땐 눈앞이 온통 암흑천지이더니 열심히 손뼉을 치고 있는 가족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어머니·남편·남동생·올케, 딸아이와 조카들….

힘이 났습니다.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저렇게 열렬하게 응원해주는 내 살점과도 같은 저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가당찮은 오기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죽기 살기로 불렀습니다.

20여 명의 모든 차례가 끝나고 막간을 이용해 동네 이장들과 부녀회장, 그리고 대곶면장님(이하관)까지 무대로 불려나가 저마다 18번을 한 곡조씩 부르는 동안 심사 집계가 끝이 났습니다. 드디어 사회자가 발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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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자랑의 열기에 흠뻑 빠진 우리 가족. 대보름 밤의 추억이 하나 더 늘었다. ⓒ 김정혜


"특별상엔 OOO씨가 차지했습니다. 부상엔 5만원 상당의 농협상품권입니다."
"동상엔 OOO씨가 차지했습니다. 부상엔 가스렌지입니다."
"은상엔 OOO씨가 차지했습니다. 부상엔 전자렌지입니다."
"금상엔 김정혜씨가 차지했습니다. 부상엔 ㅇㅇ압력밥솥입니다."


면사무소 앞마당에 앉아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식구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할 즈음. 사회자는 그렇게 저를 불러주었습니다. 그리고 면장님이 상장과 압력밥솥을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식구들의 힘찬 박수소리와 기쁨의 함성이 대보름 달 밝은 밤을 뒤흔들어놓고 있었습니다.

저, 결국 금상 먹었습니다

온 식구가 가슴 한가득 기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릴 적 그때처럼 대보름 달빛이 은빛으로 부서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달빛 속으로 어릴 적 내 유년의 추억이 또한 아련합니다. 하여 어릴 적 그때처럼 달님을 향해 또 소원하나를 빌었습니다.

'딸아이에게도 이 대보름 밤이 오래 오래 고운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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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과 부상으로 받은 압력밥솥. 압력밥솥은 올케에게 추석선물로 주었다. ⓒ 김정혜

덧붙이는 글 | <우리 가족 특별한 추석 풍경> 응모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우리 가족 특별한 추석 풍경> 응모글입니다
#추석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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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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