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각국사탑(보물428호)대웅전 곁에 따로 마련한 듯 보이는 터 위에 보각국사탑과 문정희 시인이 쓴 시에 나오는 돌부처가 있어요.
손현희
일연스님이 하신 일을 잘 갈무리해놓은 ‘삼국유사 특별전’을 구경하고 이젠 절집을 찬찬히 둘러봅니다. 때마침 확성기에서 스님이 염불을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조용한 절집에서 목탁소리와 함께 듣는 스님 목소리가 어찌 그리 정겹게 들리는지….
‘팔월 한가위 중추가절에 서울시 양천구 … 김 아무개… 를….’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이런 말을 하는 듯했어요. 아마 한가위를 맞아 이 절에 이름을 걸어놓은 이들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소원인가 봐요.
대웅전 곁에 따로 마련한 듯 보이는 터 위에 보각국사탑(보물428호)과 돌부처가 있어요. 가까이 가서 보니, 꽤 오랜 세월이 흐른 탓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어려움을 많이 겪은 듯 몹시 모나고 뭉그러져 있어 매우 안타까웠어요.
642년(신라 선덕왕 11)에 처음 의상대사(또는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말도 있으나 어느 것도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함)가 세웠다는 이 인각사(사적374호)가 신라·고려·조선시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을 견디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을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어요.
뭉그러진 코, 어찌 오랜 세월만 탓하랴!조선시대 초기에 이름난 문장가였던 유호인(1445~1494)이 인각사에 와서 지은 시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이런 글이 있어요.
지금은 병 속의 새
찾을 곳 없고
낙조 속에 비바람에 씻긴
비석만 남아있네이 글을 미루어 볼 때, 고려 때 왕명을 받들어 일연스님이 머물 절로 지어졌다는 이 인각사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해요.
이밖에 내 눈길을 끈 게 하나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요사채 벽에다가 붙여놓은 신문조각이었어요. 몇 해 앞서 인각사에 찾아왔던 문정희 시인이 쓴 시였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돌부처를 보면서 느낀 걸 썼어요. 나중에 이 시 한 편이 불교문학상과 정지용문학상을 받기도 했대요. 잠깐 소개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