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 자전거 세계일주 시즌 1 - 북아메리카 편 뉴욕에서 LA까지 6620km의 길 위에 펼쳐진 젊음의 이야기 ⓒ 문종성
2006년 11월. 딘 카나제가 26.2마일의 뉴욕마라톤을 완주하였을 때, 그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새로운 인내의 기록을 세웠다. 카나제는 50일 간 50개 주에서 50번의 마라톤을 달린 것이다. 이 뛰어난 운동선수의 초인적인 인내의 위업 중에는 350마일(563km)을 쉬지 않고 달리고, 24시간 계속 산악자전거를 탔으며, 샌프란시스코 만을 수영해 건넌 것들이 포함된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비전 무기력증에 빠져 어떡하면 인생을 보다 편하게 살아볼까 궁상만 떨던 한 동양청년은 어느 책을 통해 성공하는 인생보다 감사하는 인생이 훨씬 가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길로 도를 닦는 심정으로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해 보겠다며 누가봐도 무모한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시즌 1'격인 북아메리카 자전거 횡단을 해냈다.
딘 카나제의 환상적인 도전의 파노라마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숱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출사표를 던지고 또 성공해내기에 이제는 별 이슈꺼리도 되지 못하는 북미 자전거 대륙횡단. 하지만 바로 내가 달렸던 130일, 6620km의 길 위에도 거친 맥박질은 있었다.
특별히 이번 북미 편은 영혼을 변주하듯 저만의 소리로 울어 젖힌 청춘의 고독한 열정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성마르고 과단성이 없으며 거의 모든 면에서 젬병인 내가 이 일을 해냈다는 것. 졸업 후 취직, 결혼, 그리고 촌음을 다투는 경쟁체제 속에 자아를 잃어버리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저 감흥 없는 밥벌이 혹은 출세를 위한 인생에만 몰두하는 것에 대한 작은 반기. 여지껏 그렇게 해왔고 모두들 그렇게 한다는 것에 더 이상 속지 말자고 다짐했던 출발 전의 결심. 그런 생각을 애써 정당화하기 위해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몇 번씩은 용기가 필요한 때를 만나게 되고 지금이 그 때라고 생각했던 대책없는 핑계.
그래서였을까? 세상을 철없이 바라보고 무언가 다듬어지지 않은 20대의 거친 혈기였지만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스펀지처럼 나의 거칠고 실수투성이인 부분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스쳐 지난 사람들과 자연은 나의 벗이자 스승이 되어 주었고, 자전거 위에서는 마음껏 묵상과 망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때론 풍찬노숙의 세월 속에 서러워 돌아누운 그 고요함에 외롭기도 하였고, 목덜미에 감겨오는 그리움 때문에 그보다 더 서럽기도 하였더랬다. 페달을 밟으며 흘린 땀은 값진 경험을 안겨준 보석이 되었고, 감정의 기어를 급히 올리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쳐야 하는 경우도 더러 생겼다. 불편해야 비로소 나에게 주어진 것과 내가 누리는 것에 대해 새삼 감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방바닥이 딱딱해야 꿈은 더 달콤해지는 법을 하늘을 이불삼아 누운 텐트 안에서 실감하기도 했다. 자유로운 영혼에서 누리는 기쁨이 모든 고통을 흡수한 것이다.
달도 가버린 밤에 그리운 너의 향기
자네 몫의 빈 마음엔 공복이 대신하고
어즈버 옛사랑이여 늘어진 한숨만이.
- 누군가가 너무 그리울 때 읊던 자작시조, <그리움>
각본처럼 짜여진 삶의 회로를 따라 레디 메이드(Ready-made Life) 인생이 되기보다 비전메이크 인생(Vision-make Life)을 만들자고 겁 없이 뛰쳐나왔지만 역시 세상은 결코 만만치가 않더라. 하지만 나의 부족함을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내 미숙함이 드러나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려와 겸손을 배울 수 있었고, 가슴 속 빈 공간에 새로운 꿈과 도전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 충격을 받는 여행은 그 자체가 감각들의 일리있는 혼란이지 않을까.
가능한 것의 한계를 찾아내는 유일한 길은 그 한계를 조금 넘어서 불가능한 것 속으로 디뎌 보는 것이다. - 클라크
여러 가지 불확실성을 두고 심드렁한 사람들의 반응과 조소 앞에서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포부는 나를 무력한 허풍선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누가 그랬던가. 보석은 마찰 없이 윤을 낼 수 없고, 사람은 역경 없이 온전해 질 수 없다고. 희망이 있다면 어떻게든 전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겐 강인한 정신력도 풍족한 경비도 그렇다고 잘 짜여진 네트워크도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내게 주어진 상황에 대해 겸손히 인정하고 젊음의 이름으로 부딪혔을 때 세상은 시간이라는 성숙공간을 마련해주었고 말없이 나의 편이 되어 주었다. 그게 희망이다. 내일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꿈을 품을 수 있는 것.
자전거 여행은 그 자체가 용기와 정직, 그리고 겸손의 삼중주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최고의 인생 수업이다. 용기가 없으면 시도조차 못할 것이고, 내가 땀과 눈물을 흘려가며 페달을 밟는 만큼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자연과 타인 앞에서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되며 절로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해내고 싶다는 소망과 해내게끔 만들어주는 사랑이야말로 어떤 일이든 가능케 만들어 주는 성공의 통로가 아니겠는가!
이그조티카(Exotica,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별나거나 재미나게 이상한 것)에 대한 기대보다 사람과 자연을 바라보고 왔기에 더욱 가슴 시린 이야기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견고한 지혜가 없어 매번 여행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아포리즘 형식으로 정리하지 못함이 아쉽다. 이것은 계속 고쳐가며 발전시켜 나가야 할 부분인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타당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앞으로도 용기와 정직을 쌍둥이 미덕(twin virtues)으로 계속해서 헤쳐나갈 것이다. 모든 순간에 믿음을 끌어 모을 것이며 재회의 절대적 불가능성을 알기에 진한 추억을 새겨놓고 오고 싶다.
지난 5월 뉴욕을 출발해 사실상 북미 횡단의 종점이라고 할 수 있는 LA에 오기까지 매일같이 심장의 파동은 온 몸을 흥분시키고 맥박소리는 천둥처럼 고막을 치며 이 여행이 가져다주는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다. 세계 최고의 도시 중에 하나인 뉴욕을 출발해 사막과 강을 건너고 산맥을 넘어 온 지난 5개월의 시간은 서곡에 불과하다.
앞으로 가게 될 곳은 정보가 미약한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다. 이곳에서의 여정이 더욱 나 자신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라도 난 사람과 이 세상을 격하게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 곳에서도 추억을 난로삼아 마음을 따뜻하게 할 일이 많았으면 한다. 자, 이제 또다른 세상 멕시코로 출발이다!
"Everything is possible for the person who has faith." - Mark 9:23 (성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필자는 계속해서 이번 달 말에 멕시코로 향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