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든든한 '천원의 행복'

맛도 영양도 일품이었던 학생식당 밥이 그립다

등록 2007.10.10 16:13수정 2007.10.1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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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 있냐?”
“당연하지. 자기 전에 천원은 항상 체육복 주머니에 넣어둬. 왜? 넌 없어?”


“어. 그냥 굶어야 되겠다.”
“굶긴 왜 굶냐? 우리가 여기서 뭐 하루 이틀 밥먹은 것도 아니고, 또 앞으로도 계속 먹을 건데 내가 얘기해 볼게.”



그때부터 학생회관 식당에는 외상장부가 생겼다.

‘학생이 벌써부터 외상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동아리 멤버들이 모여 매일 아침 6시부터 모여서 2시간여 동안 같이 운동을 했던 터라 아침을 굶는다는 것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데 있어 생활 리듬이 깨져 치명적이었기 때문에 외상을 하고서라도 꼭 아침은 챙겨먹는 습관이 생겼다.

가뜩이나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돌도 씹어 먹을 나이’였던 2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반찬은 김치, 깍두기뿐이었지만 진한 설렁탕은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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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식당이 있는 한남대 학생회관의 모습 학생회관 지하에 있던 학생식당에는 비록 메뉴가 다양하지 않고 반찬이라고는 김치, 깍두기 뿐이었지만 진하게 우려나오는 사골국물은 맛과 영양에서 단연 최고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 김동이


매일 아침 우리의 건강을 책임졌던 학생회관 식당 밥은 비록 싱겁고 짠 김치와 깍두기뿐이었지만 진한 사골 국물과 고기와 당면이 한데 어울려 환상적인 맛을 내는 설렁탕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만큼은 아침부터 운동으로 땀을 뺀 젊은 학생들을 학생식당으로 불러들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운동으로 땀을 뺀 후의 아침밥.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맛을 모를 것이다.

이렇게 대학 3학년 때부터 4학년 졸업할 때까지 2년여 동안 나의 건강을 책임져준 학생식당 밥을 먹게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그 사연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대학교 입학 당시부터 군인이 될 꿈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장학생(학사사관)에 응시하게 되었고 자격조건에 충족하여 단번에 합격하게 되었다.

군장학생 합격으로 학교 졸업 후 장교로 군에 가기로 되어 있던 나는 학창시절 동안 군 복무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껏 캠퍼스 생활을 누리고 있었고, 군장학생으로 별다른 활동 없이 2년의 세월을 보냈다.

운동 후 허기 채우려 학생식당 이용, 나중에는 중독 수준

하지만, 3학년에 올라가자 학사사관들의 동아리 활동이 개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가입되고 활동하게 되면서부터 선배들과 매일 아침 6시부터 운동을 하게 되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6시에 운동장에 모여 다같이 구보를 하고, 이후 편을 나누어 축구를 했다. 만약 축구를 해서 선배들에게 지기라도 하면 곧바로 운동장을 돌기도 했다. 이렇게 아침마다 2시간여 운동을 마치고 나면 힘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허기가 지는 것이 더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 동기들은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씻는 것은 제쳐두고 가장 먼저 학생식당으로 달려갔다. 학생회관 지하에 있었던 학생식당은 내 기억으로는 아침 7시 정도부터 준비해서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가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학생식당이 이렇게 일찍부터 문을 열다보니 운동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온 우리 동기들은 물론이거니와 아침을 거르고 새벽부터 버스 타고 학교에 와서 도서관에 자리를 맡고 공부하려는 학생들로 북적거리기도 했다.

이렇게 2년여를 학생식당에서 먹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학생식당의 밥을 먹지 않으면 하루 일과를 보내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어 버렸다. 아니 차라리 중독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혹여나 비가 와서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일부러라도 학생식당을 찾아와 아침을 먹을 정도가 돼버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맛있다는 설렁탕집을 다 돌아다녀도 그 시절 학생식당에서 먹었던 그 맛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니 대학시절 운동 후 먹었던 그 추억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지 벌써 10여년이 지나 학생식당도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천원만 있으면 하루를 든든하게 시작할 수 있었던 학생회관의 식당 밥이 그리워진다.

덧붙이는 글 | <우리학교 식판>응모글


덧붙이는 글 <우리학교 식판>응모글
#학생식당 #설렁탕 #식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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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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