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흥신소>의 얼렁뚱땅한 네 남녀
KBS
은재는 그나마 주인공들 중에서 멀쩡한 편이다. 온 몸을 명품으로 도배하고 그 건물의 옥탑방에 이사를 오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긴 하지만 말이다.
부동산 재벌이었던 아버지가 죽고 남긴 유산 덕에 엄청나게 부자이지만 그녀에게도 부족한 것은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양자가 다섯 번이나 바뀌었을 만큼 마음을 정착할 만한 가족이 없었다. 수영장 딸린 집도, 몇 대나 되는 차도, 그녀에겐 행복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그녀는 폐쇄 공황 장애까지 앓게 되었다.
은재가 돈을 주며 의뢰하는 일들을 해결하려고 무열과 용수, 희경은 태백과 안산 등 전국을 떠돌며 해낸다. 미스터리 속에서 밝혀진 건, 지하실 벽에서 발견한 황금에 쓰여 있던 일련번호는 211, 212, 213으로, 적어도 200여개의 황금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황금을 찾는 네 남녀의 이야기, 소재부터가 황당하지만 또한 그만큼 신선하다. 게다가 적절한 CG와 패러디는 웃음을 유발한다. 그들의 상상이 화면으로 구성되면서 내레이션에 따라 화면 속 인물의 행동과 표정이 변하는 것도 재미있다. 민망한 상황들 또한 황당하지만 유머러스하다.
예를 들면, 병실에서 자신의 아픔을 담담하게 얘기하는 은재에게 무열이 울고 싶으면 울라고 소리치며 진실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 같은 것이 그렇다. 은재씨가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없다고, 그냥 은재씨가 좋다며 진지하게 고백하는 무열의 고백은 잠깐 동안 멋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잠깐’에 불과했다. 보통 드라마에서였다면 여주인공은 눈물 고인 눈으로 진심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우리의 은재는 단 한 마디로 상황을 멈추게 만든다. “미안해요.”
희경 또한 마찬가지다. 멀리 귀신 나오는 호텔로 가기 위해 자신을 데려온 차인 줄 알고 건물 앞에 서는 차 앞에 당당히 올라타며 가방을 부탁한다고 했는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차를 운전하고 온 사람이 은재에게 키를 주며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은재의 차였던 것이다. 희경은 슬며시 내리고, 무열과 용수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쓴다. 차를 몰고 다른 곳에 온 은재의 얼굴에도 살짝 웃음이 어린다.
그들은 그렇듯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지만 그러한 일들로 늘 차갑고 무표정하던 은재를 웃게 하고, 납치 당한 은재를 구해주기까지 한다. 은재보다 많이 부족한 그들이지만 결국 그들이 은재를 도와준다는 아이러니함이 난 참 따뜻하다.
본 방송보다 더 재미있는 번외 편오늘 이야기가 끝났다고 해서 채널을 돌릴 수는 없다. 엔딩에는 본 방송보다 더 재미있는 번외 편이 나오기 때문이다. 첫 회 마지막에는 그들의 흥신소 첫 의뢰였던 고양이를 찾아 주인에게 돌려주는 장면을 ‘TV는 사랑을 싣고’를 패러디해서 보여주었다.
극단의 객원 배우로도 활약하고 있는 희경이 콩쥐 팥쥐에서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다고 했다고 거만하게 말했던 배역이 두꺼비 역할이었다는 것도 웃음을 자아냈다.
연기자들의 변신 또한 볼거리로 충분하다. 예지원의 매력은 능청스럽고 뻔뻔한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극중에서 연기하는 연기의 진지함에서도 엿볼 수 있다. 희경은 상황에 따라 연기를 하며 정보를 수집해 나간다. 그 중에서도 ‘신들린 연기’가 단연 압권이었다. 평생을 허황된 욕심에 눈이 멀어 도굴꾼으로 살았던 아버지를 미워하고만 있던 아들에게 마치 죽은 아버지의 혼령이 들린 것처럼 연기하는 장면이었다. 우는 너의 모습을 보았다고, 못난 아비지만 가슴이 아팠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그녀는 눈물을 흘렀다. 아들은 그녀의 연기 덕분에 아버지를 용서했다.
무열이 그 아들을 속인 게 미안하지도 않냐고 묻자 희경은 비록 거짓말이지만, 평생을 미워하며 사는 것보다 용서하는 편이 낫지 않냐고 되물었다. 돈 많은 은재와 매번 부딪치고, 주변 사람에게까지 사기를 치고, 돈을 엄청 밝히는 희경이지만, 그녀가 밉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전략보다 진심이 더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올림픽이 해마다 있어서 태권도장이 붐비길 꿈꾸고, 자신에게 돈 10만원은 그냥 10만원이 아니라 엄마 선물 사고, 은재씨와 맛있는 것 사먹고, 엔진 갈고, 기타 등등 여러 가지를 할 돈이었다고 울분을 토하는 무열이라는 인물 또한 배우 이민기의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조연으로 많이 나오며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류승수 또한 이번 드라마를 통해 인생 뭐 있어? 하는 가치관을 몸소 실천하는 “자신의 몸에 너무 오냐오냐 하는 경향이 있는(무열의 대사 중에서)” 용수 역을 완벽하게 선보이고 있다.
이제 이들이 드디어 보물 지도를 손에 넣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들에게 보물 지도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벌레를 잡는 데 쓰고, 부채질을 하는 데 쓰고, 라면 받침대로까지 이용하다가 마침내는 신문 따위와 함께 버렸던 보물 지도를, 보물 지도임을 깨닫고 찾아낸 것이다. 그들의 집과 만홧가게, 태권도장을 뒤지며 그것을 찾던 이들 또한 그들이 보물 지도를 찾았음을 알았다. 그들을 미행하던 이들은 누구일까? 이제 그들은 미행하던 이들과 어떻게 싸워 이겨 낼 것인가?
좌충우돌 모자란 캐릭터들의 황금 찾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황금 사냥 모험기! 그들이 황금을 찾게 될 지, 아니면 황금보다 소중한 인생의 무엇을 찾게 될 지 기대해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티뷰기자단 기사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