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리에서 새 삶을 찾다

[음식이 있는 만남] 귀농 11년, 초보농사꾼 정경섭

등록 2007.10.30 13:40수정 2007.11.0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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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오마이뉴스-한림대 기자상 응모작입니다. 송기영 시민기자는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언론 전공 4학년에 재학중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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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심으면 바로 이렇게 박이 됩니다." 동화책에서만 보던 박을 처음 보는 아이들이다. ⓒ 송기영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에서 한바탕 출근전쟁을 벌이고 나면 '아,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고 살까'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실행에 옮겨지기 어렵다. 경험도 없을뿐더러 쉬 용기가 나지 않는 까닭이다.


오늘 만날 정경섭(60)씨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11년 전 귀농했다. 경험은 없었지만 용기는 있었다. 지난 10월 초 가을걷이에 한창인 정씨를 만났다. 꾹 눌러쓴 벙거지에 검게 그을린 피부와 무릎까지 올라오는 고무 장화까지, 제법 농사꾼 티가 났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대기업 연구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어느새 상무라는 자리에 올랐고 부와 지위를 얻었다.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계속 마음 속에 응어리졌다.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꼈고 몸은 조금씩 지쳐갔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뜻밖의 말을 건넸다. "당뇨입니다."

올해는 느타리버섯이 풍년이다. 가을걷이가 한창이라 신경을 써주지 못했는데, 어른 손만하게 자랐다. 과수원에 나가 배를 몇 개 따다 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됐다. 오늘은 장독에 묻어둔 묵은지를 꺼내 꽁치와 함께 볶았다. 시큼한 냄새에 벌써 침이 고인다. 제각각 일터에 나가 있던 가족들이 모두 식탁 앞에 앉았다. "여보, 버섯이 풍년이야."

이 상반된 두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 정경섭씨다. 97년,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귀농을 결심했다. 반복되는 회사생활에 염증이 나서였다. 동료들은 모두 말렸다. 힘들어하는 경섭씨를 지켜보던 가족들은 오히려 그를 지지해주었다. 가족의 응원을 뒤에 업고 망설임 없이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이제 우리 농사지으면서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을 살자." 경섭씨는 가족에게 약속했다.

제2의 고향 양수리


그는 평소 일 문제로 양수리를 지나면서 "서울에서 1시간 떨어진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하며 감탄했다. 운명이었는지, 귀농할 곳을 알아보는 중에 양수리에서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과수원이 딸린 2층 집. 이곳에서 경섭씨와 가족은 새로운 삶을 일궈나가기 시작했다.

첫해, 과수원에 사과를 심었다. 가족이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농약과 화학비료는 절대 쓰지 않았다. 한해 애면글면 키운 사과는 수확 때가 되자 제법 튼실해졌다. 처음부터 팔 목적이 아니었기에 도시에 사는 지인들을 불러 수확의 기쁨을 함께하며 사과를 나눠 먹었다.

이듬해에도 지인들을 불러 같은 행사를 개최했는데 어찌 알고 왔는지 지난해보다 더 많은 사람이 경섭씨의 과수원에 몰려들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수확의 기쁨을 줄 수 있어 한해 농사가 보람됐다. 모두가 웃고 즐기는 순간, 경섭씨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걸 우리 마을 전체의 축제로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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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섭 씨 ⓒ 송기영


곧바로 실천에 옮겨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전문가의 조언을 듣기 위해 농업관련 교육을 쫓아다녔다. '농업 전문가가 강연을 한다더라'는 소리만 들으면 무조건 찾아가 얼굴을 알리고 인맥을 넓혀갔다. '농촌지도자 교육'부터 '전자상거래'까지 체험마을에 필요한 교육은 모조리 섭렵했다.

"전문가들과 친해지고 나서 사업계획서를 슬쩍 내밀었더니 대부분 좋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어떤 교수는 마을의 자문위원을 하겠다고 자청하기도 했어요."

사업계획서를 전문가에게 인정받자 마을 주민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려 한다'며 등을 돌렸다. 방법을 바꿔 마을 이장을 먼저 설득했다. 이장은 "마을 소득 증대에 큰 도움이 되겠다"며 "주민들은 자신이 설득하겠다"고 나섰다.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셈이다. 2000년, 양수리 농촌체험마을은 이렇게 시작됐다.

농촌의 일상에 열광하는 도시민들

작은 버스가 마을로 접어든다. 버스에서 30여 명의 유치원생과 학부모가 쏟아져 나온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생경한 농촌풍경에 신이 났다. 흙투성이가 되도록 뛰어놀아도 혼내는 사람이 없다. 작은 호미 하나 들고 고구마밭으로 향한다. 한참 고구마를 캐던 사람들이 저마다 고구마를 들고 자기 것이 크다며 행복한 실랑이를 벌인다.

농촌의 평범한 일상이 도시민을 열광케 했다. 봄에는 나물 캐고 여름에는 옥수수를 삶아 먹고, 가을에 수확하고 겨울에는 꽝꽝 언 저수지 위에서 팽이치고 썰매 타는… 양수리를 찾은 관광객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꼭 권유하겠다며 '양수리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2002년 양수리가 체험마을로서 자리를 잡아가며 관광객도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해 5천여 명의 관광객이 양수리를 찾았다. 초보농사꾼 경섭씨가 대형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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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땄어요." 배 수확체험을 한 아이들이 저마다 자신이 딴 배를 들고 즐거워 하고 있다. ⓒ 송기영


관광객들이 마을을 찾아 농촌을 체험하고 농산물도 팔아주니 농가 소득도 오르기 시작했다. 반신반의하던 마을 주민도 점차 경섭씨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마을이 합심하니 체험마을은 날개를 달았다.

'앵두축제' '배꽃축제' 등 다양한 축제를 열어 관광객들에게 화답했다. 지난해에는 1만 5천 명의 관광객이 양수리를 찾았다. 평범한 농촌이던 양수리가 그야말로 '대박마을'로 거듭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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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너머서 양수리를 보면 그저 고즈넉한 시골마을이다. ⓒ 송기영


"몸이 고되기로 따지면 농사 만한 것이 없죠. 그만큼 보람이 있어요. 마을을 찾은 관광객이 수확을 같이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힘든 줄도 모르겠어요."

그를 괴롭혔던 당뇨도 여태 말썽 한번 부리지 않았다. 마을주민과도 가족처럼 가까워져 '삼촌' '이모'하면서 지낸다.

올해는 느타리버섯이 풍년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올여름 "이런 얄궂은 날씨는 처음 본다"며 혀를 찼지만 느타리버섯은 잘 자라주었다. 내일 양수리를 찾을 관광객들 위해 수확의 기쁨은 잠시 미뤄두려 한다. 함께 하는 수확은 그 기쁨이 두 배니까.
#양수리 #정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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