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적거지대정읍 안성리에 있다. 마당에 가시로 둘러진 것을 보면 당시 추사가 위리안치되었음을 알수 있다. 근처에 추사 전시관이 있어서 예술작품을 포함한 그에 대한 자료들을 볼 수 있다.
장태욱
추사 김정희는 경북 경주 경주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고조부 김흥경은 영의정을, 아버지 김노경은 승지, 판서 등을 맡았을 정도로 집안은 화려했다. 왕가의 친척이자 권문세족의 가문에서 태어난 추사는 박제가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여 실사구시적 학문관을 몸에 익혔다.
하지만 그의 부친인 김노경이 '윤상도의 옥'에 연류되어 고금도로 유배를 떠나면서 그의 가문은 위기를 맞았다. 그 후 그의 아버지를 탄핵했던 김홍근은 대사헌에 임명되자마자 다시 과거 사건을 들먹거렸다. 김홍근은 김정희마저 제거하려 하였다.
김정희는 포졸들에 의해 관아로 끌려가서 초죽음이 되도록 매를 맞았고, 친구인 우의정 조인영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만 건진 채 대정에 위리안치되었다. 대정현에서 보내는 9년 동안 그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질병과 싸웠고, 부인을 잃는 슬픔을 맛봐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제자 이상적의 도움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 탐구에 몰두했고, 친구인 초의선사와의 교류를 통해 인식의 기반을 넓혔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서 제주의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추사체나 세한도는 그가 대정현에서 보낸 인고의 생활이 만들어 낸 예술적 결실인 것이다.
안성리 마을에 마련된 추사적거지와 인근의 추사박물관에 가면 그의 제주생활을 보여줄 자료들과 더불어 세한도를 비롯한 그의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