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자에게 받을 '불로소득' 기다리십니까

[주장] '노태우 대통령'을 만들었던 이십년 전 대선을 떠올리며

등록 2007.12.19 16:24수정 2007.12.2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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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87년 대선 직후의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와 전두환 당시 대통령. 87년 6·10 민중항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군부들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주었다.

1987년 대선 직후의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와 전두환 당시 대통령. 87년 6·10 민중항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군부들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주었다. ⓒ 청와대


정확하게 이십 년 전입니다. 그 때 당시 수배자였던 저는 친구 자취방에 숨어들어 소주 한병과 담배 한갑을 비워내며 밤을 하얗게 밝혔습니다. 드르륵거리는 채널을 돌려가며 선거 방송을 지켜보다 노태우씨의 당선이 기정 사실이 되어가는 순간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는 참담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았었지요.

박정희부터 이어졌던 27년 군사정권을 '87년 6·10민중항쟁'을 통해 국민들의 손으로 마감 시킨 줄로만 알았는데 극적으로 다시 군사정권이 기사회생하던 순간이 정확하게 20년 전 일입니다.

그날 그 아침 여느 때와 같이 해는 동쪽 하늘로 치솟아 올랐지만 그래서 밝아야 할 세상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여버렸지요. 

부정선거를 감안한다 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선거결과였습니다. 전두환과 그 일당들을 몰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하고 고문당하고 쫓기고 죽고 장애인이 되고 미쳐버리기까지 했는데, 시절을 시절에 맞게 잘 살아온 사람들의 기득권이 참 집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고문과 학살과 부정과 부패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문과 학살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면 눈감을 만한 일이 되고 부정과 부패는 발 빠르고 눈치 빠른 사람들에게 불로소득의 첩경이었지요.

젊어 그 사람들의 무지몽매함과 어리석음에 한탄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결코 그 사람들은 무지몽매하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누구보다 '비상식'의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이를 먹어가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성공이란 비상식에 기반하고 있었던 것이죠.   

친구들은 더 이상 '정치'를 논하지 않는다


a  대선을 눈앞에 둔 우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오로지 '성공'뿐이다. 당선자가 가져다 줄 불로소득을 당신도 기다리는가?

대선을 눈앞에 둔 우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오로지 '성공'뿐이다. 당선자가 가져다 줄 불로소득을 당신도 기다리는가? ⓒ 오마이뉴스 남소연


얼마 전 친구 상가에 문상차 오랜만에 서울 땅을 밟았습니다. 작년 여름 귀농해서 쇠락한 시골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몇 달 만에 밟아보는 서울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목전에 있던 시점이었지요.

친구들과 같은 상에 앉아 술을 마셨습니다. 안주는 '당연히' 선거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이야기의 주제는 온통 아파트 값의 추이와 촉망 받을 만한 부동산의 위치와 자식들의 과외와 자동차의 배기량이었습니다.


요즘 한창 인구에 회자되었던 '경제'와 '성공'의 소주제들이지요. 선거 이야기는 비록 없었지만 이야기의 골자들을 잘 간추려 보면 결국은 이번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가장 많이 애용되었던 주제들이지요.

역시 선거는 정확하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경제적 성공이 과연 '도덕성'에 기반하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아파트 값의 급등으로 가져온 성공, 땅 값의 시세차익으로 얻은 성공, 거짓말과 부정의 끈을 타고 이룬 성공, 결과적으로 성공만 하면 성공, 이 모든 성공의 재료는 시세차익과 불로소득입니다.

어떤 후보의 말씀처럼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는 도덕책에서나 찾을 수 있는 말일 뿐입니다. 이는 정확하게 현실과 동 떨어진 시대의 윤리입니다.

당신도 당선자의 선물 '불로소득'을 기다리는가

다시 20년을 거슬러 올라왔습니다. 당의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이 바뀌었을 뿐 무대와 배역은 시공간을 초월해 헷갈리게 똑같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불로소득과 시세차익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지천입니다. 시대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가 맞는다면 아마도 20년 전의 상황이 되풀이 되지 싶습니다.  

그래 그런 결론에 도달이 된다면 어쩌겠습니까. 인정해야지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정서가 그렇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희망이 그렇다면 인정을 해야겠지요. 오늘 인터넷신문에 '서울 아파트 매물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제 투표만 남은 상황에서 유력 후보의 당선이 가져올 선물(?)을 기다리는 중이더군요.

후보자(혹은 당선자)나 해당되는 아파트 소유자들이나 역시 정확하게 시대의 정서를 꿰뚫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분들 모두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성공의 철학을 물어본다면 "정직하고 부지런한 것"만이 성공하는 길이라는 말을 감히 할 거라고 예단을 합니다. 우리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비록 어떤 좋은 말의 상찬을 들이댄다 해도 보통 사람들이 바라보는 성공의 정서는 이런 식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이런 허위와 위선을 벗겨내는 한층 성숙된 선거가 되기를 바랐던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이었나 봅니다. 거짓말이 용납되고 부정한 것이 가려지는 세상이 잘 돌아갈리 만무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다시 누구에게는 성공이요, 누구에게는 실패인 결과가 나오겠지요. 하지만 이제 해야 할 일은 그동안 해왔던 거짓이 통하고 부정한 것이 용서가 되는 결과 중심의 성공주의를 우리의 그릇된 도덕관에서 제외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부자들이 타락할 때 세상은 어지러워진다

 부자들의 도덕성이 심각하게 비틀렸거나 자신의 존재성을 빛나게 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때 치세가 흔들리는 경우를 봅니다. 이번 대선의 당선자는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부자들의 도덕성이 심각하게 비틀렸거나 자신의 존재성을 빛나게 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때 치세가 흔들리는 경우를 봅니다. 이번 대선의 당선자는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 권우성


부자가 존재하는 근거는 가난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도 실패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모순된 말입니다.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부자와 가난한 자는 함께 존재해 왔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견주어 볼 때 부자들의 도덕성이 심각하게 비틀렸거나 자신의 존재성을 빛나게 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때 치세가 흔들리는 경우를 봅니다.

더군다나 그 모든 것을 다 망라하는 세력들이 도덕적이지 못한 연대와 윤리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성공하는 경우라면 더욱이나 세상은 정의를 향한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20년 전 친구 자취방에서 밤새 소주와 담배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 기분이 20년이 흐른 지금 다시 살아날지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돈다지만 한바퀴씩 앞으로 나아갈 줄은 압니다.

그때 그 시절과 지금 비교할 수 없는 자유와 인권의 신장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경제적인 불평등과 성공에 대한 무조건적인 관용 덕분에 가난은 죄가 되고 부자는 선이 되는 현실만큼은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정작 손봐야 할 대상은 '철부지(?) 좌익세력'이 아니라 초등학교 도덕책에도 못 미치는 도덕관을 겸비한 성공지상주의자들과 불로소득으로 부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입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오늘 밤 정책이 실종된 이전투구의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 당선자께서는 수도 없이 되뇌었던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세상'을 반드시 만들기를 바랍니다.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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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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