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와 '재미'사이, 그 머나먼 강

예의와 재미 둘다 놓친 <예의지왕>, 그들이 말하는 '예의'

등록 2008.01.09 14:52수정 2008.01.0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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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도전! 예의지왕> 홈페이지 메인 ⓒ MBC

MBC <도전! 예의지왕> 홈페이지 메인 ⓒ MBC

 

막말하던 TV, 집 나간 예의범절을 찾아드립니다

 

'막말'이 난무하는 도무지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요즘 TV, 그런 TV 속에서 '집 나간 예의범절'을 되찾아주겠다며 등장한 프로그램이 있으니 바로 금요일 오후 6시 50분에 방송되는 MBC <도전! 예의지왕>이다.


'예의범절 완전 정복 프로젝트'라고는 하지만 MC와 패널들부터가 예의와는 영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먼저 정초부터 "유재석 없는 박명수는 쓰레기"라는 발언을 해 '이혁재 막말방송'으로 검색어 1위를 차지한 이혁재와 호통과 막말 개그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이경규를 메인 MC로 하고 있다. 패널로는 조원석, 김흥국, 크라운J가 출연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지는데, 먼저 1부에서는 세계 각국의 예절을 퀴즈를 통해 알아보는 '배워서 남 주나'가, 2부에서는 일상 속 예절에 대해 상황극을 통해 알아보는 '예의 없는 것들'이 진행된다.


'예의 없는 것들'에서는 그동안 함들이 예절, 병문안 예절, 송년회 자리 예절, 학교 예절, 대가족 호칭 부르기 예절 등과 같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지나치기 쉬웠던, 혹은 한 번쯤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던 예절들에 대해서 상황극을 통해서 알아보았다.

 

이 코너에서는 출연자들이 상황극을 하다 예의 없는 행동을 하면 경보음이 울리고 예절판정단이 "나가주세요"를 외친다. 판정단의 면면 역시 흥미로운데, 먼저 우리에게 친숙한 '청학동 훈장님' 이정석을 비롯해 예지원장과 매너컨설턴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참신한 컨셉, 그러나 예능과 교양 사이의 딜레마에 빠지다

 

예의를 상실한 연예계에서, 예의와는 그다지 친할 것 같지 않은 출연자들이 나와서 예의를 목숨처럼 여기는 판정단의 심사를 받으며 일상 속 예의를 알아간다는 컨셉은 분명 참신하다.

 

하지만 <예의지왕>은 예능과 교양 사이의 딜레마에 놓여 있는 듯하다. 예의만 신경을 쓰다 보면 프로그램의 재미를 놓치게 될 수 있고, 재미만 신경을 쓰다 보면 예의를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예의지왕>은 예능과 교양, 두 마리 토끼를 놓치는 듯하다.


'예의 없는 것들'에서 패널들이 판정단으로부터 경고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웃음' 때문이다. 웃음을 줘야 하는 예능 프로이다 보니 제작진들은 패널들이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는다.

 

때로는 이런 상황들이 작위적이기도 한데, 예를 들면 지난 12월 21에 방송되었던 '프레젠테이션 예절' 편에서는 거래처 사장(보조 출연자)이 직원들의 이름을 소개하는데 여직원의 이름을 '김말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제작진들이 준비해 놓은 프레젠테이션의 내용이 효자손을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효자손의 이름이 '누나 손 미영이'인가 하면, 옆에는 '현영'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몇몇 출연자들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해 탈락하고, 판정단으로부터 "진지한 자리에서 웃다니요! 나가주세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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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적인 설정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출연자들이 웃으면 예의없다고 탈락시킨다. ⓒ MBC 화면캡쳐

▲ 작위적인 설정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출연자들이 웃으면 예의없다고 탈락시킨다. ⓒ MBC 화면캡쳐

때로는 출연자들 스스로 과도한 오버 액션을 취하다 판정단으로부터 호되게 질책을 받기도 한다. 출연자들은 뻔히 무례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웃겨야 하기 때문에' 오버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난 1월 4일에 방송되었던 '대가족 호칭 부르기 예절'에서 이경규는 호칭 부르는 것 때문에 헷갈리는 상황에서 아버지(보조 출연자)가 계속해서 말을 하자, "아버지, 말이 많아"라며 아버지를 밀쳐낸다. 결국 판정단으로부터 "아무리 정신 사납기로 아버지에게 반말을 하다니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지난 12월 28일에 방송되었던 '학교 예절' 편에서 조원석은 "왜 볼에 사탕을 물고 있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선생님 앞에 가서 자신의 입을 벌려 보이고 심지어 선생님의 손을 자신의 입 속에 집어넣어 사탕을 물고 있지 않음을 확인시키는 등 지저분한 오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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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오버액션. 출연자들 스스로 예의에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웃기기 위해 오버를 하게 된다. ⓒ MBC 화면캡쳐

과도한 오버액션. 출연자들 스스로 예의에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웃기기 위해 오버를 하게 된다. ⓒ MBC 화면캡쳐

출연자들과 판정단 간의 불협화음 역시 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웃겨야 하는 출연자들은 제작진들 때문에 혹은 자발적으로 예의 없는 행동을 일삼지만, 진지하기만한 판정단들은 그러한 출연자들의 행동을 따끔하게 혼낸다.


특히 강영숙 예지원장의 고압적인 태도는 시청자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판정단은 잘못한 것이 없다. 예의 없게 행동하면 그에 맞는 질책을 하는 것이 판정단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교양 프로가 아니라 예능 프로라는 데 있다. 출연자들이 웃자고 한 행동 하나하나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판정단의 태도가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생뚱맞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예의는 권위주의? 

 

이 프로그램이 가진 또 다른 문제점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예의'라는 것이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는 데 있다. 시청자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던 지난 12월 28일 '학교 예절' 편을 보면, 강영숙 원장이 선생님 앞에서 말대꾸하는 학생에게 '재하자 유구무언'이라며, 선생님이나 어른이 이야기하면 손아래 사람은 입이 있어도 말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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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자 유구무언'. 그들이 말하는 예의는 권위주의인가. ⓒ MBC 화면캡쳐

'재하자 유구무언'. 그들이 말하는 예의는 권위주의인가. ⓒ MBC 화면캡쳐

하지만 상황극 속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 역시 예의를 상실한 모습이었다. 학생에게 "야!"라고 부르는가 하면,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꺼져!"라는 폭언을 하고 학생 한 명 한 명의 외모와 성적을 가지고 인신공격을 했다.

 

이에 대해 시청자 조혜정씨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게 창피를 주고 말을 함부로 하고 아이들의 연애사까지 참견하는 선생이 존경받길 원하는 것은 넌센스다. 게다가 아이가 억울해도 어른 앞에선 말대꾸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일방적으로 아이에겐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무조건적인 옳고 그름을 강요하는 것이 바른 교육인지 묻고 싶다.

 

예의는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호존중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부모나 스승이 존경받길 원한다면 아이에게 먼저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닌지. 예의와 권위주의를 착각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또 다른 시청자 김언한씨는 "이 방송이 참 보수적이며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는 판정단들이 중시하는 예의라는 것이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성격을 띠는 경향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시청자 박우화씨 역시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냐"라고 말했다.

 

많은 시청자들의 지적처럼, 예의라는 것이 꼭 전통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조상들이 중시했던 예의를 2008년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다를 것이 없겠지만, 아랫사람은 무조건 윗사람을 존경해야 한다는 식의 권위주의를 예의와 등치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예의라는 것은 시청자 조혜정씨의 말처럼 상호존중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며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았던 <느낌표> 후속으로 방송되고 있는 <도전! 예의지왕>. 이 프로그램 역시 재미와 예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시작했지만, 그 시도는 실패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티뷰기자단 작성 기사입니다.
#도전! 예의지왕 #예의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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