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는 어떻게 뗐냐"가 건전한 사랑 싸움?

m.net <이특의 러브 파이터>를 시청하고

등록 2008.01.08 21:34수정 2008.01.0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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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특의 <러브 파이터> 홈페이지 ⓒ m.net


"뭐 이런 프로가 다 있어."

지난 8일 위성 DMB를 통해 <m.net>에서 방영중인  <러브 파이터>의 2회를 같이 보던 친구가 버럭 화를 내며 내뱉은 말이다. 연인과 이별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던 그는 담배 하나를 집어 물고는 베란다로 향했다.

헤어진 연인 나와 싸움하며 비방... 막말도 서슴지 않아

옆에서 같이 보고 있는 나도 거북해 마치 시원한 캔콜라를 원샷했는데 트림이 나오지 않는 듯했다. 이미 헤어진 뒤에 싸움이라니, 그것도 얼굴과 이름을 다 내걸고, 심지어는 연애 횟수까지 공개해가며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방송에서 그러고 있다니 전부 다 제정신이니?

전 국민 앞에서 시원스럽게 사랑 싸움 한번 했다는 그들은 이제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닐까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명동이나 강남역 등 번화가는 이제 못 나갈 것 같았다.

안쓰럽게도 그렇게 얼굴 팔리며 욕먹은 대가로 받는 것은 고작 약간의 돈. 그나마 말싸움에 이겨서 돈이라도 받으면 다행이지만, 져서 화도 안 풀리고, 돈도 못 받고, 얼굴까지 팔리게 되면 앞으로 다른 사랑은 어떻게 시작하려고 그들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을까.

이특의 <러브 파이터>는 헤어진(헤어질 위기의) 연인들이 나와 스튜디오에 안에서 말싸움을 벌이고 한 사람이 기권하거나 말이 끊어지면 이특의 카운터에 의해 승패가 나눠지는 프로그램이다. 몇몇 연예인들이 보조출연해 양측으로 나뉘어 응원과 야유를 하고, 승자에게는 방석에 돈을 얹은 그야말로 '돈방석'이 지급되는 형식이다.


출연자들은 다들 평범한 일반인이다. 단지 상대에 의해 밝혀진 흠이 있다면 냄새가 난다든지, 연애에 진전이 없다든지, 단 음식을 좋아한다든지 하는 지극히 우리 주변의 연애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헤어졌거나 헤어질 예정인 출연자들은 둘만 조용히 해결하면 될 문제를 굳이 꼬마아이들 유치원에서 동문서답하는 것처럼 소리지르며 싸워 사랑하던 사람에게 더더욱 생채기를 남긴다.

지난 3일 2회 방영분에서 냄새나는 남자와 단 것을 좋아하는 여자간의 싸움은 말 그대로 가관이었다. 주변인들은 영상에서 "술 마시고 자면 아침에 일어나 우유를 마시고 사람들 앞에서 트림을 한다, 온 몸이 땀범벅이 된 상태로 여자들을 안는데 그 냄새가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사랑한다'는 말을 귓가에 속삭였을 여자친구는 그에게 "너 딱지는 어디서 뗐지?"라며 결정타를 날린다. 결국 남자는 "대학에 입학했음에도 경험이 없어서 선배들이 만원씩 모아…"라고 말하며 무너진다. 그렇게 승리한 여자친구 아니 옛 여자친구는 돈방석을 차지했다.

젊은이들의 순수한 사랑과 이별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어

내 친구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때도 그들의 황당한 싸움이 끝났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나는 '사귀고 있는 것이 다른 연인들과 같이 진도도 안 나가고 재미도 없다'는 커플의 싸움을 하나 더 보고 나서야 방송을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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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파이터> 소개 방송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획의도들이 적혀있다 ⓒ m.net


방송이 끝나고 프로그램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공개적으로 싸우겠다고 신청한 사람들이나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들이나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프로그램 기획자들이 프로그램 설명이라고 써놓은 글은 더 가관이었다.

'갈등을 심각하게 파헤치고 분석하기보다는 프로그램에 오락적인 요소와 젊고 건전한 감성들을 가득 담아 젊은이들의 솔직한 사랑을 예쁘게 그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지금 '딱지 어떻게 뗐냐'와 같이 당사자가 고개도 못 들고 다니게 할 법한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젊고 건전한 감성을 담고 사랑을 예쁘게 그리기는 무슨.

한동안 밖에서 분을 삭이던 친구는 폭발해 방송에서 본 커플들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개뿔, 야 이 사람들이 정말 사랑한 게 맞는거 같냐? 사랑했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상대를 공격해, 돈 때문에? 아니면 배신감 때문에? 그들은 사랑한 게 아냐. 오히려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하기 위해 만난 거지."

그의 말을 듣는 동안 방송에서 본 그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상대에 대한 분노에 치를 떨던 그들이 정말 서로를 향해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던 때가 정말 있었을까?

누구나 사랑할 때는 예뻐보이고 보듬어주고 싶던 것들이 사랑 후에는 배신감과 아쉬움 때문에 미워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단계를 잘 거쳐야 상대를 깨끗하게 잊을 수 있다고 수많은 연애 컨설턴트와 연애 관련 서적들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간에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른 것처럼 사랑을 끝내는 방식 또한 다를 것이다. 하지만 굳이 공개된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욕하고 헐뜯으며 깎아내리는 모습이 그들 자신 또한 깎아내리는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비록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만들 수밖에 없는 케이블이라지만, <러브 파이터>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사랑과 이별은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 같아 보는 내내 거북했다.
#러브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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