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무의 값비싼 실패가 남긴 교훈

등록 2008.03.22 13:57수정 2008.03.2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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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조용히 막을 내린 SBS 금요드라마 <비천무>는 한국 드라마 시장의 구조속에서 사전제작드라마와 장르극의 한계를 보여준 아쉬운 작품이라 할만하다.

 

김혜린 작가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비천무>는 중국 원나라 말기를 무대로 부모를 잃은 고려인 출신 무장 유진하(주진모)와, 원수의 딸인 한족 여인 설리(박지윤)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다룬 대하무협사극.

 

2004년 제작 당시 중국 현지 올로케이션 촬영과 현지 배우들의 캐스팅을 통한 한-중 합작 드라마이자, 국내 최초의 100% 사전 제작이라는 점에서 높은 화제를 모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방송사를 찾지못해 촬영을 마치고도 무려 3년간이나 빛을 보지 못한 불운한 작품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월 1일 SBS를 통해 첫 전파를 탔지만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가 바뀌는 방송가에서 3년의 공백은 너무도 컸다. <비천무>가 처음 제작되던 시점만 해도 생소하던 ‘퓨전 사극’ 열풍은 <다모> <해신> <태왕사신기> 등을 거치면서 국내에서도 새로운 흥행 장르로 자리잡았고, 관객들의 눈높이도 예전에 비하여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벌써 3년이나 지난 <비천무>의 액션 스케일과 CG로는 볼거리에서 시청자들을 만족시키는데 한계가 있었고, 오히려 ‘중국식 무협’의 한계인 리얼리티의 부재라는 약점만 더 드러내는 결과가 되었다. 한국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았지만 전체적으로 중국 드라마 스타일에 더 가까운 극 전개와 캐릭터들은, 한국드라마만의 아기자기한 매력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중국드라마의 아류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당초 24부작으로 기획된 작품을 편성상 14부작으로 무리하게 압축하면서 생긴 생략과 비약의 문제점은 시청자로 하여금 극 전개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다. 진하와 설리의 애절한 사랑, 다양한 인물들의 엇갈린 애증관계 등이 충분히 묘사되지 못하면서 시청자들이 극중 감정선을 따라잡기에 어려움을 느꼈다. 인터넷 다운로드 등을 통하여 해외판으로 이 작품을 먼저 접한 네티즌들은, 국내 방영분에서 생략된 장면과 내용 설명 등을 교류하면서 스토리를 따라잡아야하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무엇보다 <비천무>의 약점은 원작의 현대적인 재해석에 실패했다는데 있다. 설사 이 작품이 3년전에 정상적으로 방영되었다고 해도 과연 지금보다 더 좋은 반응을 얻을수 있었을지 회의적인 이유다. 비극적 운명의 연인인 유진하와 설리는, 퓨전이 대세인 요즘 사극의 주인공들에 비해 지극히 고전적인 캐릭터의 전형이었다. 드라마는 원작의 재현에 충실하려했지만, 방대한 스토리와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재구성하지 못해 엉성한 느낌을 줬고, 원작의 골수팬과 원작을 보지못한 시청자들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주연배우들의 연기력 부족도 이에 한몫했다.  주진모는 <미녀는 괴로워> <사랑> 등을 통하여 지금은 정상급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당시만 해도 긴 호흡의 대하드라마를 끌어가기에는 카리스마가 부족했고, 박지윤도 국내에서 주연급으로서의 인지도는 떨어지는 배우였다. 어색한 더빙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 배우들과의 부조화는 주연 배우들의 약점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김강우, 이종혁, 박신혜 등 지금은 주연급으로 올라선 배우들의 풋풋한 모습을 감상할수 있었던 게 그나마 볼거리였지만, 전체적으로 촌스럽다는 인상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비천무>는 여론의 화제에 힘입어 첫 방송에서만 14.3%의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이후 점점 시청률이 하락한 끝에 최근 7%의 한 자릿수까지 추락했다.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한 실망감을 그대로 드러낸 결과다. 2000년 김영준 감독과 신현준-김희선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나 오히려 원작을 망쳤다는 악평에 시달렸던 <비천무>는 드라마로서도 적지않은 수난에 시달린 끝에 가장 불명예스러운 원작의 사례로 남게되었다.

 

아쉬운 것은, 한국 드라마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전 제작 드라마’의 강점을 살리지못한 채, 오히려 편성권의 불확실성이라는 약점만 확인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3년만에 뒤늦게 빛을 보았지만, 완성도에서라도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마니아 드라마’의 반열에 조차 오르지 못한 것이 시청률 실패보다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2008.03.22 13:57 ⓒ 2008 OhmyNews
#비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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