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섬진강 봄길을 달리다

[여행] 자전거를 타고 섬진강가의 봄을 만끽했습니다

등록 2008.04.21 11:44수정 2008.04.2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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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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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구역으로 돌아오는 19번 국도에서 바라본 섬진강의 푸근한 풍경입니다 - 저 건너편은 861국도로 아침에 제가 달려온 길이지요. ⓒ 김종성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지나는, 아직은 도시의 때가 묻지 않은 푸근하고도 자연스러운 강입니다. 근래에는 산수유, 매화꽃 축제와 연이은 벚꽃축제 등으로 멀리 제가 사는 서울에서도 남도 꽃잔치를 구경하러 많은 이들이 찾습니다.

봄이면 TV에도 자주 방영되는 유명해진 명소이다보니 화개장터나 쌍계사, 화엄사, 소설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댁 고택 등의 명소가 있다는 건 안 가봐도 잘 알게 되더군요.


이렇듯 섬진강은 봄에 가볼만한 곳이 많은 여행지이지만 자전거로도 하이킹 삼아 돌아보기에도 좋은 조건을 갖춘, 편안한 강입니다.

인터넷 자전거 카페들에 나오는 자전거 여행기 중에는 섬진강가를 돌아본 글이 많습니다.
섬진강변을 따라 난 국도는 비록 사람이나 자전거가 아닌 차량을 위해 만든 도로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도 좋습니다. 지리산이 코앞에 보이지만, 급경사의 험난한 오르막 없이 순탄한 도로가 펼쳐져 있어 섬진강의 푸근하고 넉넉함을 닮았습니다.

벚꽃이 만개했을 때 자전거와 함께 섬진강가를 산책해보려고 계획했었지만 주말만 되면 왜 그리 봄비가 내리는건지…. 저의 첫 섬진강 여행을 시기하는 봄 날씨에 다음 계절로 연기할까 하다가, 오랜만에 찾아온 화창한 주말에 힘을 냈습니다. 타이어에 바람을 탱탱하게 넣은 애마를 금요일 밤 10시 50분발 무궁화호 야간열차에 싣고서 섬진강으로 향했습니다.

새벽 3시 30분, 전라남도 구례구역에 도착예정인 심야기차. 역에 서기 직전, 기관사님이 낮과는 다른 조금은 졸리운 실제 음성으로 직접 안내 방송을 하더군요. 도착 방송은 수동이지만 기차의 출입문들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혀서 심야시간에 깊이 자다가 뒤늦게 깬 승객 몇 명이 후다닥 출입문을 향해 뛰어갔지만 문이 닫혀 내리지 못하고 기차는 그냥 출발하기도 합니다. 심야야간열차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네요.

이 새벽시간에 내릴역에 못내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휴대전화와 시계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건(?)을 목격하고나니 도통 잠이 안와 눈만 감은 채 잤는지 안 잤는지 몽롱하게 구례구역에 도착했습니다.


화엄사에 간다는 여행객 두 분외 다른 몇 분들과 같이 새벽녘 작은 구례구역에 내렸습니다. 그 새벽에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하차한 승객들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네요. 기차시간에 맞춰 영업을 하러 온 택시기사분들입니다. 깊고 진하기 이를 데 없는 하얀 안개도 구례구역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여행자를 반깁니다.

다른 분들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저는 기차역 맞이방에서 조금 기다리다 역 앞 문을 연 식당에서 이른 새벽밥을 먹고 뜨끈한 방바닥에 앉아 조금 졸다가 아직도 안개가 뿌연 동네를 가로지르며 섬진강변 861번 국도를 향해 달려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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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낀 고요한 마을과 국도길을 혼자서 유유히 가자니 기분이 묘합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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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구역에서 우회전하면 곧 만나는 861번 국도의 아름다운 길 - 벚꽃은 졌지만 벚꽃나무들이 울창하고 청명한 새소리들로 가득합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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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난 새들 만큼이나 부지런한 어느 농부님이 이른 아침에 밭으로 일을 나가시네요.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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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861국도에서 내려다본 섬진강 - 안개와 같이 흐르는 강물이 왠지 신성하게 보이더군요. ⓒ 김종성




861 국도를 타고 섬진강가를 달리다

구례구역에 내려서 바로 섬진강가를 향해 출발하지 않은 것은 새벽녘 초행길이라 길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안개 낀 컴컴한 새벽에 홀연히 나타나 쌩쌩 달리는 트럭들이 무서워서입니다. 뒤에서 굉음을 내며 다가오다 옆구리를 스치며 휙 지나가는 큰 트럭은 대낮에도 공포의 존재이지요. 게다가 짜증이 난 트럭기사가 클랙슨이라도 한 번 누르기라도 하면 자전거 핸들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도 합니다.

구례구역에서 출발하는 섬진강 자전거 여행에는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역 바로 앞 다리를 건너 구례읍을 향해 직진하여 쭉 가다가 19번 국도를 타고 하동 방향의 섬진강가를 달리는 코스가 있고, 역 앞에서 바로 우회전하여 가다가 861번 국도를 타고 남도대교 방향의 섬진강변을 달리는 코스가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국도 코스를 택해 섬진강변을 따라 남도대교까지 간 다음 남도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타고 다시 구례구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애마와 함께 섬진강가를 한바퀴 달려봤습니다. 이 두 개의 국도는 같이 섬진강변을 휘감고 있으나 자전거로 달리면 그 느낌이 매우 다른 길입니다. 자가용으로 갔으면 아마 못느꼈을 섬진강가에 대한 국도별 느낌들이지요.

861번 국도를 타고 새벽 섬진강가를 달리자니 깊고 진한 안개로 섬진강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강물이 흐르는 고고한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고 아침 일찍 일어난 새들의 지저귐도 청명하게 들려서 좋았습니다.

가끔 지나가는 트럭외엔 차가 없는 국도길을, 혼자서 안개를 헤치며 유유히 달리니 무슨 천상의 길을 산책하는것 같네요. 아침 일찍 일어나 지저귀는 새만큼이나 부지런한 농부, 농모님들이 일하러 논밭으로 가시는 모습도 왠지 경건해 보입니다.

새벽기차를 이용하는 무박 이일 여행은 몸은 좀 피곤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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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도 주면서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로 약속한 섬진강가 사는 귀여운 초딩을 만났습니다 - 옆에 여동생도 있었는데 사진찍기 창피하다며 제 뒤로 숨었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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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도시의 때가 묻지않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섬진강의 모습입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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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에 산다는 참게인데 앞 발에 저렇게 털달린 커다란 토시를 차고 있습니다 - 위에는 섬진강 사는 물고기 은어입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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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장터에 가보니 대장간을 운영하시는 아저씨도 계시더군요.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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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 쌍계사가 있는 하동에는 차밭이 많이 있습니다 - 봄볕에 허리굽혀 일하는 농모님들 모습에 맘이 쨘합니다. ⓒ 김종성


19번 국도를 타고 다시 구례구역으로

861국도를 타고 가다가 남도대교에서 멈추어 다리를 건너 갔습니다. 그냥 쭉 가면 매화마을로 유명한 광양도 나오는데 그곳은 다음 여행지로 남겨 두기로 했습니다. 가보고 싶었지만 맘에 새겨두었다가 다시 찾아가보는 여행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남도대교를 넘자마자 화개장터가 무수한 홍보 표지판과 함께 나타납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른다는 유명한 화개장터는 지차체가 만든 전형적인 관광명소가 돼 장터 특유의 생기는 없네요.

화개장터 주변의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섬진강 십리 벚꽃길 만큼이나 아름답다는 쌍계사 가는길로 들어 섰습니다. 이곳은 경상남도 하동이라는 지역으로 길가에 차밭들이 논길처럼 많이 보이고 봄볕 아래서 수고롭게 차잎을 따는 농모님들의 모습도 보이네요. 매년 5월에는 하동 야생차밭 축제도 한다고 합니다.

쌍계사에서 화개장터로 다시 돌아와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구역이 있는 전라남도 구례읍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젠 안개가 사라져 섬진강변이 화창하고 선명하게 잘 보이네요. 건너편에서 마주하고 있는 861번 국도길이 섬진강과 함께 보이는데 새벽에 제가 정말 저 길을 달려왔나싶게 생소해 보입니다.

861번 국도에서 마을과 어우러진 섬진강가의 고즈넉한 풍경들을 주로 볼 수 있다면, 19번 국도길에선 넓은 논밭들의 시골농촌 모습도 볼 수 있고 소도시의 읍내 같은 정겨운 풍경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길가에 간판없는 이발소가 재미있어서 들어 가보니 쥔장께서 봄볕도 따가운데 자전거타고 고생한다며 시원한 물도 주시고 소파에서 쉬어 가라고 하네요. 봄날씨가 여름처럼 더워서 물통이 자주 비워지곤 했는데 종종 보이는 주유소나 관공서에 들어가서 정수기 물 좀 마시겠다고 부탁하면 자판기 커피까지 그냥 뽑아주시니, 훈훈함이 느껴집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전거 여행자들에겐 호의를 보여 좋습니다. 자전거가 지나가면 자기가 무서워 도망가는 줄 알고 짖으면서 무섭게 쫓아 오려는 성질 급한 동네 개들만 빼고요. 구례읍을 거쳐 구례기차역에 도착하니 오후 5시. 새벽 5시에 출발했으니 장장 12시간동안 섬진강 주변을 달렸네요. 다음에는 무박 이일이 아닌 일박 이일의 일정으로 곡성과 광양까지 여유롭게 다녀와야 겠습니다.

따듯한 어머니 품 같은 섬진강가는 누구나 반겨줄 것 같은 정겨운 곳입니다. 더욱이 자전거를 타고 간다면 남도의 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ㅇ 돌아본 섬진강 길 요약 : 구례구역 (우회전) - 861국도 - 남해대교 건넘 - 화개장터 - 쌍계사 - 화개장터 - 19번 국도 타고 구례읍 방향 - 구례구역


덧붙이는 글 ㅇ 돌아본 섬진강 길 요약 : 구례구역 (우회전) - 861국도 - 남해대교 건넘 - 화개장터 - 쌍계사 - 화개장터 - 19번 국도 타고 구례읍 방향 - 구례구역
#섬진강 #구례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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