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을 가득 메우고 저마다 촛불을 들고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는 3일 밤 9시에 마무리됐다. 참가자 가운데 80%를 차지한 여중고교생들은 반주 없이 생목소리로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르는 것으로 촛불문화제를 마감했다.
문화제를 끝낸 청소년들은 주최 측의 당부에 따라 앉았던 자리청소에 나섰다. 주변정리까지 깔끔히 마무리한 여중고생들은 삼삼오오 인산인해를 이루던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을 빠져나와 지하철과 버스 등을 타고 집으로 이동했다.
기존 한미FTA 저지 범국민행동의 집회는 '운동권'들의 식상한 말 잔치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3일 촛불문화제는 10대 청소년들이 직접 느끼는 생활 속 문제들을 '광장'으로 끌고 나와 기성세대를 향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는 점에서 매우 놀랍다.
10대 여중고생들의 '발랄한 경고'는 한동안 한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간 20대 보수화를 우려했던 사회학자들이 많았지만, 3일 보여준 '10대 청소년들의 유쾌한 반란'은 향후 한국사회의 어두운 미래를 점치지 않아도 좋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날 촛불문화제 마무리 발언에 나선 한 상고생의 말도 주목해볼 만하다. 그는 "나는 공부를 못해서 상고에 갔다"며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나보다 더 개념이 없는 건지, 왜 미친 소를 수입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그들의 언어로 차분하게 말했다.
일산에 산다는 고3 여고생 서수정양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나라 걱정 때문에 잠 못자고 있다"며 "수능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명박 정부로 인한 나라 걱정 때문에 공부가 안 된다"고 걱정했다. 이어 서양은 "이명박 정부 들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바로 학생"이라며 "영어몰입교육이다, 학교자율화 조치다 해서 날이면 날마다 이상한 발표를 하는데 정말 스트레스 쌓인다"고 토로했다.
그는 "내일은 또 뭘 발표할지 걱정된다"며 "고3인 제가 나라 걱정하느라 잠을 못 잔다는 건 정말 참담한 일"이라고 말했다.
시민 최경희(30)씨는 "지금까지 정치에 관심없었다"며 "이명박 정부 들어선 뒤로는 정치에 관심을 안 가지려고 해도 안 가질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어떻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을 반미로 몰아붙이냐"고 분개하기도 했다.
3일 집회를 이끈 '미친소닷넷' 운영자 백모씨는 "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지 몰랐다"며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 없다고 하지만 본인들의 문제와 직결된 것에 대해서는 폭발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이 문제는 오래도록 끌고 가야 할 문제 같다"며 "지금 조중동이 나에 대해 성분검사를 하고 배후론을 제기할 텐데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해봐야겠다"고 말했다.
백씨는 이날 끝까지 자리에 남아 바닥에 떨어진 촛농까지 제거하면서 "경찰한테 꼬투리 잡히기 싫어서 그렇다"며 "학생들이 많이 참가해서 나도 의아해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