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내가 그린 미친 소 그림이 TV 나왔네"

[인터뷰] '과천 현수막'으로 화제 된 김동호 화백

등록 2008.05.27 09:36수정 2008.05.2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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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화백 ⓒ 장윤선



"어? 아빠 그림, 뉴스에 나왔다."

정부가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강행의사를 굽히지 않자, 화가 난 과천 주부들은 지난 16일 집집마다 양팔 길이의 현수막을 내걸기 시작했다. "우리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는 글을 새기고 그 안에 미국산 쇠고기가 몰려오는 삽화를 넣었다.

과천 주부들이 처음 현수막을 걸기 시작하면서 이 운동은 곧장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 운동을 주도한 서형원 과천시의원은 하루 사이에 전국 각지에서 전화와 이메일을 무려 500통이나 받았고, 이메일을 통해 현수막 원본파일을 전달해야 했다고 전했다. 전국 주부들 사이에 '현수막 운동'이 불붙기 시작한 게다.

'MADE IN USA'라 쓰인 커다란 선적에 광우병 쇠고기들이 잔뜩 실려 한국으로 입항하는 걸 한 주부가 장바구니를 들고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장면의 삽화. 이 그림은 지난 5월초 유전자조작(GMO) 옥수수가 대거 수입된 데 이어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마저 유통될 판에 시름이 깊어진 주부들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과천 주부들은 이 그림이 누구의 작품인지 알지도 못한 채 처음 현수막에 넣었다. 대체 이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 그는 바로 김동호(47) 화백이다. 

"과천 주부들이 제 그림을 현수막에 넣었는지도 몰랐어요. 우연히 TV뉴스를 보는데 우리 딸이 '아빠 그림 나왔다!' 해서 화면을 보니 정말 제 그림이었어요. 한편으로는 전율이 몰려왔습니다. 순간 창작에 게을렀던 자신을 탓하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의지가 솟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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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화백의 그림이다. ⓒ 장윤선


"제 그림 누가 파는지도 모르겠어요, 하하하"

김 화백이 이 그림을 그린 건 2년 전. 한미FTA범국민운동본부의 부탁을 받고 출고한 그림이었다. 2년 전에도 한미FTA의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가 '쇠고기 협상'이었는데, 이때 민중연대로부터 청탁을 받고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과천 시민들도 그 그림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무작정 썼을 거예요. 제가 따로 크레딧을 걸지 않았거든요. 누구나 자유롭게 한미FTA 문제점을 설명할 때 자료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확산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제가 민중연대에 이 그림을 넘겨준 뒤 저작권 같은 걸 전혀 요구하지 않았거든요. 지금도 저는 선의의 목적으로 제 그림이 쓰인다면 그 자체로 행복합니다. 다만 상업적 목적으로 쓰시면 그 문제는 별도로 고민해볼 생각이예요."

화제가 된 김 화백의 그림은 현재 인터넷 옥션과 G마켓에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쥐박이 티셔츠'만큼 화제가 된 셈이다.

"처음에는 1만원에 팔렸는데 지금은 여러 사람들이 구매해서 6500원으로 내려갔어요. 제가 판매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누가 파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것도 인터넷 댓글을 통해 알게 됐답니다. 하하하."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너털웃음을 웃어재꼈다. 작업은 열심히 하지만 상업적 욕심은 없는 천상 예술가 표정이었다. 지금까지는 특정 개인이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냥 상황을 즐겁게 관망하고 있다고 했다.

"만약 저한테 누군가 저작권료를 준다면 그 돈은 모두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운동에 쓰겠습니다. 우리 딸, 또 이 땅에 사는 많은 어린 아이들에게 안전한 쇠고기가 전달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겠습니다. 영리 목적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제 그림을 제공할 용의가 있어요."

김 화백의 그림은 현재 T셔츠 도안과 버튼 제작계획에 들어갔다. 진보연대는 조만간 이 그림을 담아 버튼을 제작한 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계획이다.

그의 그림은 새시대예술연합(www.new-art.or.kr) 사이트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네컷짜리 스토리만화를 비롯해 '미국산 쇠고기 안 사고 안 먹고 안 팔기' 삼불운동 촉구 등 한미FTA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러 시사만화들이 게시돼 있다.

노동운동가에서 시사만화가로, 촛불 든 시민으로

그는 1988년 <한겨레> 만화초대석을 필두로 월간 <말>에서 시사만화를 10년간 그렸다. 전국연합과 통일연대에서는 문예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81학번으로 중앙대 응용미술학과에 입학한 그는 군대 제대 뒤 노동현장으로 들어갔고, 대학을 중퇴했다.

인천에 있는 철도부품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산재를 당해 손가락 2개가 프레스 기계에 말려 들어갔다. 시인 신현수는 '동호의 손가락'이라는 시를 통해 노동현실을 개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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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화백 ⓒ 장윤선


80년대 노동운동가에서 2008년 시사만화가로 돌아온 그가 본 촛불문화제는 어땠을까. 80년대 감수성으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울컥했어요. 와~. 이 녀석들이 청계광장에 나왔구나 뿌듯했습니다. 10대가 한국사회 최대 현안의 최전선에 서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요. 일제시대 때나 4·19 때도 나라와 민족을 걱정해 거리로 뛰쳐나왔던 세대는 10대였습니다. 그 얼이 죽지 않은 거죠."

열세살 짜리 딸아이의 손을 잡고 가끔 촛불문화제에 나갔다고 했다. 딸과 아내는 거의 매번 촛불문화제 자리를 지킨다고 전했다. 한 사람의 힘이 중요한 때에 딸과 아내가 거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하다는 김 화백. 현 국면은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우리 국민들은 위기 때마다 촛불로 국면을 타개해왔습니다. 이명박정부는 국민들을 무시하고 자기 식대로 밀어붙이면 '만사 OK'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안 된다는 거지요. 대미굴욕협상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겁니다. 만일 이명박 대통령이 계속 국민무시 정책으로 나간다면 중간에 국민이 끌어내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리의 민심이 후끈하던데."
#김동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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