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열 <시사IN> 기자가 27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08 오마이뉴스 세계시민기자포럼에서 미디어로서의 블로그에 관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남소연
1. 집단적 경험6월 2일 <시사IN> 기획회의 때 일이다. 회의가 끝날무렵 갑자기 신입기자(박근영·변진경·천관율) 세 명이 A4 한 장짜리 기획서를 내밀었다. 촛불집회 현장 중계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선배 기자들은 모두들 뜨악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시사IN>은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시사주간지다. 당연히 중계 장비도 없다. 그런데 현장 중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주간지 기자들이 시위 현장중계를 한다는 신입기자들의 상상력에 선배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러나 후배들의 충정만은 이해했다. 매일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하던 후배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상황을 담아내기에 주간지라는 매체 형식이 얼마나 한계가 많은지 절감했을지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독자가 기사를 읽을 다음 주까지 여전히 뉴스가 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뉴스'를 써야 한다는 것이 바로 주간지 기자의 어려움이다.
후배들의 충정이 묻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촛불집회 현장 중계'에다 '거리편집국 설치'를 더 얹어서 제안했다. 단 단서를 달았다. 카메라로 중계하는 것은 우리가 잘하는 일도 아니고, 이미 잘하는 곳이 많아서 경쟁력이 없으니, 우리 방식대로 기사로 중계하자고 제안했다.
명분은 간단했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는 국민과 소통이 안 되서라는데, 우리가 그 소통의 다리를 놓자는 것이었다. 촛불집회 현장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국민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잘 정리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해 주자고, 그래서 생각을 바꾸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 때 기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내가 꼽은 '거리로 나가야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 국민이 언론을 믿지 못해서 직접 촛불집회 현장 소식을 전달하겠다고 나서는데 기자들이 편집국에만 앉아있는 것은 국민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 아니냐. 둘, 1인 미디어 시대에 시민기자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거리에서 계급장 떼고 그들과 직접 경쟁해야 한다. 셋, 고향으로 돌아가자. 이것이었다.
세 번째 이유는 좀 설명이 필요하다. 경영진의 무도한 삼성기사 삭제사건으로 초래된 '시사저널 파업' 이후, 우리들의 편집국은 거리였다. 시사저널 건물 앞 천막편집국,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 용산의 후미진 뒷골목의 낡은 건물 한켠, 방송회관 방송노조 사무실, 북아현동 심상기 회장 집 앞 골목, 우리는 우리를 받아주는 것이면 아무 곳이나 '편집국'을 차렸다. 브레히트에 비유하자면, '신발보다도 더 자주 사무실을 바꾸면서' 파업과 창간을 견뎠다.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거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 파업과 직장폐쇄, 결별, 그리고 <시사IN> 창간 과정에서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던 열혈 독자들이 왠지 촛불집회에 나와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도 거리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
주진우 기자가 결정적으로 거들어 주었다. 천막에서 먹고 자면서 현장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편집국장이 결단을 내렸다. 다시 <시사IN> 거리편집국을 차리기로 한 것이다. 주진우 기자가 상황실장을 맡았다. 파업 당시 최고 일꾼이었던 사진부 안희태 기자와 미술부 이정현 기자도 거들었다. 거리편집국 드림팀이 꾸려진 셈이다.
바로 그날 오후 거리편집국을 청계광장 입구에 세웠다. 워낙 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기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3일 동안 계속 비가 와서 촛불집회 참가자도 많지 않았다. 서울시청 청계광장 관리자가 계속 항의를 해서 낮에는 천막을 걷고 밤에 다시 치는 것을 반복해야 했다. 늘 그렇듯, 현장에는 변수가 많았다.
6월 5일부터 날이 개고 집회 참가자가 늘면서 거리편집국에는 활력이 돋기 시작했다. 연휴 동안 집회장을 찾은 많은 시민들이 기자들을 격려해주었다. 그렇게 보고싶었던 창간 독자들도 먼 길을 달려와 기자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효과도 있었다. 촛불집회 덕분에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정기구독자가 는다는 소식을 듣고 '시사IN도 숟가락 좀 얹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정기구독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광고주들이 광고를 주지 않아, <시사IN>은 '안정적인 적자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편집국을 차리고부터 정기구독자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몇 가지 난제들도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시사IN 홈페이지를 '팀블로그'(blog.sisain.co.kr)로 바꾸는 과정이었는데, 거리편집국이 대박이 나면서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6월 2일부터 15일까지(11일 12일 제외) 2주 동안 거리편집국을 운영했는데, 150만명의 누리꾼이 방문했다. 순식간에 거리편집국은 '파워블로거'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