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셔너블 할머니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패션이 화려하다.
문종성
호기심 많은 10대 소녀인 애리는 수줍은 채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쿠바라는 닫힌 세계에서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얼마나 강렬할까. 더구나 어릴 때부터 할머니에게서 들어온 환상 가득한 한국에서 왔다는데 미지에 대한 동경은 끝이 없을 성싶었다.
한국말을 조금 섞어가며 조심스레 말하는데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와중에 보이는 덧니와 보조개가 퍽도 예쁘게 보였다. 무엇보다 한국인의 핏줄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보니 눈동자에 어딘지 모를 서글함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더 정이 갔다.
우린 다시 숙소로 돌아가야 했으므로 더 이상은 대화 나누기가 힘들었다.
"또 봐요.""네, 안녕히 가세요."애리는 너무나 짧았던 만남이 아쉬운 건지 시원하게 배웅 인사를 하지 못했다. 나중에 다시 보게 되면 식사라도 같이할 생각으로 그만 길을 나서야 했다.
자본주의 입김이 곳곳에 스며든 쿠바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말레콘 주변을 훑어보았다. 나중에 다시 찬찬히 살펴볼 계획이지만 쿠바는 체감 상으로도 상당히 변화된 듯했다. 아바나에는 이미 자본주의 입김이 곳곳에 스며 들어왔고, 시민들은 돈맛을 알아가고 있었다. 어떤 관광객이 몹쓸 버릇을 심어 주었는지 사람들은 사진기만 들이대면 초상권을 들먹이며 "1달러!"를 단호하게 외치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주차비란 개념도 없던 나라에서 불과 2~3년 전에는 25센트의 주차료를 부르고 어느새 1달러를 요구하는 풍토로 바뀌었단다.
사회주의라고 하지만 시장 경제 시스템이 곳곳에서 보인다. 여기저기 흥정이 오가고,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며, 화폐 가치에 따라 서비스의 차원도 달라진다. 최소한 관광객을 상대로 한 모든 서비스는 돈을 매개로 가치가 정립된다. 또한 수입의 적지않은 퍼센티지를 관광으로 얻기에 관광객들에게 함부로 하지도 못한다. 오죽하면 현지인은 제한을 당하는 관광객 출입전용 지역까지 있겠는가.
보통 쿠바인들이 한 달 임금이 10~20달러 정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관광객은 단 하룻밤을 자는데도 그들의 한 달 월급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해 버리니 이들의 주머니를 바라보고 일하는 사람들은 초기 자본주의가 겪었던 현상들을 하나하나 깨우쳐 가고 있다.
이를테면 나라에게 책정한 액수보다 더 많은 비용을 외국인에게 청구해 그 차액을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든지 아주 순진하게는 거스름돈을 일부러 적게 주며 그것을 실수로 포장하는 것이다. 대개는 적은 단위의 돈을 먼저 거슬러주고 큰 단위의 동전은 손에 쥐고 있다가 손님이 모르고 넘어가면 그대로 자기 것이 되는 것이고, 손님이 이상하게 여겨 지적하면 손에 있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주면 되는 것이다. 주로 나 같은 여행자들에게 아주 흔하게 쓰는 고전적인 수법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