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학생 경준이, 더불어 함께 입학식 준비 끝~

[강원도 정선] 운치분교 나홀로 입학생 경준이 밤잠 설친데요

등록 2008.07.20 11:20수정 2008.07.2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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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치분교 아이들. 눈 내린날 개학한 아이들, 비 내리는 날 방학을 맞았다. 경준이는 끝내 다리만 출연했다. ⓒ 강기희


19일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기상청 예보는 어김없이 빗나갔다. 산좋고 물좋기로 소문난 강원도 정선은 이날 새벽부터 구름을 몰고 다니며 비를 뿌렸다. 새벽부터 시작한 비는 저녁이 될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았다.


경준이 입학식날은 눈이 펑펑, 방학식날은 비가 주룩주룩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운치리. 운치리는 동강변 마을이다. 동강의 구불구불한 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백운산은 운치리의 앞산이다. 동강변에서 백운산을 바라보다 몸을 돌려 산골짜기로 살짝 숨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운치리는 은둔의 마을이다.

기자가 비가 쏟아 붓는 날 오지마을로 가는 이유는 나홀로 입학생인 김경준(운치분교 1학년·8)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경준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백운산은 허리에 큰 구름띠를 두르고 있었다(☞ 관련기사: 벌써 집에서도 가방메고 사는 경준이/ 오늘 입학한 경준이는 '운치리의 축복').

지난 2월 27일 처음 경준이를 만나러 갈 때만 해도 정선 지방은 눈이 내렸고, 경준이가 살고 있는 운치리 마을도 흰눈으로 덮여 있었다. 5개월 만에 다시 찾은 운치리는 눈길 대신 빗길이었고, 옥수수통이 여물어 가는 성하의 계절이었다.

올해 운치분교의 유일한 입학생인 김경준. 지난 3월 5일 운치분교에 입학한 경준이는 이날 여름방학을 맞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입학했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1학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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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경준이. 제가 누군지 궁금하시죠? 곧 알려 드리겠습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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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준이. 버스를 타기 위해 우산을 접었다. 이렇게 잘난 얼굴을 왜 가렸을까? ⓒ 강기희


여전히 낯을 가리는 나홀로 입학생 경준이

이날 경준이를 만난 곳은 운치분교 앞. 경준이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교생 8명(남학생 6명, 여학생 2명) 중에서 7명이 함께 있었다. 경준이 형인 김현준(운치분교 6학년)이 기자를 알아보며 "어, 어떻게 왔어요?"한다.

"경준이가 내일 서울 간다고 소문 났기에 찾아왔지."

그러나 주인공인 경준이는 기자를 보자마자 우산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처음 만났을 때도 경준인 낯을 가려 한동안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촌스러움은 학교에 입학해도 여전했다.

"자, 방학도 했는데 기념 사진 찍자."

우산을 받쳐든 아이들이 일렬로 섰으나 경준이는 끝내 카메라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형들과 장난을 치다가도 카메라만 대면 재빨리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는 아이 김경준. 그 순박함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경험상 경준이는 한 시간만 지나면 기자에게 장난을 걸어 올 것이 분명하니 서두를 일도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길 20여 분. 하루 세 차례 마을을 오고 가는 공용버스가 빗속을 뚫고 달려 오더니 아이들 앞에 섰다. 아이들을 태운 버스는 중간중간 정차해 아이를 내려주고 경준이네 집으로 갔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10리길. 평소에는 걷기도 하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버스를 탔다.

지난 2월만 해도 눈이 가득했던 운치리 마을은 고추와 옥수수, 감자, 무, 콩 등의 작물이 각자의 영역을 확보한 채 익어가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니 곳곳에 '우리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지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쇠고기 먹지 말란 법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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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젖은 운치리. 경준이네 집에서 내려다 본 운치리. 밭에 출하를 앞 둔 '무'가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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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아이들. 하루 세 차례 오고 가는 버스가 아이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 강기희


송아지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한숨뿐 "미국소 맛있다니 미칠 노릇"

경준이 집에 도착하니 외출 준비를 하던 경준이 아버지(김용성·48)가 기자를 알아보고 악수를 청한다. 김용성씨와 툇마루에 걸터앉아 그간의 안부를 나누었다.

"올 농사는 잘 되었나요?"
"올해도 틀렸어요. 이제 곧 무를 출하해야 하는데 작업비도 못 건져요."

올해 김용성씨가 부친 농사는 4만5천 평. 무를 많이 심었지만 가격이 떨어져 걱정이란다. 그간 들어간 비료값이나 농약값은 언감생심. 현재의 시세로는 무를 다 팔아도 뽑는 인건비도 어렵다는 것이다. 작년에도 3천만 원 이상 적자를 본 김용성씨. 그의 한숨이 처마로 떨어지는 낙숫물보다 깊다.

"그렇다고 농사를 포기할 수도 없으니 걱정이 크겠어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농민에 대한 대책이 없어요. 그냥 알아서 농사 짓다 죽으라는 모양입니다."

김용성씨는 연거푸 담배를 피웠다.

"어, 송아지가 한 마리 늘었네요? 그렇다면 저 놈은 경준이 송아지네요?"

기자가 외양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잔뜩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꿔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놈 생겨봤자 전혀 도움이 안 돼요. 사료만 축내는 걸요."

경준이네 소는 송아지 두 마리를 포함해 모두 네 마리.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송아지는 한 마리였다.

"왜요? 송아지 값이 좋지 않나요?"
"작년에 비해 엄청 떨어졌어요."

1년 전만 해도 500만 원 이상 호가 하던 큰 소 가격이 지금은 300만 원이고, 250만 원 하던 송아지는 150만 원 밖에 하지 않는단다. 소값은 떨어졌지만 사료값은 작년에 비해 30% 이상 올랐으니 송아지도 반갑지 않단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총리,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까지 미국산 쇠고기가 맛있다며 쇼를 하는데 한우 값이 좋을 리가 있겠어요? 미칠 노릇이지요."

김용성씨도 정부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섯 대의 담배를 피운 그는 태백을 돌아 정선읍까지 다녀오려면 지금 떠나야 한다며 빗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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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준이 송아지. 경준이 송아지가 지난 봄에 태어났다. 송아지가 고개를 내밀며 "나도 사진 찍을래요~"한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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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장이. 낯을 가리는 건 잠시, 그 후엔 개구장이. 경준이가 처마에서 오줌을 누고 있다. ⓒ 강기희


"농사일 두고 떠나려니 애 아빠에게 미안해요"

경준이는 그 시간 방에서 형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경준이 어머니(이기자·48)는 20일 서울로 가기 위해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경준이가 좋아하겠어요."
"그렇긴 하지만 집에 할 일이 태산인데 며칠씩 떠나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애 아빠한테 미안할 뿐이에요."

할 일 많은 농촌. 맑은 날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고, 비 오는 날엔 밀린 집안 일을 해야 하는 게 시골살이다.

"경준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그러니 애 아빠가 허락을 하지 그렇지 않으면 보내 주지도 않을 겁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맨발로 뛰어야 하는 게 농촌의 부모들이다. 이기자씨와 경준이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학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다 들어 있었다.

지난 2월 입학을 앞두고 산 실내화는 낡았고, 새로 받은 교과서도 귀퉁이가 푸슬푸슬 떨어지고 있었다. 생활기록부엔 경준이가 1학기 동안 했던 행적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은 경준이. 건강하게 한 학기를 마쳤다.

공책을 펼쳐보고 있는데, 경준이가 마루로 뛰어 나오며 "100점 맞은 것도 있어요"했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여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경준이. 기자의 예상대로 자기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경준이가 국어 공책을 펴면서 '100점짜리' 받아쓰기를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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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 백점! 경준이가 공책을 펼치며 '100점'을 보여주고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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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준이와 어머니. 여행 가방을 싸다가 사진 찰깍. ⓒ 강기희


<오마이뉴스> 때문에 유명인사 된 경준이 "낼 서울갑니다~"

서울이 어떻게 생겼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는 경준이에게 "서울 가는 기분이 어때?"라고 물었다. 경준인 그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냥 씨익 웃기만 했다. 그리곤 처마로 내려서더니 빗물이 흐르는 마당에다 보란 듯 오줌을 눴다.

"얼래리꼴래리. 아저씨 다 봤다."

기자가 경준이 오줌 누는 거 봤다고 놀렸지만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컴퓨터가 생겼네요?"

지난 3월만 해도 경준이네 집은 컴퓨터가 없었기에 물었다.

"학교에서 오래 되었다며 안 쓰는 거 가지고 왔어요."
"인터넷 선을 깔았어요?"
"오늘 깔아 준다고 했는데 비가 와서 못 온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난 경준이 사진도 보지 못했던 이기자씨. 경준이의 나홀로 입학 기사를 계기로 운치리 마을은 때 아닌 '방송' 붐이 일었다. KBS2 <강호동의 1박2일> 프로그램이 운치분교 아이들을 찾았으며, 같은 방송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후토스>도 운치분교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촬영했다.

지역의 유명 인사가 된 경준이. 운치분교 1학년 진달래반 1번인 김경준은 20일 <오마이뉴스>와 '아름다운재단'이 공동주최하는 '더불어 함께 입학식' 행사에 참여한다. 방학과 함께 입학식을 치르는 경준이. 그러나 이번은 '나홀로'가 아닌 나홀로 입학생인 아이들이 '함께' 치르는 입학식이다.

언제 폐교될지 모르는 운치분교. 올해도 폐교 문제로 마을 회의가 열렸던 운치리 마을. 경준이 아버지 김용성씨는 마을의 미래를 위해서 폐교를 반대했다지만 언제든 폐교 대상이 될 수 있다. 교육이 경제적 이유로 재단되어지는 요즘 운치분교의 앞날도 위태롭기만 하다.    

경준이에게 서울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고 떠나는 길.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아이들이 떠난 운치분교는 비에 젖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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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운치리 마을을 나오면 동강. 지난 겨울 놓았던 섶다리가 아직 남아있다. 그동안 큰 물이 나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 강기희



#나홀로입학생 #더불어함께입학식 #오마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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