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도 '북풍'이... 매케인 반격 나서나

푸틴 러시아 총리 "그루지야 사태는 '대선용'" 주장

등록 2008.08.29 14:36수정 2008.09.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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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28일 미 CNN 방송 인터뷰를 통해 "그루지야 사태가 미국의 음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 CNN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28일 미 CNN 방송 인터뷰를 통해 "그루지야 사태가 미국의 음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 CNN

 

그루지야 사태로 악화된 미국-러시아 관계가 미국 대선의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푸틴 총리가 '음모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특정 대선 후보를 돕기 위해 그루지야 사태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점차 열기가 더해지고 있는 미국 대선에 '미국판 북풍'이 몰아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루지야 정부와 '국제 미디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 정부에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물론, 실세인 푸틴 총리까지 나서 연일 그루지야와 미국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8월 28일 방송된 푸틴의 CNN과의 인터뷰는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푸틴 총리는 "미국이 (그루지야) 상황을 악화시켜 미국 대선에서 어떤 후보를 돕고자 하는 목적으로 분쟁을 일으켰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며,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 공격은 미국 대선용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대선 후보를 거명하지 않았지만, 그루지야 정부와 오랜 유착관계를 맺어온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겨냥한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푸틴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미국, 수수방관했거나 지원했거나"

 

남부 오세티야 차량번호판을 단 채 화물을 잔뜩 실은 한 자동차 옆을 러시아군 장갑차와 군 트럭이 줄지어 가고 있다. ⓒ 연합뉴스

남부 오세티야 차량번호판을 단 채 화물을 잔뜩 실은 한 자동차 옆을 러시아군 장갑차와 군 트럭이 줄지어 가고 있다. ⓒ 연합뉴스

러시아가 미국의 의도에 대해 강한 불신을 품고 있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야를 공격할 때 미국이 지원했다는 증거를 러시아 군부가 확보했다는 것이다. 푸틴도 언급한 증거란 그루지야군이 점령한 남오세티야 지역에서 미국인 여권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야를 공격할 때, 미국이 이를 지원하지 않을 목적이었다면 그 곳에 미국인이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푸틴의 주장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러한 주장을 "비이성적"이라고 일축했다.

 

또 하나는 최소한 미국이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 공격을 예방하거나 중지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격 당시 그루지야에는 130명의 미군 군사고문단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 공격을 몰랐을 리가 없고, 미국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루지야 사태는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이 러시아의 시각이다.

 

이러한 불만은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 공격을 지원했거나 방관한 미국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의문으로 이어졌고, 결국 푸틴이 나서 '대선용'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의혹 제기에 대해 CNN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자, "확실한 것을 말한 것을 두고 놀라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놀랍다"고 받아치기도 했다.

 

매케인의 친 그루지야 행보

 

러시아의 푸틴이 그루지야 사태를 미국 대선용이라고 비난하기 이전부터 매케인의 행보는 구설에 올라 있었다. 매케인의 외교안보 최고 참모인 랜디 슈네먼은 그루지야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는 로비스트로 활동해왔다. 그는 특히 지난 4월 17일 매케인과 사캬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 사이의 전화통화를 주선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매케인의 친그루지야 행보가 사캬슈빌리의 군사 모험주의를 부추겼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그루지야 정부가 남오세티야 공격을 감행한 배경에는 '미국이 러시아의 개입을 차단하고 우리를 지원해줄 것'이라는 사캬슈빌리의 판단이 작용했고, '공화당 후보'인 매케인이 그 근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사캬슈빌리는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과신한 반면, 러시아의 힘은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어쨌든 그루지야 사태로 매케인은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공격하자, "우리 모두는 그루지야 사람들"이라며 그루지야 보호를 핵심적인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반면 러시아를 "보복주의자"로 부르는 등 맹공을 퍼부으면서 러시아를 G8 그룹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에 대한 정치 공세는 미국인들의 반러 감정을 자극하면서 매케인의 지지율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오바마에게 계속 밀리다가, 그루지야 사태가 터지면서 한 때 '박빙' 내지 '우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전당대회가 시작되면서 매케인은 오바마에게 다시 뒤처지기 시작했다. 

 

매케인, 러시아의 선거개입에 반사이익 얻나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자료사진). ⓒ 연합뉴스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자료사진). ⓒ 연합뉴스

러시아가 이례적으로 미국 선거에 '음모론'을 들고 나오면서 '러시아 변수'는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부시 행정부와 함께 '음모론'의 당사자로 지목된 매케인은 이를 선거전에 적극 이용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 하듯 매케인은 부인 신디를 그루지야의 수도 드빌리시에 보내 인도적 활동을 벌이도록 했다.

 

또한, 연일 러시아에 대한 비난과 그루지야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을 쏟아내면서 "보복주의자 러시아"를 잘 다룰 수 있는 적임자는 바로 자신이라며, '러시아 변수'를 대선 의제로 부각시키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28일 자 <뉴욕타임스>는 매케인의 이러한 행보가 러시아 내에서 '반 매케인 감정'을 야기하고 있다며, 러시아 의회가 최근 남오세티야의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매케인에게 비난을 퍼부었다고 전했다.

 

'나약한 지도자'로 비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오바마 역시 강도는 매케인보다 덜하지만 러시아의 비난전에 가세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 정부가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 독립을 승인하고 나서자, "러시아를 국제적으로 더욱더 고립시켜야 한다"며, 러시아가 계속 국제 규범을 무시한다면 러시아와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변수는 매케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국가안보는 민주당보다는 공화당'이라는 인식이 '부시 8년'에도 여전히 미국인들에게는 신화처럼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베트남 참전용사 출신으로 외교안보에 대해 풍부한 경험이 있는 매케인이 '경험'의 측면에서 오바마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더구나 러시아가 그루지야 사태를 미국 대선용이라고 비난하면서 간접적이지만 강력하게 매케인을 지목해 미국인들의 반러 감정을 부채질함으로써, 매케인이 반사이익을 얻을 공산도 커졌다. 미국과 러시아 간에 냉전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판 북풍'이 대선 가도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것이다.

2008.08.29 14:36 ⓒ 2008 OhmyNews
#그루지야 #미국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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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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