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증발하다

등록 2009.02.16 17:30수정 2009.02.1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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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이는 나의 단짝친구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따라 강남이 아닌 속셈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산수점수 향상보다는 친구와 놀기 위해 학원을 따라갔건만 친구는 얼마 되지 않아 학원을 그만두었다. 자신이 그만두는 대신 나를 집어넣는 것으로 학원장과 은밀한 커넥션이 이루어졌는지까지 짐작할 수 없었던 나는 그냥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된 친구가 바로 혜진이었다. 혜진이는 나와 다른 초등학교였지만 같은 반에 여학생이 나를 포함 3명밖에 없었던 관계로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3명이라는 숫자가 어린 시절에는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대부분 2자리씩 앉게 되어있는 교실에서 어느 한 명은 빈 옆자리와 함께 할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한 명은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인지 우리 3명은 자주 아옹다옹했고 결국 떨어져 나가는 것은 나였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의외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한 친구가 이사를 가서 학원을 그만두게 되어 나와 혜진이만 남은 것이었다. 드디어 굴러들어 갈 자리가 생긴 것이다. 물론 우리 둘도 졸업과 동시에 학원을 그만두었고 같은 중학교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사는 곳이 꽤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등교와 하교를 같이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우리라기보다는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던 나는 혜진이가 나를 데리러 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의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항상 같이 붙어 다니다보니 누가 보더라도 단짝 친구처럼 보였다. 여전히 소소한 다툼들이 이어졌지만 하루가 지나면 다시 등굣길에서 만나게 되니 앙금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생애 처음으로 솔리드 테이프를 살 때 같이 가주고 꽃잎을 말려 코팅한 책갈피를 준 것도 혜진이었다. 푸르매니 이슬비니 하며 만화잡지를 보고 열광하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까르르거리는 사이 글씨체마저 너무 비슷해져버렸다. 우리 말고도 4명과 친한 그룹을 이루었는데 혜진이가 단짝인 것만은 변함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짝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나 말고 다른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면 왠지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서운한 마음은 쉽사리 가시지 않고 더욱 단단해져갔다. 급기야 나는 절교편지를 쓰게 되었다. 단어조차 유치한 ‘절교’라는 두 글자의 힘은 위력적이었다. 그 이후로 등교와 하굣길에서 혜진이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혜진이 말고 원래 친했던 그룹의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나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2학년으로 막 올라가기 전에 혜진이와 화해를 하였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만큼 사이는 조금씩 멀어져 버린 것 같았다. 반도 갈리게 되어 혜진이와 예전처럼 지낼 수는 없었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기는 했지만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인사하고 지나치곤 했다.

 

시간은 더욱 빨리 흘러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친구들과 나눈 편지들을 정리하던 중 혜진이가 쓴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싸운 후 쓴 사과편지였으리라. 손수 파스텔로 멋을 낸 편지지에 익숙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혜진이의 편지였다. 순간 예전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기억의 맨 바닥에서 이기적인 나의 모습도 같이 떠올라 이내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펜을 들었다. 2년 만에 혜진이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진 것이다.

 

고심하며 편지를 쓰기는 했지만 어떻게 전달해 주어야 할지 막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화해를 하기는 했지만 절교선언 이후 변변히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난데없이 편지라니 혜진이가 난감해할 게 뻔한 상황이었다. 편지 말미에는 삐삐번호를 적어 두어 연락하라고 붙임까지 해둔 마당이었다.

 

하지만 이왕 쓴 편지 그대로 묻어 둘 수 없어 용기를 내 혜진이네 반 앞까지는 갔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사정을 들은 친구는 자신이 편지를 전달해 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친구의 제안에 반색을 하며 편지를 친구의 손에 들려주었다. 친구는 편지를 들고 교실로 들어갔고 잠시 후 밖으로 나왔다. 제대로 편지를 전달해주었다는 것이 친구의 전언이었다. 손에서 떠난 편지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또한 가벼웠다. 이제 삐삐가 울리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삐삐는 그 날도, 그 다음 날도 울리지 않았다. 혜진이로부터 연락은 없었다.

 

낙담했던 마음이 채 가시기 전에 졸업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추억 만들기의 일환으로 롤링 페이퍼가 만들어졌다. 같은 반이 아닌 3학년 전체에 돌리는 롤링 노트였다. 짧은 시간에 다 쓸 수는 없었지만 다른 반의 친한 친구에게는 쓸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졸업식 전날 받은 노트에는 언젠가 같은 반이었던 친구, 같이 클럽활동을 했던 친구 등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빙그레 웃으며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던 중 익숙한 글씨체가 눈에 띄었다. 그건 혜진이의 글씨체였다.

 

혜진이는 짧게 메시지를 남겼지만 편지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편지에 연락하라고 할 때는 안하다가 롤링 노트에 잘 지내라는 말을 쓴 것은 무슨 경우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애초 혜진이가 편지를 받기는 한 것인가 하는 의문부터 그렇다면 친구가 편지를 전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 되는데 친구가 왜 그런 행동을 했으며 내가 쓴 편지는 어디로 갔다는 것인지 의문투성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졸업과 함께 저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덧붙이는 글 | '내 인생의 미스터리' 응모글

2009.02.16 17:30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내 인생의 미스터리' 응모글
#편지 #단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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