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뿌리 뽑은 4만6877과 여름을 건넌 사나이

[풀뿌리가 정치를 바꾼다⑥-2] 강석환 시흥시장 주민소환운동본부 집행위원장

등록 2009.03.04 09:37수정 2009.03.3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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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소수 기득권 세력이 주도해 온 정치, 규제 완화와 개발주의 일변도의 정치는 유권자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특히 지역정치, 즉 '풀뿌리정치'가 전횡과 부패, 이권 등으로 썩어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다잡기 위해서는 풀뿌리부터 흔들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풀뿌리 정치를 살리기 위해 그간 정치의 대안을 고민해온 시민사회 모임 '좋은정치 씨앗들'과 공동으로 기획기사를 내보냅니다. 독자와 시민기자 여러분의 많은 제언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경기도 시흥시의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날씨 탓도 있지만, 이연수 시흥시장이 각종 개발사업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자 '직무정지로 인한 행정공백을 해소하고 건전한 지방자치 정착'을 위해 7월 21일부터 9월 19일까지 60일 동안 주민소환운동이 대대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비록 주민소환운동이 기각되었지만, 시흥시 유권자 27만3613명의 15%(법적 요건)가 넘는 4만6877명의 서명부를 선관위에 제출했다. 주민소환운동과는 별개로 대법원에서 1월 30일 이연수 시흥시장에 대해 징역 3년6월, 추징금 5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함에 따라 시흥시는 4월 29일 보궐선거를 치루게 됐다. 이로 인해 시흥시 내부에서는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민선 1, 2, 3, 4대 시흥시장이 모두 불법, 탈법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아 시흥시와 시흥시민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풀뿌리 시흥 자치를 바로 세우고 시민들이 직접 '불명예스러운 지방자치의 역사를 마감하자'는 뜻에서 주민소환운동을 추진하게 됐다."

'부정비리 행정파탄 이연수 시흥시장 주민소환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 강석환(44)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그에게 주민소환운동 추진 배경과 성과, 에피소드 등을 들었다.

뜨거웠던 시흥시의 여름을 건넌 사나이

 강석환 시흥시장 주민소환운동본부 집행위원장

강석환 시흥시장 주민소환운동본부 집행위원장 ⓒ 김영주

주민소환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당연히 생뚱맞다는 분위기였다.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시민들에게는 주민소환이 낯선 제도인데다 지방자치에 무관심한 일부 시민들은 이연수 시장이 구속돼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소환운동이 추진되면서 시민들은 직접 뽑은 시장에 대해 해임권도 행사할 수 있다는 당연한 권리를 알게 됐다. 주민소환운동을 통한 가장 큰 성과라면, 시민들이 직접 나서 '성숙된 주민자치 의식'을 보여주게 된 것.


하지만 주민소환운동은 표면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주민소환법의 과도한 규제 때문이다.

운동본부는 소환청구인 서명부 4만6877명를 제출하여 유효 3만5163명(75%), 무효 1만1714명(25%)으로 집계됐다. 무효 사유로 청구권이 없는 자 6037명, 확인 불능 1547명, 이중서명 3787명, 서명요청기간 외 서명 12명, 기타 부정한 방법에 의한 서명이 331명이었다. 이 중 가장 논란이 됐던 건 청구권 자격이었다. 주민소환법에 의하면 주민소환을 위해 전·출입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하에 전년도 12월 31일 이전에 전입한 사람으로 청구권 자격을 한정해 2008년 1월 1일 이후 전입한 사람은 모두 '청구권이 없는 자'로 분류 처리됐다.

하지만, 4만6877명의 수치는 운동본부의 활동이 결과적으로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5만에 가까운 이 숫자는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고,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주민의지가 충분히 반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60여 일 동안 이 활동을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다.

그는 "청구인 대표이자 집행위원장을 맡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가 공개돼 알지 못하는 많은 주민들로부터 전화 및 문자메시지를 통한 격려를 받았다"며 "주민소환운동본부 카페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수임인 신청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힘을 보여주자'는 내용이었다.

하루는 서명과정 중 주민등록등본을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본인의 거주지에 8명의 사람이 등록돼 있는데 '모두 이 서명에 공감할 것'이라며 서명을 하려고 했지만, 본인들에게 일일이 직접 받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성사시키지는 못했다.

이번 주민소환운동에는 각 시민사회단체 회원을 비롯한 일반 시민 400~500여 명이 수임인으로 등록해 청구인 대표자와 함께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렇다고 주민소환운동이 늘 활기찼던 것만은 아니었다.

7월 21일부터 서명을 받았기 때문에 날씨로 인한 고생이 상당했다. 7~8월 더위도 더위지만, 휴가철에 도시가 텅 비어 사람들이 없고 폭염 속에서 한 사람의 시민을 만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다닐 때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나 혼자, 이 도시에서 뭐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단다. 한낮의 뙤약볕을 지난 후엔 장마가 괴롭혔다. 그 기나긴 더위와 장마를 지나 9월 19일 서명부 제출을 앞두고 강 집행위원장의 힘듦도 극에 달했다. 그래서 같이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 및 활동가들을 비롯한 수임인들에게 '서명인원을 강제'(?)하며 부담을 주기도 했다.

"지역의 냉소적인 여론이 바뀌는 걸 느꼈다"

 시흥시장 주민소환을 위한 서명지

시흥시장 주민소환을 위한 서명지 ⓒ 김영주


그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강 집행위원장은 "냉소적이던 지역여론이 주민소환운동 과정을 지켜보면서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느끼게 됐다"며 "학습지 사무실에 갔을 때, 마침 KBS방송 보도를 본 교사들이 '저분, TV에서 보니 좋은 일하신다'고 하고 사무실에 교육하러 온 학부모들까지 합세해 20~30여 분만에 100여 명의 서명을 받은 일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소중한 성과와 한계를 함께 보여준 주민소환운동본부 활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선 주민소환운동 과정 중 법률위반으로 8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1명은 벌금 100만원 선고유예를 받았으며, 나머지 7명은 각자 100~200만원의 벌금을 받아 그 금액이 총 1200만원에 이른다. 이들은 결과에 불복, 약식재판 중이다. 모두 수임인 등록 없이 서명을 받아 주민소환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강 집행위원장은 "법률과 절차를 모르거나 무너지는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겠다는 뜻을 이루려다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재판부에서 선처해 줄 것이라 믿는다"며 "실례로 먼저 재판을 받은 사람에게 벌금 100만원 전액을 감해주는 선고유예를 내린 바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강 집행위원장은 이어 주민소환법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주민소환법에 제약조건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각하되고 난 후 이 법이 개정될 필요성을 더욱 실감했다는 것이다. 우선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있는 주민소환투표청구인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예를 들어 작년 12월 이전까지, 즉 주민소환운동이 추진된 해의 전년도에 전입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도록 하는 부분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12월, 1월에 이사 온 사람이 있을 경우 한 달 차이로 청구권이 있는 자, 없는 자가 가려져서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이 과도하게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 주민소환투표 청구인수를 유권자의 15% 이상으로 한 것도 과도한 제한이라고 밝혔다.

운동본부는 일부 수임인이 재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 해산하지 않았다. 당초 목적인 이연수 시장 해임이라는 목표는 이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이다.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운동본부와 더불어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좋은 지방자치 시흥희망본부'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좋은 지방자치 시흥희망본부'를 통해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고, 왜곡되고 잘못된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첫 사업으로 "4월 29일 보궐선거 적극 참여"를 꼽았다. 시흥시 지방자치 바로 세우기에 동의하는 후보를 지원하고, '시민독자후보'를 선정해 지지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독자후보 지지하겠다"

마지막으로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주민소환운동의 성과를 이렇게 정리했다.

"주민소환운동 과정 중 주민들의 권리에 대한 이해부족과 정치적인 견해 (차이) 때문에 일부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보냈지만, 지금에 와서는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시민의 의지를 보여줬다며 큰 격려를 받았다. 주민소환운동을 하기에는 시민단체 역량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성취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충주, 광주, 파주 등 독단적인 행정이나 부정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자체에 살고 있는 시민단체 관계자들로부터 좋은 사례로 평가받았다."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시흥YMCA 시민사업부장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시민운동의 원론적,담론적 시민운동보다 시민운동의 가치 실현을 위해 주민과 함께하는 실천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민소환운동은 시민들에게 '성숙된 주민자치 의식'을, 시민단체 실무자들에게는 '시민운동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선물을 준 셈이다.
#풀뿌리 #주민소환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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