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짜리 첫 어버이날 선물 '삼겹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 올해는?

등록 2009.05.06 18:05수정 2009.05.0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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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되새김해도 그 맛과 향이 가시지 않는 고기를 아시나요? 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먹어도 봤습니다. 그 고기 이름은 어버이날 선물로 받은 삼겹살이구요. 그 맛은 세상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맛이지요.

 

아직도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던 모습이 선한데, 삼겹살 한 근을 받은 지가 어느새 1년이 됐네요. 웬 삼겹살이냐구요? 부모가 되고 처음으로 어버이날 받은 선물이 바로 삼겹살 한 근이었거든요.

 

작년이니까 큰 아이가 아홉 살이었어요. 지방으로 장사를 간 남편 때문에 홀로 쓸쓸하게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어린이날을 보내고 어버이날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스스로 젊다고 생각해서인지 어버이날이 되어도 남의 집 잔치 같기만 하고 어색해서 부모님께 용돈 조금 부쳐드리고, 평소처럼 집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있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온 큰 아이가 하는 말이 "엄마, 저희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말과 함께 선물을 해주겠다더군요.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엊그제만 해도 꼬물꼬물 기어다니던 팔뚝만한 아이가 그새 커서 어버이날을 챙겨준다고 하니 기특한 마음도 들더라구요. 그래서 아이한테 물었지요.

 

"뭐 사주고 싶은데?"

 

아이는 제 방으로 달려가 저금통에서 만 원 짜리 한 장을 꺼내오더군요.

 

"돈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골라보세요."

 

만원으로 살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이럴 때 다른 분들 같으면 뭘 골랐을까요?

 

저도 잠시 고민이 되더라구요.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받는 어버이날 선물이니까 평생 추억 할 수 있는 선물을 고르고 싶어서 고민했지만, 아시다시피 만원으로 살 수 있는 선물이 한계가 있잖아요. 그때 문득 어차피 뭘 고르든 아이의 마음만한 선물은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어버이날을 맞이하게 된 것도 다 예쁘게 커주고 있는 아이들 덕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엄마는 너희들이 선물이야. 그러니까 예쁘게만 커 줘 알았지?"

 

하지만 뭐든 하고 싶은 건 기어이 해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큰 아이는 무조건 선물을 골라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더군요.

 

전 아이를 보면서 "그럼 네가 가서 엄마가 제일 좋아할 만한 걸로 사 와! 엄마는 네가 사오는 거면 뭐든 좋아. 알았지?"라고 했습니다.

 

안 간다고 할 줄 알았더니 주섬주섬 신발을 신고 대문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에선 비장함마저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잠시 뒤 보무도 당당하게 집으로 들어서는 아이의 손에는 예쁘게 포장된 선물일 거라는 제 예상을 뒤집고 까만 비닐봉지가 들려있더군요

 

제가 미처 그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제 앞에 봉지를 펼쳐 보이며 아이는 외쳤습니다.

 

"제가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걸 찾았어요. 봐 보세요."

 

엘도라도를 찾은들 그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 안에 든 것은 바로 삼겹살 한 근이었어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삼겹살 맞잖아요, 그쵸?"

 

그 얼굴에 어떻게 아니라고, 선물로 돼지고기 사 오는 아들은 세상에 너 하나 밖에 없을 거라고 얘기 할 수가 있었겠어요.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고맙다. 역시 엄마 알아주는 사람은 너 밖에 없다"며 안아주었습니다.

 

사실 그 말도 맞구요. 10년을 같이 산 남편도 제가 삼겹살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것을 모르거든요. 그런데 제 뱃속에서 나왔다고 엄마 속을 빤히 꿰차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선물은 그 자리에서 포장을 벗겨야 한다지요. 그래서 저도 아이가 어버이날 선물로 사온 그 삼겹살을 바로 불판에 올려 지글지글 구워 어버이날 밤을 온통 고기 굽는 냄새로 채웠었지요.

 

마지막 고기를 굳이 제 입에 밀어넣어 주며 "엄마 내년 어버이날에는 제가 용돈 많이 모아서 소고기 사드릴께요!!"라고 약속했었는데 잊지 않고 있겠죠?

 

"아들~~ 어버이날이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고기값은 준비 됐니?"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선물"응모합니다.

2009.05.06 18:05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잊을 수 없는 선물"응모합니다.
#삼겹살 한근 #어버이날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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