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의 꼴통이 되고 싶다

등록 2009.05.10 10:24수정 2009.05.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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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들리는 수백의 말발굽 소리!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내는 소리. 새까만 전경들 사이로 빨려 들어가 넘어지면서 생긴 온몸의 피멍. 연행되는 나에게 누군가 달려와 이름을 물었다. 처음엔 형사인가 보다 귀찮아서 무시했는데 전경들 사이로 끝까지 쫓아온다. 알고 보니 <민중의 소리> 기자였다. 그때 뭔가 기자가 멋있어 보였다. 아니. 기자가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작년 촛불 이전에는 시위에 딱 한 번 참여해봤다. 노무현 탄핵 반대 집회. TV를 보다가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이 국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끌어내려지는 장면을 보고 충격과 분노를 느껴 집회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 이후엔 소심해서 시위 같은 곳엔 가지 않았고. 학교에 다닐 때도 시위라는 것은 사회를 어지럽히는 나쁜 행동이라는 교육을 받았고 또 그렇게 믿었다. 갑갑한 인문계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주먹과 발길질과 몽둥이를 날리며 순한 양으로 개조해 냈다.

 

그런데도 내 안에 무언가 꺼지지 않는 저항심 같은 것이 남아있었나 보다. 작년 5월 7일 새벽. 밤 세워 글을 쓰던 나는 심심해서 인터넷 창을 열었다. 그런데 카페에 들어가니 광장에 있던 시민들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무차별 구타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정말인가 싶어 기사 검색을 해봤는데 진짜였다.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평화시위 보장하라!" 외치고 있다고 했다. 무언가 울컥하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바로 집을 뛰쳐나와 현장으로 갔다. 동이 터오고 있었고 시청 물청소 차가 도로 위에 묻은 핏자국들을 지워내고 있었다. 또 다시 울컥. 경찰들에게 달려가 소리 지르며 항의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나도 모른다. 주먹을 날릴 뻔 했는데 누군가 말렸다. 사실 시위 경험이 없어서 몰랐는데 평화시위라고 했기 때문에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싸우면 내가 더 많이 맞았을 테지만 당시에 그런 걱정까지 하지는 않았다.

 

이후에는 시위에 적극 가담자가 되기로 했다. 물론 어디 소속된 건 아니었지만. 경찰이 시민을 보호하지 못할망정 구타했다는 사실은 내 피를 끓게 만들었다. 연행도 당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커졌다. 수년간 선생들과 군대 선임병과 지휘관들에게 복종의 미덕을 배워 온 내가 촛불을 통해 잘못된 것에 저항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떠한 불이익과 폭력을 당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면서 속이 후련하다는 것도 배웠다.

 

덕분에 시위가 한참일 무렵 나는 겁 대가리를 상실하고 전경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지휘관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따지기도 했다. 전경들 사이에서 나도 달렸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나를 기자로 알던데 아마 그래서 덜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때려도 상관없었다. 한편으론 무섭지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쥐 죽은 듯이 숨죽이며 불의에 순응하기 보단 이렇게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 뛰어다니며 싸우는 것이야말로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줬다. 더 이상 누군가의 사상이나 입장을 주입 당하고 명령에 복종하는 기계적인 존재가 아닌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행동하는 한 명의 사람. 촛불이 밝혀진 광장은 해방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벽을 진짜로 넘을 수 있었다. 단체생활인 군대에서도 넘지 못한 파편화된 개인주의 성향을 그곳에서 버렸다. 나이도 다르고 서로 전혀 모르던 사람들과 팔짱을 끼고 전경들과 맞섰다. 너무도 숨이 막혀 압사 당할 것만 같고 방패와 몽둥이에 잘못 맞아 죽을지도 모르던 그 곳에서 금방 만난 사람들에게 목숨을 의지해보긴 처음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같은 국민이라는 이유로 진정 하나가 됐다. 쫓기던 사람들도 누군가 고립되어 있으면 다시 되돌아가 구해내 왔다.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감탄했다. 그런 경험은 너무도 놀랍고 소중한 것이었다.

 

이쯤에서 눈치 채셨겠지만 내가 시위에 참여한 이유는 일단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에는 무관심했고 혼자 있길 좋아해서 사람 많은 곳에는 가기 싫었다. 살면서 성격 고치는 것이 쉽지 않은데도 경찰의 폭력 진압 때문에 전혀 다른 내가 됐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잘못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민주국가의 정체성마저 의심케 하는데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니 한편으로 지치기도 했다. 지루한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화가 난다. 특히 곤봉 춤을 추던 사무라이 조가 등산화를 신었다는 것에서 산악인으로서 느끼는 분노가 더해진다. 산악인의 친구와도 같은 등산화의 명예를 더럽힌 너를 내 결단코 용서치 않으리라!

 

이제 나는 더 이상 보수언론의 논조를 따라 제도권이 주입하는 것들과 거리가 멀다. 내 안의 마이너적 감성이 촛불 일 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특권층과 그 개들을 향해 지엄한 똥침을 날릴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꼴통을 꿈꾼다. 약자를 억압하고 괴롭히는 사회의 잘못된 구조에 처절한 똥침을 가하는.

 

덧붙이는 글 | '촛불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 응모글!

2009.05.10 10:24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촛불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 응모글!
#촛불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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