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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깜짝 선물
"여보, 당신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존함을 알고 있소?"
"갑자기 한 번도 뵌 적 없는 내 조부모 존함을 왜 물어요? 입에 올려본 기억이 없어요."
"아이고,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가지고 자기 조부모님 존함도 잊고 사는 거요? 내가 장인어른 재적등본을 해 왔으니 이제라도 존함을 잊지 말아요. 우리 아이들이 물으면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소?"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재적등본을 들고 와서 아픈 데를 건드리는 거예요? 나는 무남독녀라 호적상 문을 닫아버렸으니 그 서류만 봐도 마음이 아파요. 아버지가 마흔다섯 살에 나를 얻으면서 사흘 동안 우셨던 이유가 바로 아버지의 호적을 이어갈 아들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내가 아들이 되지 못한 것을 죄송해 했기 때문이에요."
"실은 당신 몰래 장인어른을 고향으로 모실까 해서 준비한 서류요. 금년 3월에 고향인 장성에 납골당을 개장했는데, 시설도 좋고 경치도 아름답고 조용하여 참 보기 좋은 곳이었소. 당신 몰래 내가 가 보고 필요한 서류랑 일을 다 준비해 두었소. 객지에 묘를 써 두고 늘 마음 아파하는 당신 모습을 보면서 늘 생각해 온 것을 26년만에야 실천하게 된 거요. 그런데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소. 장성에 본적을 둔 사람이어야 가능하기에 그 서류를 준비하면서. 당신이 조부모님의 존함을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 같아서 물어본 거요."
딸자식보다 나은 백년손님
남편은 제 아버지를 납골당에 안치하기 위해 인부를 사서 파묘하고 화장장으로 운송하는 데 드는 비용 계산은 물론 일할 날짜까지 모두 예약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20년이 넘어야 유골의 상태가 좋다는 전문가의 의견까지 들어가며 말하는 표정에서 빛이 났습니다. 딸자식인 나보다 한 발 앞서서 자식 노릇을 하는 남편이 무척이나 고맙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사위는 백년손님'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처가를 만나 사위 대접도 제대로 받아본 적 없지만, 단 한 번도 친정을 원망하거나 서운해 하지 않았던 남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살기 힘들 때마다 남편에게 함부로 말하고 바가지를 긁는 철없는 아내였습니다.
내가 너무 가진 것이 없어 결혼조차 포기하고 남편으로부터 도망치려 할 때마다 "결혼 예물도 필요 없고 혼수도 필요 없고 당신 한 사람이면 족하다. 제발 내 곁에만 있어주면 된다"며 결혼을 강행했던 남편이었습니다.
예단은 꿈도 못 꾸고 결혼 예물만 간단히 해 준 초라한 내 위치가 너무 싫어서, 부모님을 책임져야 하는 내 위치가 미안해서 그를 놓아주고 싶어 했습니다. 일찍 취직하여 돈을 벌고는 있었지만, 가난하고 병든 부모님 생활비로 쓰고 나면 결혼 비용을 모을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결혼을 강행한 그는 장교로 근무하는 동안 받은 월급을 모아 가전제품을 모두 준비해 주며 내 마음을 잡아주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26년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나신 친정아버지도 살아 계신 동안 나에게 조부모님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부끄럽게도 가문 내력을 차분히 배우기도 전인 초등학생 시절에 우리 집은 파산하다시피 해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 집안 내력을 물어봐 준 사람도 없었고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곰곰이 따지지도 않고 살아온 내 잘못이 컸습니다.
생존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외줄타기를 하는 동안 가족과 가문이라는 소중한 의미들을 외면하였고 성공하면 지나버린 과거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난의 그늘에 눌려 병고를 치르던 친정 부모님은 내가 결혼하여 안정되기도 전에, 제대로 자식 노릇을 할 시간조차 주시지 않고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살아서는 땅 한 평도 가지지 못하신 채 딸의 직장을 따라 객지 생활을 하시다가 고향 멀리공동묘지에 누워 계신 내 아버지에게 남편이 마련한 유택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선물인지…. 저 세상에 계신 아버지도 이 글을 쓰는 저처럼 한없이 우실 것 같습니다. 구천을 떠돌 아버지의 영혼이 이제라도 편안히 쉬실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요?
'사람 하나면 된다'던 믿음직한 남자
어버이날만 되면 혼자서 눈물 훔치며 슬퍼하는 아내, 설날과 추석 등 명절만 되면 마음 아파하며 우울해 하는 제 모습을 남편은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선물을 아내 몰래 준비해 둔 남편은 외로운 내 인생의 반려자로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었음을 생각하며 감사의 눈물로 이 글을 씁니다.
아내를 감동시키는 남편, 그는 내 인생 최고의 선물입니다. 결혼 예물은 물론 혼수용 가전제품까지 저 몰래 준비해 줄 때부터 나를 감동시켰던 사람임을 잊고 살았습니다. 아름답고 신성한 결혼이 '조건'이나 예물 혼수 때문에 깨지기도 하고 갈등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은가요? 감히 결혼할 꿈조차 꿀 수 없는 가난한 집안 출신의 여자와 혼인하기 위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젊은이는 흔하지 않은 세상이니까요.
남편을 내놓고 자랑하는 건 팔불출이 분명하겠지만 내가 갚을 수 있는 방법은 글로 남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판 앞에 앉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의 이 감사함과 감동을 잊고 남편을 서운하게 하거나 내게 서운한 일이 생기면, 이 글을 읽으며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싶어서입니다.
"생전에 우리 아버지는 이발만 좀 늦게 하셔도 답답해 하실 만큼 깔끔한 분이었는데 그렇게 풀이 웃자랐으니 얼마나 답답하실까? 얼른 달려가 낫질도 못하면서, 입만 살아서 불평하는 내가 싫어요. 비가 많이 와서 산소에 물이 고이지는 않았나 몰라. 나는 자식도 아니야."
이렇게 푸념을 할 때마다 바쁜 직장인이라 얼른 달려갈 수 없어 안타까워하고 미안해 했던 남편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산소를 돌보다 벌에 쏘여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의 기사를 접하면서 벌초하는 것조차 말리기도 했습니다.
한미한 처가에 장가를 들어서 씨암탉조차 제대로 뜯어볼 겨를 없이 처가 어른들과 이별하고 아내 한 사람만 보고 살아온 남편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던 철없고 못된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이렇게 기사를 쓰지 않았더라면 감동의 눈물까지 쏟아내지는 못했을 남편의 선물을 세상에 공개합니다.
이젠 더 이상 명절에 슬퍼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장인어른을 위해 고향 산천이 바라보이는 곳에 유택을 마련해 예약까지 해 두었다는 고마운 사람. 아내의 아픔과 좌절이 무엇인지, 슬픔이 뭔지 혼자서 생각하며 조용히 준비해 온 남편의 고운 마음씨에 나는 다시 홀딱 반하고 말았습니다. 첫눈에 반했던 그때는 겉모습과 생활력이 눈에 들어왔다면 이제는 더 깊고 넓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에 반했으니 이 사랑을 오래 가꾸며 후반 인생을 꾸릴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더 당당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부모가 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배우는 게 교육입니다. 그 오랜 세월 고향을 떠나 먼 객지의 공동묘지에 누워 계신 친정아버지의 방이 벌써부터 보고 싶어집니다. 이제는 자식들 앞세우고 찾아갈 곳이 생겨서 명절이면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살아계실 때 집 한 칸 마련해 드리지 못하고 겨우 생활비만 보태드리던 잘못을 하고, 이제야 남편의 손을 빌려 영혼이나마 모시게 된 내 마음은 참으로 오래오래 감동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남편은 나에게 몇 천만 원, 몇 억 원, 아니 물질로는 셈할 수 없는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편안한 그곳에서 행복하시길 빕니다. 세상에 하나 뿐인 아버지의 사위가 아버지의 하나뿐인 딸을 위해 평생 동안 감사해도 좋을 선물을 드렸군요. 선물이란 받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일 때 의미가 있지요? 정이 깊으셨던 아버지였지만 표현하는 대신 눈빛만 촉촉하셨던 아버지의 선한 눈매가 보입니다. 아버지는 그동안 땅 속에 계신 것이 아니라 제 가슴에 계셨기 때문에 언제든지 보이니까요.
그리고 세상에 저 하나만 남겨 놓아 늘 마음 아파하셨던 그 걱정도 다 내려놓으세요. 생전에 그토록 소중히 생각하셨던 사위는 아버지가 주고 가신 선물이랍니다. 아버지! 가족 사진이랑, 꽃도 가지고 가서 방을 꾸밀 선물로 드릴게요. 오늘 밤은 남편이 준 감동적인 선물로 들떠서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와 외손자, 외손녀를 늘 지켜봐 주세요." 덧붙이는 글 | <잊지 못할 선물>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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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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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동안 준비한 남편의 선물이 저를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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