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대통령, '마지막' 대통령

[봉하에서 만난 사람들] "노무현 같은 대통령 또 있을까?"

등록 2009.05.30 14:43수정 2009.05.3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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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동갑내기인 김철홍·이민희 부부는 지난해 부산에서 결혼해 경남 김해에 살고 있다. 28일 저녁 7시 30분, 두 사람은 서둘러 외출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봉하마을까지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노 전 대통령 발인 전날이라 길이 밀릴 것을 감안해서다. 예상대로 길은 밀렸고, 봉하마을 입구에서 시작된 줄서기는 끝이 없었다. 분향소에 도착해 노 전 대통령 영정에 국화 한 송이씩을 올리고 나니, 밤 11시가 훌쩍 넘었다.

김씨는 "오래 전부터 아내가 가자고 한 것을 미루다가 이제서야 왔다"며 "헌화를 하고 나니까, 그동안 (노 전 대통령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가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인 이씨에게 "왜 그렇게 조문을 가자고 남편을 졸랐느냐"고 물었다. 이씨는 작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제 손으로 처음 뽑은 대통령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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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며 헌화하고 있다. ⓒ 유성호


2002년 처음 얻은 선거권, 내 선택은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지난 7일간 봉하마을 분향소를 다녀간 조문객은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매일 낮밤 20만 명 이상이 평균 3~4시간을 기다려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에 분향했다. 유모차를 밀며, 지팡이를 짚으며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들 중엔 '내 생애 첫 대통령'을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 당신은 제가 처음으로 선택한 대통령님이시고, 저는 2002년 당신을 찍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당신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2002년 그날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는 정말 마음 편히 좋은 곳에서 쉬시길 바랍니다."

1982년생인 '미네'라는 누리꾼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추모글 중 일부다. 지금은 선거 연령이 만 19세로 낮아졌지만, 2002년 대선 당시에는 선거 가능 연령이 만 20세였다. 주민등록상 생일이 1982년 12월 20일 이전인 사람만 선거권을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1977년생이면서도 생일이 늦어 1997년 대선 때 투표권이 없던 이들과, '1978년~1982년 12월 20일 이전'에 태어난 이들에게는 2002년 대선이 첫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선거였다. 그리고 그들은 2002년 월드컵 때 거리를 누빈 '붉은 악마' 세대로 통한다.


김철홍씨에게 2002년 16대 대선은 각별했다. 한나라당 지지자였던 부모님에게 '민주당 후보 노무현'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등에 칼을 꽂은 '배신자 노무현'이었다. 선거일이 가까워지자, 부모님은 김씨에게 "처음 투표를 하는 것이니까, 잘 모를 수 있으니, 우리가 시키는 대로 찍어라"는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김씨의 생각은 달랐다. 김씨는 "선거권자가 돼서 치르는 첫 대선인 만큼, 되든 안 되든 제 손으로 직접 뽑고 싶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후보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카페 회원들과 얘기도 하면서 그는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고(?) '노무현'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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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 유성호


1982년생인 김민규씨는 노 전 대통령에게 투표해서 곧바로 혜택을 본 경우다. 2007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하고 군에 입대했는데, 훈련소에서 군 복무기간 단축 소식을 들은 것. 김씨는 "처음 하는 투표여서 대통령을 찍는다는 느낌보다는 올바른 사람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며 "노 전 대통령이 기존의 정치인들과 다르다는 점들을 고려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제가 직접 뽑은 첫 대통령이었다는 점 외에도 기성 정치인과 달랐기 때문에 탄핵 사태 때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자부심이 누구보다 강했다"며 "그런 정치인은 국민들이 힘 실어주고 밀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고, 결국 부패정치의 큰 희생자가 된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27일 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한경민씨는 1980년생이다. 그 역시 "처음으로 투표했던 대통령이기 때문에 꼭 한번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첫 투표였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후보로 인해 세상이 많이 바뀌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컸다"며 "솔직히 두 번째 투표였던 2007년 대선 때는 거론되던 모든 후보들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아 아예 투표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게도 탄핵 사태가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았다. 그는 "누구도 그 자리에 가면 100% 잘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탄핵 때 너무 안타까웠고, 노 대통령이 너무 일찍 권력을 손에서 놓은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다.

1980년생인 이동렬씨는 분향소에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방명록에 "당신이 있어 5년이 행복했습니다"라고 적었다. 2002년 대선 때, 끝까지 자기 소신을 버리지 않는 모습에 반해 '노무현 지지자'가 됐다고 한다.

이씨는 "2002년 대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투표였기 때문에 제가 선택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며 "누구에게도 떳떳한 대통령, 그래서 할 말 다하는 대통령, 앞으로 그런 대통령이 또 나와야 하는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친구들과 함께 봉하마을을 찾은 1981년생 김민주씨도 "앞으로 노 전 대통령처럼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또 나와야 하는데, 별로 기대는 안 한다. 어떤 좋은 분이 대통령이 되어도 또 힘들 것 아니냐"며 "노 전 대통령이 비주류여서 힘들었듯이 정직한 사람은 늘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이 없지 않느냐, 노 전 대통령만한 대통령이 또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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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오열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봉하마을에 '진짜 노사모'가 떴다

28일 오전 봉하마을 분향소 뒤편 '노사모(노무현을 사람하는 사람들의 모임) 기념관'에서 만난 전영금(71·서울 돈암동) 할머니는 보라색 반팔 티셔츠에 분홍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조문객이라기보다는 잠시 외출을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밤새 추위에 떨었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와 함께 있던 김명숙(71·경기 일산), 김영숙(71·경기 일산), 조태인(66·서울 강서구) 할머니도 피곤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전영금·김영숙·김명숙 할머니 일행은 집을 나서면서부터 봉하마을에 오기로 했던 게 아니었다. 함께 점심을 먹고 가볍게 소풍이나 갈 계획이었는데, 자연스럽게 노 전 대통령 서거가 화제로 떠올랐다. 순간 "우리 봉하마을 가볼까"라는 즉석 제안이 나왔고, 무작정 KTX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이들은 걱정할 자녀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찜질방에 간다'고 거짓말까지 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하지만 무작정 떠나는 길엔 난관이 기다리기 마련. 어찌어찌해서 밤늦게 봉하마을에 도착해 눈물을 훔치며 노 전 대통령 영정에 국화 한 송이씩을 올리고 나니, 추위와 배고픔, 피곤함이 몰려들었다. 분향소 한 편에 천막으로 만들어진 간이식당에 앉아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좋아했다는 쇠고기국밥 한 그릇씩을 먹고 배고픔은 달랬는데, 차가운 밤기운은 어쩔 수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자원봉사자들이 긴급 공수해준 대형 비닐로 목부터 발끝까지 둘둘 말았다.

그래도 보기에 딱했는지, 지나가던 기자 한 명이 노사모측에 양해를 구해 기념관 건물 안에서 밤을 지새울 수 있었다. 그래봐야 찬바람만 막을 수 있을 뿐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스티로폼 한 장 깔아놓은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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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경남 봉하마을에서 국화꽃을 든 추모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밤새 춥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답변도 하지 않은 채, 전영금 할머니는 "생가를 직접 가봤더니 가슴이 더 아프다"며 "부귀영화 누리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히 살려고 했던데…. 속이 상해 죽겠다"고 눈시울부터 붉힌다.

다시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김명숙 할머니가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라며 웃는다. 전 할머니도 "우리는 노사모는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너무 좋아한다"며 "우리가 열성분자들이니까, 아무 대책도 없이 여기까지 왔지"하고 거들었다.

전 할머니는 '열성분자 중에 열성분자'였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번 묻고 싶다"며 "장로라는 사람이,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노 전 대통령을) 못 잡아먹어서 씹고, 끌어내리고 하는 것이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여기 앉아서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지"하고 금방 풀이 죽었다.

하지만 전 할머니는 "내가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그래서 한 번 더 (선거 때) 투표를 하게 될지, 사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면서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김영숙 할머니가 전 할머니 옆구리를 찌르며 "아무튼 말은 잘해요. 지금이라도 노사모 하면 되겠네"라고 추켜세웠다. 하지만 전 할머니는 "이젠 늦었어. 늙어서 틀렸어. 기력도 없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조태인 할머니를 가리키며 "우리가 모두 네 명이니까, '노(老)사모'네, 노인이 네 명이니까, '노사모'지"하고 환하게 웃었다.

조태인 할머니는 봉하마을에 혼자 왔다가 전 할머니 일행을 만나 함께 밤을 지새웠다. 조 할머니는 "노 전 대통령이 소박하고, 바른 말 잘하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잘사는 사람 세금 내게 해서 없는 사람 위해 애쓰시는 게 마음에 들었다"며 "이렇게 돌아가셔서 기가 차기는 하지만, 돌아가셔도 지금 또 이렇게 빛이 나지 않느냐"고 말했다.

전 할머니에게 '사진을 찍어도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정색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전 할머니는 자신들의 사진을 찍는 대신 예쁘고 젊은 여자 사진을 찍어서 내보내달라며 웃어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봉하마을 #2002년 대선 #노사모 #붉은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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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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