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를 부정하는 말들 가운데 오늘 처음 들은 말

등록 2009.08.23 13:30수정 2009.08.2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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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DJ를 부정하고 '욕하는' 말을 무수히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더러는 토론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냥 잠자코 듣기만 만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제대로 토론이 되지 않는 이상한 간극 같은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으려는 습성, 내 쪽에서 한 마디하면 내가 깜깜 모르는 것들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듯이 터무니없고 얼토당토않은 가공할 정도의 내용들을 가지고 열 마디 백 마디를 하고 드는 태도 때문에 참 난감하고 기가 질리는 경우도 많았지요.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사람에게는 어떤 사실이나 진실보다도 왜곡되고 과장되고 만들어진 거짓말들에 더 귀가 솔깃해지고 잘 빠져들고 맹신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DJ를 부정하고 증오하는 무수한 말들과 태도들 중에서도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은 1997년 수십 명의 소설가들과 함께 호주를 갔을 때 그 행사의 리더이신 원로 작가 H 선생에게서 들었던 말입니다. 몇 년 전에 별세하여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분에 관한 얘기여서 송구스런 감이 있습니다만, 어쩌다 무슨 일로 DJ에 관한 말이 나왔을 때 그분은 단호하게 "난 김대중이 싫다"는 말을 하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왜 그렇게 싫으십니까? 무슨 확실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하고 내가 물으니, "그냥 싫어"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허망한 일이었습니다. 그냥 싫다니, 유명하신 소설가 선생님답지 않은, 너무도 비지성적인 태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나는 '그냥 싫은'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지만 그 궁금증을 해결하는 일은 포기했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이유도 없이 '그냥 싫은' 비이성적인 습성에 함몰되어 살아갈지 모른다는 이상한 공포감 때문에, 그분의 그런 말은 내 뇌리에 깊이 각인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한 여성 선배 소설가님에게서 이상한 메일을 받았습니다. 내가 어떤 천주교계 잡지에 매월 고정적으로 쓰고 있는 칼럼들에 정치성 논조가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정의 추구' 차원에서 종교잡지에도 천편일률적인 신앙 얘기들만이 아니라 이런 정도의 현실 비판적인 글이 하나 정도는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그 잡지의 편집 라인에 계신 그분은 종교잡지에는 어울리지 않는 글이라고 보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내게 자제를 부탁하며 참고로 보라고 보내주신 메일은 '국제저널리스트' 편집인 겸 발행인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손충무라는 사람의 글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자살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법의 심판대에 세워 벌을 받게 한 다음 죽게 해야 한다"는 내용의 사악하기 짝이 없는 글이었습니다. 그가 그런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 내용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수구 사회에서 유포되고 있는 오해 차원도 아닌 날조된 것들이었습니다.


명동성당 장례미사 22일 다시 서울에 올라가서 내 대학생 아이들과 함께 오후 7시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김대중 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님 장례미사에 참례했다. 우리는 명동성당에 일찍 도착했지만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 마련된 자리에서 미사를 지냈다.
명동성당 장례미사22일 다시 서울에 올라가서 내 대학생 아이들과 함께 오후 7시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김대중 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님 장례미사에 참례했다. 우리는 명동성당에 일찍 도착했지만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 마련된 자리에서 미사를 지냈다. 지요하

그런 황당하고도 사악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 글을 나더러 참고로 읽어보라고 보내신 것을 보고 참으로 어이없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분의 작가적 지성을 깊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인이고 천주교 신자인 나는 문인세계에서, 또 교우들 사이에서 지성과 분별력이 결여된 태도, 그리스도 신앙과 깊이 부합하지 못하는 태도들을 접할 때 더욱 큰 슬픔과 절망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경우를 참 많이도 겪으며 살아왔고 살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님 위령미사를 청원하기 위해 태안성당에 갔을 때 한 분 교우로부터 들었던 말이 평생 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 남성 교우들이 무슨 작업인가를 하면서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나도 그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내가 성당 사무실에 미사예물봉투를 맡기려 왔다고 한 말이 자연스럽게 DJ에 관한 설왕설래로 번졌습니다.  

그런데 한 교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민주화라는 건 다 때가 있는 거여. 시간이 다 말해주는 거라구. 때가 되면 자연히 민주화가 되는 눔의 걸 갖다가 그렇게 난리를 치구, 그게 다 자기 욕심 때문이지 뭐. 안 그려?" 나는 할말을 잃었습니다.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어의 무용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60평생을 살아오면서 DJ를 부정하는 온갖 이야기들을 다 듣고 살아왔지만, "때가 되면 자연히 민주화가 되는 눔의 걸 갖다가 난리를 쳤다"는 말은 처음 듣는 소리였습니다. 너무도 의외이고 또 신기하기도 해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다가, 멀리에서 사는 한 교우가 막 도착하여 그쪽으로 신경들이 집중되는 사이 슬그머니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할 때 그 얘기를 했더니, 동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예수님을 왜 믿는지, 진짜로 예수님을 믿는 건지, 되게 의심스럽네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필요도 없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이유도 없는 거 아닌가요. 예수님이 어떻게 사시다가 왜 돌아가셨는지,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고 건성으로 성당을 댕긴다는 얘기밖에 안 되지요."

성당 짓는 일에 거금을 봉헌했고, 열심히 교무금을 잘 내면서도 직장 일을 핑계로 성당 출입은 거의 하지 않고 사는 동생의 '신앙고백'이기도 한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의 그런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낮에 성당에서 들었던 그 말이 가슴을 절절히 아프게 해서 눈물이 핑 돌더군요. 나는 <김대중이라는 이름 때문에 흘렸던 눈물들>이라는 앞의 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서거 앞에서는 아직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지만"이라는 말을 했지만, 서거 때문이 아닌, 평생 동안 무수히 들어온 DJ를 부정하는 온갖 말들 가운데 오늘 처음 들은 말 때문에 다시 눈물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이 괴이한 눈물과 관련하여, 16년 전인 1993년에 접했던, 내 가슴을 절절히 아프게 했던 사연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      

지역잡지 <갯마을>  1991년에 창간되어 1995년 문을 닫기까지 서산과 태안 지역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지역잡지 <갯마을>의 1993년 3/4월호의 표지
지역잡지 <갯마을> 1991년에 창간되어 1995년 문을 닫기까지 서산과 태안 지역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지역잡지 <갯마을>의 1993년 3/4월호의 표지 지요하

'나자렛 사람 예수'를 아십니까

지난 2월 11일 인천에서 있었던 일이다. 연안 부두 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탔다. '재인서산군민회' 김의경(金義經) 회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택시의 뒷좌석에 오르니 앞좌석의 뒤쪽에 부착된 주머니에 작은 책자들이 가득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성경책과 개신교계의 신앙 서적들이었다.

필자는 일단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운전 기사에게 "기사님이 독실한 크리스천이신가 보죠?" 하고 말을 건네니 그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좋은 일을 하시는군요. 일방적인 강요가 아닌 자연스런 방법으로 승객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물론 성과도 있으시겠지요?"

하니, 승객들 중에는 책을 가져가거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택시 기사는 말했다.

필자는 동행한 이상규 사진부장과 필자가 충남 서산에서 온 사람들임을 밝히고 인천에 관한 사항들을 물었다. 택시 기사는 인천이 여러 지방 사람들이 몰려서 뒤섞인 개성 없는 '잡탕 도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인천의 토박이·경상도·전라도·충청도·이북 실향민들의 인구 비율까지 들며 인천의 성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인천의 성격은 주로 정치적인 것으로써 지난 대통령 선거와 14대 총선 때의 '인천의 여당지지 성향'을 더럭 강조하는 그런 것이었다.

말씨가 확연하지는 않았지만 대략 어느 지방 출신인가를 가늠케 하는 그는 전라도 사람들이 부천 쪽에 많이 살고 있어서 김대중씨가 부천에서는 유세를 요란스럽게 했지만 인천의 본바닥 쪽으로는 오지도 못했노라고 비아냥거리는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호남 사람들의 지역 감정을 크게 개탄했다. 호남에서 김대중씨에게 90% 이상, 심지어 광주시의 어느 선거구에서는 97%의 몰표가 쏟아진 사실을 예로 들며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했다.

그것은 공산 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 말끝마다 "그걸 아셔야 해요" 라는 말을 달았다. 일테면, "전라도에 가면 사람마다 '김대중 선생님' 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바로 개인 숭배 사상이고 이북과 마찬가지 짓이에요. 그걸 아셔야 해요." 하는 식이었다.

필자는 어처구니없고 화가 났다.

"우리를 멍청도 핫바지로 취급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인 줄로 아는 모양인데, 당신이 얼마나 알고 있나 좀 묻겄시다."

지역잡지 <갯마을>  말미 '편집인의 말' 나는 서산/태안의 지역잡지 <갯마을> 창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처음부터 편집인 겸 편집주간으로 일했다. 편집인의 고정 칼럼은 매번 지역사회에서 화제가 되었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역잡지 <갯마을> 말미 '편집인의 말'나는 서산/태안의 지역잡지 <갯마을> 창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처음부터 편집인 겸 편집주간으로 일했다. 편집인의 고정 칼럼은 매번 지역사회에서 화제가 되었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요하

그리고 필자는 과거 박정희씨가 유신 체제를 만들었을 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몇 %로 당선됐는지 아느냐, 전두환씨가 5공을 열면서 선거인단에 의한 체육관 투표로 몇 %의 지지를 얻었는지 아느냐, 호남의 지역 감정이 언제부터 왜 생겼는지 아느냐, 영·호남의 지역 감정을 유발시키고 이용한다면 어느 쪽이 더 많이 덕을 보는지 아느냐 등등의 말로 응수했다.

그러나 제대로 대화가 될 리 없었다. 호남 쪽 지역 감정의 연원을 따지는 대목에서 그가 조선시대부터 전라도가 유배지로서 푸대접을 받은 곳이라느니, 그래서 한이 많은 곳이라느니, 동학란이 전라도에서 발생한 것만 보더라도 호남 사람들은 본래 저항 기질이 강하다느니…실로 놀라운 '지식'으로 열변을 토하는 바람에 필자는 다만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힐 뿐이었다. 사람의 무지와 편견 앞에서 절망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또 한 번의 경험은 필자로 하여금 더욱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택시 기사와의 논쟁에서 패배를 한 셈인 필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아직 시간이 있음을 확인하고, "예수님을 믿는 만큼 사랑합니까?" 하고 그에게 물었다. 그가 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예수님이 그 당시에 겪었던 슬픔들을 많이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또 그렇다고 했다.

그럼, 예수님께서 골고타 산의 십자가상에서 처형될 때 예수의 머리 위에 붙여졌던 '유대인들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죄목 명패에 왜 굳이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말을 썼는지 아느냐고 물으니 그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유다에서 지역 감정에 의해 멸시받고 천대받았던 갈릴래아 지방에서도 중심지였던 나자렛―그 나자렛 사람 예수의 죽음에는 로마의 지배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던 갈릴래아 사람들에 대한 로마의 통치술과 바리서이들에 의해 더욱 조장된 지역 감정 등이 복합되어 있는데, 그런 사정과 나자렛 사람 예수의 슬픔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고 다시 물으니 그는 왠지 필자의 말을 미심쩍어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더 이상 긴말을 나눌 수가 없었다. 필자는 택시에서 내리며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예수님은 어느 면으로는 지역 감정의 희생자입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의 지역 감정보다 갈릴래야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멸시와 천대―그 지역 패권주의를 동원하여 예수를 처형했던 바리서이들을 우리는 문제삼아야 합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호남 사람들의 지역 감정보다 당신의 지역 감정을 문제삼아야 하고, 호남의 지역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절망과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아니고서는 당신이 기대하고 강조하는 '신한국'을 건설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그 말을 그 택시 기사가 얼마나 공감했는지 알 길이 없다.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고, '신한국 건설'이라는 구호가 한결 드높게 열창되어지는 오늘, 지난 2월 11일 인천에서 만났던 그 택시 기사를 새삼스럽게 떠올리는 필자의 마음은 더욱 스산하면서 안타까움이 절절하다.

                                 (서산·태안 지역잡지 <갯마을> 1993년 3·4월호)
#김대중 #민주주의 #지역감정 #나자렛 예수 #갈릴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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