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장례미사22일 다시 서울에 올라가서 내 대학생 아이들과 함께 오후 7시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김대중 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님 장례미사에 참례했다. 우리는 명동성당에 일찍 도착했지만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 마련된 자리에서 미사를 지냈다.
지요하
그런 황당하고도 사악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 글을 나더러 참고로 읽어보라고 보내신 것을 보고 참으로 어이없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분의 작가적 지성을 깊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인이고 천주교 신자인 나는 문인세계에서, 또 교우들 사이에서 지성과 분별력이 결여된 태도, 그리스도 신앙과 깊이 부합하지 못하는 태도들을 접할 때 더욱 큰 슬픔과 절망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경우를 참 많이도 겪으며 살아왔고 살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님 위령미사를 청원하기 위해 태안성당에 갔을 때 한 분 교우로부터 들었던 말이 평생 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 남성 교우들이 무슨 작업인가를 하면서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나도 그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내가 성당 사무실에 미사예물봉투를 맡기려 왔다고 한 말이 자연스럽게 DJ에 관한 설왕설래로 번졌습니다.
그런데 한 교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민주화라는 건 다 때가 있는 거여. 시간이 다 말해주는 거라구. 때가 되면 자연히 민주화가 되는 눔의 걸 갖다가 그렇게 난리를 치구, 그게 다 자기 욕심 때문이지 뭐. 안 그려?" 나는 할말을 잃었습니다.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어의 무용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60평생을 살아오면서 DJ를 부정하는 온갖 이야기들을 다 듣고 살아왔지만, "때가 되면 자연히 민주화가 되는 눔의 걸 갖다가 난리를 쳤다"는 말은 처음 듣는 소리였습니다. 너무도 의외이고 또 신기하기도 해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다가, 멀리에서 사는 한 교우가 막 도착하여 그쪽으로 신경들이 집중되는 사이 슬그머니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할 때 그 얘기를 했더니, 동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예수님을 왜 믿는지, 진짜로 예수님을 믿는 건지, 되게 의심스럽네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필요도 없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이유도 없는 거 아닌가요. 예수님이 어떻게 사시다가 왜 돌아가셨는지,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고 건성으로 성당을 댕긴다는 얘기밖에 안 되지요."
성당 짓는 일에 거금을 봉헌했고, 열심히 교무금을 잘 내면서도 직장 일을 핑계로 성당 출입은 거의 하지 않고 사는 동생의 '신앙고백'이기도 한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의 그런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낮에 성당에서 들었던 그 말이 가슴을 절절히 아프게 해서 눈물이 핑 돌더군요. 나는 <
김대중이라는 이름 때문에 흘렸던 눈물들>이라는 앞의 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서거 앞에서는 아직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지만"이라는 말을 했지만, 서거 때문이 아닌, 평생 동안 무수히 들어온 DJ를 부정하는 온갖 말들 가운데 오늘 처음 들은 말 때문에 다시 눈물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이 괴이한 눈물과 관련하여, 16년 전인 1993년에 접했던, 내 가슴을 절절히 아프게 했던 사연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