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양가서 북한에 100만달러 줬다고?

[정연주의 증언12] 온갖 소문까지 다 동원하여 뒷조사 올인

등록 2009.11.26 17:05수정 2009.12.0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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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른 봄, 내게 이런 정보 보고가 전해졌다. 청와대와 검찰 쪽 정보라는 것이다. (언론사에는 출입 기자들이 현안에 대한 주요 정보를 윗선에 보고하고, 그 가운데 사장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는 내용은 임원을 통해 전달된다).

권력기관의 정보보고

청와대가 공기업 4곳 타겟, 집중적으로 보고 있음.
포스코, 한전, 도로공사, KBS 등 네 곳.

"청와대에서 수집한 자료는 대검 중수부 쪽으로 넘겼을 것이다".

(1) 포스코: 이구택 회장, 청와대 말을 잘 안 듣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철근 값을 내리라고 했는데 말도 안 듣고...이구택 회장을 쫓아내려는 의도가 있다.

(2) 한전: 발전소 짓는데 비리가 있어 조사 중. 논공행상 위한 자리 마련 차원에서 사장에 퇴진 압력 넣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듯.

(3) 도로공사 : 논공행상 자리 마련 위한 것으로 추측.


(4) KBS: 정연주 사장이 타겟이다. 문제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라. 자식 2명 미국 국적 취득 과정과 병역 문제에 대한 문제점이 있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정보 보고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권력 핵심 쪽에서 공기업 경영진에 대한 '마녀 사냥'을 시작한 게 분명해 보였다. 실제 그 뒤에 진행된 것을 보면 포스코, 한전 등 주요 공기업의 경영진이 바로 교체되었고, 특히 포스코 경우에는 경영진 교체 과정에 심각한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했다. 나에 대해서도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에서 열심히 뒤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왔다.


소설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들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경찰청 정보 보고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내용은 소설보다도 더 황당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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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장 재임시절 회사에 1,892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로 불구속 기소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1.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정연주 사장에 대해 강도 높은 뒷조사를 벌였다고 함.

(1) 정연주 사장 차남 비자 건
정 사장 차남이 국내에 들어 와 홍대 앞 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고 함. 정 사장 차남은 입국 비자를 받을 때 KBS 국악관현악단장을 이용했다고 함. 현 국악관현악단장은 경기도 국악단장을 정 사장이 영입한 케이스로, 완전한 '정연주 맨'이라고 함. 국악관현악단장이 자신이 알고 지내는 S 국악업체를 통해 정 사장 차남의 취업확인서를 발급해줬고, 정 사장 차남은 이 취업확인서로 국내 입국비자를 받았으나, 실제로는 단 하루도 이 업체에 근무한 적이 없다고 함.

(2) 정 사장 북한에 '로비 자금' 전달
정 사장이 대북사업을 추진하면서 북한 고위 관리에게 100만 달러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됨. 정 사장이 평양의 호텔에 묵을 때, 새벽 2시쯤 북한측 관리가 전화하면 정 사장이 내려가서 돈을 줬다고 함. 노무현 정권 당시 한나라당 통외통위 의원들이 통일부에 정 사장의 대북 지원 내역을 요구했으나, 자료를 받지 못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청와대가 직접 통일부로부터 자료를 받았다고 함.

(3) 정 사장 KBS 경영 관련 -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음.
*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정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강도 높은 뒷조사를 벌였지만, 드러난 것은 이 3가지로 도덕성에 흠짐을 낼 수는 있지만 결정타를 날리기에는 약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함.
* 현재 청와대와 감사원에는 정 사장과 본부장 등을 조사해 달라는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고 함.

이 정보 보고는 그 내용이 워낙 황당무계한 것이어서 그냥 헛웃음만 나왔다. 둘째 아들과 KBS 국악관현악단장 일이야 국악관현악단장에게 물어보면 금방 밝혀질 일이었다. KBS 국악관현악단장 뽑는 일은 KBS 시청자센터 소관이었고, 거기서 공모하여 최고 점수를 받은 사람이 뽑혔다. 면접도 전문가 집단에서 했다. 나는 그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의 둘째 아들은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여섯 살 때인 1982년 가을,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부모 따라 미국엘 갔고, 거기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치고, 자기가 좋아하는 록 음악을 위해 온 몸을 던진 녀석이다. 고등학교까지는 휴스턴에서 지냈고, 대학 때,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는 줄곧 오스틴에서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바람처럼 홀연히 서울에 나타났다가는 또 바람처럼 사라졌다. 보헤미언이다. 서울에 나타날 때는 영어학원 강사로 취업하여 학원에서 마련해준 원룸에서 혼자 살았다. 그러다가는 훌쩍 바람처럼 떠나버렸다. 그는 내게 늘 그리움이다.

그가 홍대 앞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국내취업을 위해 국악관현악단장 소개로 알게 된 회사에 위장취업을 했다? 이런 걸 조사했다면, 엉터리 제보에 국가기관이 놀아난 셈이된다.

이건 또 무슨 소리?

북한에 '로비 자금' 100만 달러 전달했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정말 할 말을 잊는다. 정보 보고대로라면 정권이 바뀌어서 청와대가 직접 통일부로부터 자료를 받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내가 평양을 갔는지 안 갔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평양에 가서, 그것도 새벽 2시에 호텔 로비에서 100만 달러를 줬다? 줬다면 은밀하게 방에서 주지 않고 왜 로비에서? 무슨 스파이 영화에 나옴직한 스토리인데, 황당해도 너무 황당했다. 북한에 100만 달러를 줬다면, 그 미화 100만 달러를 어떻게 환전했다는 걸까? 그게 사실이라면 국가보안법과 외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대번에 구속해도 꼼짝없이 당할 일인데. 게다가 이건 도덕적으로 상처를 낼 수는 있어도 결정타가 아니라니, 또 무슨 소린가?

나는 평양을 두 번 방문했다. 첫 번째는 1994년 8월 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시절에 간 적이 있다. 그 때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지 불과 한 달 정도 지난 뒤여서 나의 방북은 상당한 관심꺼리가 됐다. 평양에 도착하기 전, 베이징에서 비자 발급을 받은 과정에 북한 관리들을 만났다. 그때만 해도 평양에 도착했을 때 나의 취재에 별 문제가 없는 듯했다.

평양에 도착하여 첫 날 저녁, 북한 관리들과 앞으로 있을 취재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 날 저녁만 해도 북한 관리들은 최대한 취재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그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김일성 주석 사망이후 워낙 민감한 시점인데다, 당시 <연합뉴스>에서 나의 방북을 두고 "북한이 자기네에게 유리한 친북 언론을 초청했다"고 한 기사를 문제 삼으면서 민감한 시기에 불필요한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취재에 협조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4박5일 평양에 머물면서 매일 북한 관리들과 말다툼하다 취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내 발로 평양을 떠나버렸다.

두 번째 평양 방문은 2007년 10월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다. 당시 나는 방송협회장 자격으로 방북단 특별수행원의 일원이 되었다.

그게 평양을 방문한 것의 전부였다. 그런데 내가 평양을 방문해서 호텔 로비에서 새벽 2시에 100만 달러를 전했다? 참으로 해괴한 소설이었다.

영혼없는 감사원, 역사의 심판이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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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사장 해임을 위한 이사회가 진행된 2008년 8월 8일 오전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 소속 단체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 회원, 누리꾼들이 이사회 중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그런데 이런 정보들을 보고 있노라니, 소문이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그냥 내 뒤를 샅샅이 캐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 보고 끝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청와대와 감사원에 정 사장과 본부장들을 조사해달라는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는 말이 사실인 듯했다.

실제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3개 단체가 지난해 5월 13일에 KBS 특별감사 청구를 했고, 감사원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1주일 만에 전격적으로 특별감사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는 6월 11일부터 감사에 착수하여 온갖 자료들을 요구했다. 감사 첫날부터 감사원 직원 30명이 총동원되어 KBS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이미 본감사가 시작되기 전에 자료수집을 위한 예비감사가 있었는데, 본감사와 같은 강도로 진행되었다.

감사는 KBS 감사를 담당하는 사회복지감사국 소속 감사관들과, 직무감찰 명목으로 특별조사본부 조사1팀 감사관들이 함께 왔다. 특별조사본부의 주업무는 정연주 비리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것이었다.

특별조사본부에서는 별의별 희한한 것을 다 뒤졌다는 후문이었다. 내 운전기사를 세 번이나 불러다 조사를 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것도 물어 보았단다.

'왜 정연주 사장이 사장 차를 에쿠스에서 그랜저로 바꾸었느냐.'

어느 해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로 치솟았다. 지금 고유가를 생각하면 50달러도 싼 편이었지만, 그 때는 상상을 초월한 기름값이었다. 운전기사한테 에쿠스 연비가 어느 정도 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가 대답하기를 좀 과장하면 에쿠스는 달리다 보면 기름 눈금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일 정도라는 것이었다. 휘발유 1리터에 6km 정도 달린다고 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그럴 수 없다고 생각되어 내 차를 포함하여 부사장, 본부장 등 임원 차를 모두 일괄적으로 그랜저 Q270으로 바꾸었다.

감사원 직원들은 그런 설명보다는 혹 다른 의혹이 없나 그걸 뒤지려 했던 모양이었다. 만사가 그런 식이었다. 내 법인 카드와 업무추진비도 샅샅이 뒤졌다. 공직자의 목을 자를 때 가장 먼저 쓰는 수법이 법인 카드 뒤지고, 업무추진비 뒤지는 것이라고 하던데 감사반원들이 그 일을 본격적으로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업무추진비와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보고 김이 샌 모양이었다. (다음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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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 #감사원 #영혼없는 감사원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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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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