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때마다 꾸는 '지역주의, 외지인 배제'의 악몽

울산의 토박이 권력독점은 언제까지... 정치풍토 개선은 요원한가

등록 2010.05.01 15:03수정 2010.05.0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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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 자극하는 토착세력

 

8년 전인 지난 2002년 6·13지방선거 때다.

 

울산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강길부 전 건교부 차관을 누른 박맹우 울산시 건설교통국장이, 진보진영 후보는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지부장에게 0.88% 차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송철호 변호사가 각각 나섰다.

 

박맹우 후보는 울산시 건설교통국장을 지내다 정치에 입문했고, 송철호 변호사는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으나 노동계의 단일화 요구에 응했었다.

 

특히 당시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제주에 이어 두번째로 울산에서 3월 10일 진행된 경선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노풍을 일으키기 시작할 때였다. 노무현 후보는 경선에서 "지방 분권"을 강조했고 승리했다.

 

결론이지만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 된 후 'KTX 울산역 추가 설치, 울산혁신도시, 울산국립대' 등 공약을 실천하며 임기동안 울산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 핵심에는 '지역주의 타파' '지방 분권'이라는 명제가 있었다.

 

2002.6.13 지방선거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울산지역 한 일간지는 연일 1면 머리기사와 사회면 머리기사로 "송철호 철새정치인 확인"을 비롯해 '송철호 외지 출신, 송철호 호남 출신' 등의 지역 감정을 자극하는 특정 후보 흠집내기 기사를 보도했다.

 

이 보도의 영향은 컸다. 선거에 앞서 몇 달 전 있었던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에게 10% 이상 앞서던 송철호 변호사는 결국 선거에서 완패당했다.

 

52.1%로 사상 최저 투표율로 치러진 6.13 지방선거 개표 결과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가 유효 투표수 37만2647표 가운데 19만7772표(득표율 53.1%)를 얻어 16만2546표(43.6%)를 얻은 민주노동당 송철호 후보(53)를 9.5%포인트 차이로 눌렀던 것.

 

"외지출신 후보에 시정 맡길 수 없어"

 

앞서 그해 4월 17~19일 민주노동당 울산시지부와 민주노총 울산본부의 진보진영 단일화 경선 투표에서 김창현 울산시지부장에 0.88%의 근소한 차로 이기고 단일후보로 나선 송철호 변호사와, 첫 광역시장을 희망하던 진보진영으로서는 땅을 칠 일이었다.

 

선거가 끝난 후 울산지역 또 다른 일간지는 "한나라당 박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펼치던 송후보를 다소 여유 있게 따돌린 것은 무엇보다 '외지출생 후보에게 울산시정을 맡길 수 없다'는 식의 지역주의 정서가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공식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송 후보가 박 후보에 10%포인트 안팎에서 앞섰던 사실 등을 감안할 때 선거종반 박 후보 지지층이 확산되고 여유있는 승리를 한 데는 지역정서를 바탕으로 한 한나라당 바람이 강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고 덧붙였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지역감정을 일으킨 편파보도에 대한 성토가 거셌다. MBC PD수첩은 해당 신문사를 직접 방문 취재해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진상조사 요구에도 결국 시간이 흐름에 따라 6.13 지방선거는 기억 속에 묻혀갔다.

 

울산은 2002년 지방선거 및 대선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 이행으로 KTX 역 추가 유치, 국립대 설립, 혁신도시 건설 등 지방분권의 덕을 많이 본 도시다. 8년이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를 한 달 앞둔 현재 울산의 정치풍토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과연 지역주의, 외지출신 배제 등의 정치풍토는 사라졌을까? 

 

지방분권 덕 본 울산, 지역주의 여전해

 

2010년 3월, 울산의 한 일간지가 한나라당 정치인들에게 금품을 받고 여론조사를 한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일간지 사장은 구속되고 사건에 연루된 한나라당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다수가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언론사가 2002년 6.13지방선거에서 "송철호 철새정치인" 등을 수차례 보도했던 당사자다.

 

울산은 특이한 도시다. 1960년까지 인구 6만명의 조용한 소도시였던 울산은 공업특정지구 지정 이후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 110만명의 가장 잘사는 도시로 변했다. 그 사이 일자리와 재화를 얻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정주하기 시작, '울산은 대한민국 인구 구조의 축소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만 유독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토박이 권력들의 정치독점이다. 토박이 권력의 독점으로 울산은 여전히 지역색이 강하고 외지인의 정치세력 진입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2010. 6.2지방선거를 앞두고 드러난 금품여론조사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 한나라당은 사건 발생 초기 비리연루자 공천 배제 등의 입장을 밝혔지만 결국 공천이라는 결론으로 지역토박이 권력을 비호함으로써 지방선거를 앞두고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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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진보적 여성단체 회원들이 4월 22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금품여론조사에 연루된 한나라당 정치인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박석철

울산지역 진보적 여성단체 회원들이 4월 22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금품여론조사에 연루된 한나라당 정치인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박석철

 

4월 30일 한나라당은 '안보 및 6.2지방선거 필승 결의대회'를 가졌고,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 등은 '비리정치 규탄 시민대회'를 각각 열었다.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과 정병국 사무총장, 김기현 울산시당위원장을 비롯한 지역 국회의원, 공천자 등이 참여해 오후 3시 울산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필승결의대회에서 김 시당위원장은 "가장 공정하고 깨끗한 공천심사를 통해 시장후보를 비롯해 울산지역 후보 64명을 결정했다"며 "이번 선거에서 압승해 정권 재창출의 소명을 완성하고 선진 대한민국을 창출하자"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은 비리정치 규탄대회를 열고 "한나라당은 정말 양심이 없다. 비리 기소자 공천을 즉각 철회하고 시민앞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선관위가 "특정 후보의 당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현장에서 시정을 요구해 논란을 빚은 가운데 시민규탄대회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외지인 배제하는 울산의 정치풍토

 

1997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된 후 1998년 부활된 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에서는 북구청장, 동구청장을 배출했다. 이로써 울산은 노동의 메카에서 진보정치 일번지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어진 2002년 지방선거에서도 노동자 출신의 두 명의 구청장이 두 구청장의 뒤를 이으면서 울산에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분위기가 형성돼 갔다.

 

한나라당을 등에 업은 토박이 지역권력의 위기의식은 진보정치 견제론으로 강화되기 시작했다. (진보정치 일번지 울산은 왜 '비리정치 일번지'가 됐나)

오비이락인지 이후 두 명의 진보진영 출신 구청장은 공무원노조를 징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청장직을 내 놓으면서 진보진영의 세력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2010년 벌어진 울산금품여론조사 사건은 이같은 일련의 울산정치풍토 연장선이다. 모두 한나라당 소속인 5명의 전체 울산기초단체장이 여론조사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면서 진보진영에서 "토박이 토착권력 응징"의 불이 붙었다. 한나라당은 이런 가운데 "비리 기소자 공천"이라는 강수를 두면서 이 불에 기름을 부은 것.

 

후폭풍이 거세다. 야당, 노동계, 시민단체는 물론 대학생과 여성들까지 나서 한나라당의 비리공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공천반란이 가시화되고 있다.

 

공천 받지 못한 일부 기초단체장과 시의원 구의원들이 무소속연대를 묵시적으로 결성하고 잇따라 '탈당 후 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것. 특이한 점은 이들도 대부분 토박이 세력으로 하나같이 지역주의에 호소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시민 아닌가?" 화난 외지출신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내부에서 "토박이 권력의 독점으로 인해 외지인 출신들이 철저히 배제당함으로써  비리정당으로 추락했다"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특히 외지인 출신이 지역색에 호소하지 않고 떳떳히 출신지를 밝히면서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선거에 뛰어들면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수십년 간 울산에 살면서 지역구성원으로 발전에 일익을 담당해 왔는데 왜 토박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당해야 하느냐"며 항변하고 있다. 수십년 간 보수진영 내에서는 보지 못한 용기 있는 항변이 나오고 있는 것.

 

4월 29일 울주군수 출마를 선언한 최병권 전 울산시 경제통상실장도 그 한 예다. 그는 각 언론에 자료를 내고 "30년 공직 경륜을 바탕으로 울주군수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지만 돌아온 답은 '업무추진능력은 인정하나 울산출신이 아닌, 객지출신'이라며 공천심사위 심사에서 탈락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특히 그는 110만 울산시민 중 95만여명의 외지출신 시민을 향해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객지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냐"며 "선거 때마다 지역사람만 부르짖는 그들은 서민이 아닌 정치꾼들"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한나라당은 애초 도덕성, 전문성, 업무추진력을 고루 갖춘 참신한 인물을 공천한다는 기준을 발표하고도 국회의원, 당협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공심위가 개혁을 바라는 지역여론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만 울주군민은 누구나 군수가 될 수 있고, 울주군에 살고 있으면 당연히 울주사람 아닌가"며 "객지 출신은 발붙일 수 없고, 몇몇 소수 토박이 정치인들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울산의 정치현실"이라고 개탄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5.01 15:03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울산금품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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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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