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오전10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천안함 관련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은 지자체 선거를 불과 여드레 남겨 놓은 5월 24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천안함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며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단호하게 조처해 나갈 것", "남북 간 교역과 교류도 중단될 것", "북한이 우리의 영토를 무력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 등을 선언했다. '전쟁 불사'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전쟁기념관'에서 행해진 이명박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방송을 활용한 '이벤트 정치'의 극치였다. 지자체 선거를 불과 1주일 남짓 남둔 시점에서 이뤄진 이 이벤트 정치행위의 노림수는 사실 뻔한 것이었다. 이날 연설을 보면서 2003년 5월 1일 미국 샌디아고에 있었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임무완수'라는 이벤트성 정치쇼가 떠올랐다.
MB와 부시의 정치쇼는 실패했다부시 대통령은 2003년 3월 20일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이라크에 침공한 지 40일 만에 이라크 군사 임무를 완수했다며 항공모험 '에이브러햄 링컨' 호에서 '임무 완수(Mission Accomplished)'라는 정치적 쇼를 벌였다. 부시는 페르시아 만에서 이라크 침공 작전에 참여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아고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인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 호에 나타나 '승전'을 선언했던 것이다.
언론에 공개된 이날 이벤트는 처음부터 정치적 쇼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우선 항공모함에 착륙할 때 부시는 전용 헬리콥터를 타지 않고, '해군 1호'로 알려진 바이킹 제트기를 타고 착륙했다. 당시 백악관은 전용 헬리콥터가 항공모함과 멀리 떨어져 있어 불가피하게 바이킹 제트기를 탔다고 설명했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전용 헬리콥터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이킹 제트기가 항공모함에 착륙할 때는 일반 전투기가 항공모함에 착륙할 때처럼 쇠줄로 제트기 바퀴를 낚아채서 정지시켰다. 전용 헬리콥터로 내리는 것보다는 훨씬 '전투적이고 군 총사령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장면이었다. 여론조작의 한 수법이었다.
그리고 바이킹 제트기에서 나오는 부시의 모습은 조종사 전투복 차림이었다. 그는 다른 전투기 조종사와 함께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했으며, 이 장면은 미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방영되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평복으로 갈아 입은 뒤 항공모함 링컨호 선상에서 '이라크 전쟁의 임무 완수'를 선언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그가 이 선언을 할 때 그의 뒤 항공모함 몸체에는 '임무 완수'(Mission Accomplished)라는 거대한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라크에서 있어온 전투에 끝을 알린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 장면도 미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전해졌다.
이 '임무완수' 쇼는 미국 정치 역사에서 가장 어리석고, 유치한, 자기 발등을 찍은 '정치 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왜냐하면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일시 승리한 듯 보였으나, 이내 참혹한 내전과 끔찍한 테러가 줄을 이었고, 그 과정에 엄청난 미군과 이라크인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임무가 완수된 것이 아니라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분쟁과 파괴, 살상이 무작위로, 대규모로 이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라크 침공 뒤 미군의 사망자가 4천 명을 넘어섰고,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만도 10만 명을 넘어섰다. 9·11 테러로 숨진 미국인 숫자가 2973명인데,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치른 여러 전쟁 가운데 이라크에서만 미군 사망자가 9·11 피해자의 숫자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리고 전 세계로 반전 시위가 번졌고, 미국 내에서도 부시의 지지율은 '임무 완수' 쇼 뒤 완전히 내리막길이었다.
부시는 2009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 '임무 완수' 이벤트는 실책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부시가 고백하기 전 이미 '임무 완수' 쇼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도대체 아직도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더욱이 내전 폭발이 임박한데, 어떻게 '임무 완수'를 선언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항공모함 이벤트 직후부터 쏟아져 나왔고, 이 정치쇼는 부시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정치계산에 너무 몰두한 MB와 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