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라 쉼터 만드니 개구리가 찾아왔다

[2010년 나만의 특종] 호루라기 불며 공사판 작업반장 두 달을 휘저으며

등록 2010.12.17 15:48수정 2010.12.2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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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라쉼터 살기 좋은 마을 구조라 쉼터 표지석 ⓒ 정도길

▲ 구조라쉼터 살기 좋은 마을 구조라 쉼터 표지석 ⓒ 정도길

한 여름인 7~8월 땡볕보다 더 뜨겁고 덥게 느껴지는 6월. 공공근로 하시는 어르신 50여 명과 함께 작은 공원 만들기에 나섰다. 구조라 마을 한 공터에서 공사는 시작되었다. 함께한 사람은 어머니보다 몇 살 아래가 대부분이었지만, 몇 살 위도 몇 분 있었다.

 

오전이라지만 땡볕이다. 이미 몸 전체는 땀범벅인 상태로 옷을 입고 물에 들어간 기분이다. 팔뚝은 열을 받아 빨갛게 익은지 오래고, 검은색으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밀짚모자 아래로 흐르는 땀은 눈에 들어와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이마에 흐른 땀이 콧등성이를 지나 입에 들어온다. 짭짤하다. 더위와의 한 판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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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오줌 꽃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노루오줌 야생화. ⓒ 정도길

▲ 노루오줌 꽃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노루오줌 야생화. ⓒ 정도길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공터에 작은 공원을 만들기로 마을 이장과 의견이 오갔다. 관광객들에게는 쉼터를 제공하고, 아이들에게는 자연 학습장을 마련하자는 것. 잡초가 무성한 땅은 중장비가 동원됐다. 인력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땅을 고르고 정자를 짓기 시작했다. 목수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래야, 통나무를 옮겨주고, 들어 받쳐주는 것이 전부. 공공근로 하시는 분 중 다행히 목수가 있어 정자 만들기는 잘 마무리 되었다.

 

공원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부로부터 설계도를 지원 받은 것도 아니었다. 머리 속 느낌으로 백지에 대충 그림을 그렸다. 엉성한 설계도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 같은 설계도에 무슨 공원이 탄생할까 하는 의구심은 나뿐만 아니라, 동참하는 분들도 같았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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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산 두 달여 만에 마무리를 한 구조라 마을 꽃 동산. 그네, 돌탑, 파고라가 비치되고, 화려한 꽃과 야자수가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 정도길

▲ 꽃동산 두 달여 만에 마무리를 한 구조라 마을 꽃 동산. 그네, 돌탑, 파고라가 비치되고, 화려한 꽃과 야자수가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 정도길

공원의 주제는 '살기 좋은 마을 구조라 쉼터'로 정했다. 계절별로 각가지 야생화가 피고, 연못에는 수생식물이 꽃을 피우게 할 계획이다. 장독대를 만들어 옛 추억을 살리고, 투호놀이와 씨름을 할 수 있는 민속놀이 마당도 만들기로 했다. 거기에다 운치 있는 그네와, 소망을 빌 수 있는 작은 돌탑 하나를 만들어 마무리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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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장독대. ⓒ 정도길

▲ 장독대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장독대. ⓒ 정도길

땀 흘리는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공원 형태는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야트막한 동산을 만들고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돌 대신 나무토막으로 경계를 세웠다. 나무토막은 인근 공사장에서 나온 폐 목재를 직접 전기톱으로 잘랐다. 30㎝ 짜리 1천여 개를 자르는 동안 톱날도 몇 개나 갈아치웠다. 어르신들이 자르는 걸 보고, 직접 해 보니 쉬운 게 아니었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이 하는 일이 쉬워 보인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다.

 

오전 10시 쉬는 시간. 쉬려고 땡볕을 피해 이리저리 분주하다. 덥고 피곤하다 보니 체면 차릴 형편도 아니다. 팔자로 드러누워 하늘을 보는 사람, 냉커피 한 잔에 피로를 푸는 사람, 등 뒤로 흘러내리는 땀을 서로 닦아 주는 사람, 쉬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10분간 휴식을 마치고, 작업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불자, 들은 척, 만 척 한다. 괜스레 못 들은 척 하고, 딴청도 피운다. 난들 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까. 작업반장 지독하다고 욕(?)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고 마냥 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빨리빨리 움직이라는 고함소리가 이어진다. 욕 듣기를 자초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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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나르기 공원 만들기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흙을 나르고 있다. ⓒ 정도길

▲ 흙나르기 공원 만들기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흙을 나르고 있다. ⓒ 정도길

흙을 퍼 날라 꽃동산을 만드는 작업은 1960년대 밀가루 배급 공사를 연상케 한다. 작은 대야에 흙을 담아 옆 사람에게 건네주어 한 군데 작은 동산을 만든다. 간격이 조금 벌어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금 앞당겨 오라고 야단이다. 고생 끝에 터 고르기 작업은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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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 붉은 벽돌로 장독대 담장을 쌓고 있는 필자. ⓒ 정도길

▲ 장독대 붉은 벽돌로 장독대 담장을 쌓고 있는 필자. ⓒ 정도길

남자들은 빨간 벽돌로 장독대 담장을 쌓고 있다. 나이 든 분들이고, 경험이 없는 터라, 작업 진도는 전문 인력보다 두 배 이상 든다. 줄을 퉁겨 놓고 쌓았지만 한 줄을 다 쌓고 보면 삐딱하다. 다시 뜯어 새롭게 쌓아 보지만 별반 나아 보이지 않는다. 담장 위는 짚으로 엮은 용마루로 마무리다. 요즘 짚으로 용마루를 엮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현실에서, 그래도 용마루 엮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제법 폼이 나고, 운치도 있어 보인다. 고향 맛이 물씬 풍기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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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공원에 작은 연못도 만들었다. 수련과 부레옥잠을 심었다. ⓒ 정도길

▲ 연못 공원에 작은 연못도 만들었다. 수련과 부레옥잠을 심었다. ⓒ 정도길

작은 연못 만들기는 중장비가 도왔다. 자연을 닮은 모양을 내기 위해 큰 돌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맞추기를 반복했다. 밑바닥은 물이 새지 않게 하기 위해 시멘트 작업이 마무리다. 호스를 연결하고 물을 가둬 하루가 지나니 물은 다 새어 버리고 없다. 다시 시멘트로 보완작업을 거쳐 연못이 완성됐다. 이제 수생식물만 심으면 작은 연못 하나가 탄생되리라.

 

한 달여 지나니 공원 조성을 위한 기초 작업은 얼추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야생화는 아침 일찍 멀리 고창에서 달려 도착했다. 사계절 피는 야생화를 골고루 선택한 100여 종의 야생화.

 

평소 야생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행지를 가면 꼭 야생화 공원을 빼 놓지 않고 둘러본다. 몇 년 전, 고창들꽃학습원에 들러 야생화의 매력에 빠졌다. 그런 인연에 고창 야생화를 들여오게 된 것이다. 군데군데 심을 위치를 정해주며 심는 요령도 설명했다. 포기당 몇 백 원에서부터 몇 천 원에 이르고, 수련은 만 원이 넘기에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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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 공원 옆으로 식재된 야자수 종류의 나무. 외도보타니아에서 다섯 그루를 기증했다. ⓒ 정도길

▲ 야자수 공원 옆으로 식재된 야자수 종류의 나무. 외도보타니아에서 다섯 그루를 기증했다. ⓒ 정도길

오뉴월 땡볕에 땀 흘린 두 달의 시간이 지났다. 무성하게 잡초난 빈 공터는 화장한 여자 얼굴보다 더 예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모두가 벅찬 기쁨을 누리면서 서로 토닥거리며 격려했다. 공원 입구에는 기념으로 큰 바위에 '살기 좋은 마을 구조라 쉼터'라는 표지석도 세웠다. 돌탑 앞에서 기념촬영도 마쳤다. 사람 힘이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 다시 공원을 찾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장독대에 참새가 노닐고, 연못에는 개구리 알이 보였다. 평소 안면이 있는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한 인부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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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 들판이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공원을 만들고 난 후 고인 물을 찾아온 개구리가 알을 낳고 올챙이로 변하고 있다. ⓒ 정도길

▲ 올챙이 들판이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공원을 만들고 난 후 고인 물을 찾아온 개구리가 알을 낳고 올챙이로 변하고 있다. ⓒ 정도길

"한 달 전엔 개구리 울음소리를 못 들었는데, 최근 며칠은 개구리 울음소리에 잠을 못 잘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동네 한 복판에서 보기 드문 참새가 날아와 공원을 휘 젖고 다니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여기에 참새가 날아 올 리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알고 보니 참새는 장독대 볏짚에 달려있는 나락 먹이 때문에 날아왔고, 개구리 알은 물을 찾아온 개구리가 낳았던 것이다. 그 작은 참새 눈으로 나락을 찾아 날아들고, 들판과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고인 물을 찾아 개구리가 찾아 왔을까. 동물이 살아가는 자연의 법칙을 또 한번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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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촬영 두 달여 동안 고생을 함께한 어머니 같으신 분들과 공사를 마무리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 정도길

▲ 기념촬영 두 달여 동안 고생을 함께한 어머니 같으신 분들과 공사를 마무리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 정도길

거제도 최고를 자랑하는 구조라해수욕장이 개장하는 날, 마을 이장으로부터 개장식에 참석하라는 전화가 왔다. 왜 그러냐 하니 공원 조성에 앞장 선 공로로 감사패를 주겠다는 것. 못 이기는 척 하고, 받았지만 쑥스럽다는 생각이다. 이 감사패는 어머니 연배와 같은 공공근로 하시는 분들이 받아야 하는 것이었기에. 6월 땡볕 두 달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작업반장 호루라기 소리에 깜짝 놀라고, 잔소리(?) 들으며 묵묵히 일해 주신 거제시 일운면 어르신들. 이 자리를 빌려 어르신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씀을 드리면서,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구조라쉼터 #야생화공원 #노루오줌 #구조라해수욕장 #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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