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겨울축제인 산천어축제가 개최 일을 불과 5일도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축제를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축제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축제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구제역이 강원도 전역으로 확산이 되고 있는 상태에서 축제를 예정대로 진행할 수도 없어 극심한 고뇌에 빠져 있다.
화천군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오는 1월 8일에 축제를 개최한다는 계획이었다. 지난 일 년 내내 축제만 바라보고 살아온 지역 주민들의 기대를 외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정된 개최 일에 맞춰 축제를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해가 바뀌면서 상황은 오히려 점점 더 나쁜 쪽으로 기울고 있다.
3일, 구제역이 태백산맥을 넘어 강릉으로까지 번진 것으로 확인됐다. 구제역이 사실상 강원도 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화천군으로서는 축제를 개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속은 점점 더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화천군은 3일, 회의를 열어 최종적으로 축제 개최 및 연기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화천군으로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축제를 개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도, 화천군이 축제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축제를 개최하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 역시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축제를 포기하는 것과 동시에 함께 포기해야 할 경제효과가 500억 원을 넘는다. 화천군은 오는 6일경 다시 회의를 열어, 마지막으로 축제 개최 여부 등을 확정짓는다는 계획이다.
천안함 침몰 이후, 일 년 내내 고통 감내
화천군이 이런 진통을 겪고 있는 데는 화천군이 안고 있는 문제가 전에 없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사정은 매우 절박하다. 화천군의 경제는 지난해 초부터 최악의 '한파'를 맞고 있다. 지난해 3월 서해상에서 훈련 중이던 천안함이 침몰하고 11월에는 연평도에 폭탄이 떨어지면서 지역 경제가 일 년 내내 꽁꽁 얼어붙어 있다.
'군부대 비상'이 원인이다. 남북 간 대립이 화천과 같이 군부대가 밀집해 있는 지역에 미친 영향은 직접적이다. 비상으로 군인들의 외출과 외박이 엄격하게 제한되면서, 사실상 군인들에 의해 움직이던 밑바닥 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의 삶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가장 심한 한파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음식점이나 숙박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이다. 요즘 경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화천읍내에서 15년 동안 영업을 하고 있다는 한 중국음식점 주인은 금방 낯빛이 굳어졌다. 그는 대뜸 "군부대에 비상이 걸리면서 지난 일 년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한 해를, 지금까지 장사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해로 꼽았다. 그러면서 "아이엠에프가 터지면서 줄곧 어려웠는데, 올해(2010년)는 아이엠에프 때보다 더 어렵다"며 "이런 상태에서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는 산천어축제마저 취소하거나 연기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근심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군부대에 비상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 그들이 그나마 희망을 걸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게 산천어축제 때문이다. 그런 마당에 이제는 축제마저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더욱 더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당장 앞으로 생계를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걱정이다.
오로지 산천어축제를 위해 일 년을 준비하며 기다려온 온 사람들의 사정은 더욱 더 절박해 보인다.
산천어축제 현장 근처에서 낚시점과 음식점 등을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오로지 축제가 열리기만은 기다리고 있는데 축제가 열리지 않으면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축제를 맞이할 준비를 거의 다 해놓은 상황"이라서 "축제가 열리지 않으면 그동안 축제에 투자한 금액을 되찾을 방법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축제가 열리지 않으면 자신들은 "구제역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축제(가 열리지 않는 것) 때문에 죽는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들뿐만 아니라 화천 경제 전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들은 지금 축제 개최 여부를 놓고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군인들은 비상 사태, 화천군은 초비상 사태
화천군에서 산천어축제는 단순한 축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행사 기간에만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축제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게다가 올해 열리게 되는 산천어축제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으로 심하게 위축이 된 지역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자 기회이다. 간단히 보아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화천군은 이미 지난해 12월 11일에 산천어축제와 관련해 '선등거리'에 불을 밝히는 점등행사를 치렀다. 점등행사를 치를 때만 해도 화천군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선등거리 곳곳에 내걸린 화천어 모형의 등에 불이 켜지면서 사실상 축제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축제를 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러던 그달 23일 갑자기 평창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로, 이 문제가 급기야 축제를 개최해야 하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로까지 번지는 바람에, 현재 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걱정과 불안이 '비상'을 뛰어넘어 '초비상' 상태로 돌입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각자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나라 경제가 사상 최대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코스피지수가 날마다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는 것에 반해, 나라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의 삶이 나날이 궁핍해지고 있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화천군은 이제 겨우 '축제'를 맞이하나 했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지점에서 호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화천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화천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는 사실 산천어축제로도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일상적으로는 군부대 비상 조치에 일부 제한을 푸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 오는 6일, 화천군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화천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간에, 이 한겨울에 지역 주민들의 삶이 더 이상 절망적으로 변해가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 겨울 추위가 유난히 매섭다.
2011.01.04 15:42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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