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동계올림 중봉지구 실사단이 머물렀던 자리. 들깨밭이었으며, 활강 경기장 건설 예정지인 가리왕산이 보인다
강기희
높이가 1561m나 되는 가리왕산은 정선군과 평창군 등 산이 많은 강원 남부 내륙에서도 중심 역할을 하는 산이다. 우리나라에서 명산의 반열에 들자면 깎아지른 기암에다 천년고찰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만 가리왕산에는 그 비슷한 풍경조차 없다. 그래서 가리왕산은 그동안 많은 사람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산으로 조용히 지내왔다. 그 때문에 가리왕산은 전국의 다른 명산에 비해 자연생태계만큼은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넉넉한 품처럼 여러 산을 거느리고 있는 가리왕산은 정선군과 평창군을 아우르며 숱한 계곡과 마을을 만들어냈다. 가리왕산은 강원도의 지리산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면적이 넓고, 아픈 역사도 지니고 있다. 고대 부족국가였던 고대 맥국(貊國)의 갈왕(葛王)이 피난처로 삼았기에 붙여진 이름 '갈왕산'은 일제 때 가리왕산으로 바뀌었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빨치산들의 주요한 진퇴로였다.
조선시대엔 산삼봉표비(궁중에 진상하는 산삼을 캐던 곳을 알리는 비)를 세워 백성의 출입을 금하기도 했던 가리왕산은 현재 국가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가 가리왕산을 보호해 왔고, 그래서 생태계는 더욱 잘 보존된 셈이다.
환경단체 "환경올림픽? 특별법이 통과되면 대응하겠다"그런 가리왕산을 두고 최근 말이 부쩍 많아졌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활강 경기장이 가리왕산 중봉(1343m)과 하봉(1380m) 일대에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녹색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들은 동계올림픽이 유치되자 일제히 가리왕산의 환경파괴를 걱정했다. 가리왕산은 담비, 삵, 하늘다람쥐, 한계령풀, 금강제비꽃, 도깨비부채 등 희귀동식물과 주목군락지 등이 있을 정도로 환경보존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환경적인 공사를 한다 하더라도 환경파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현재는 법으로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가리왕산을 손댈 수 없다. 가리왕산에 경기장을 지으려면 동계올림픽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이 특별법은 오는 8월 말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자희 녹색연합 활동가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가리왕산은 인간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은 대표적인 생태보존지역이다. 정부와 강원도가 환경올림픽을 지향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지는 확신할 수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두고 볼 수만도 없다"며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용을 검토한 후 공식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