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의 꿈대목장주를 꿈꾸며 화려하게 귀향.
성락
"일어나세요! 모닝콜 시각입니다."친절한 안내 멘트에 이어 '띠리리, 띠리리리....' 귓전을 울리는 효과 음악이 이른 새벽의 적막을 깬다. 오전 5시 30분. 무거워 주체하기 어려운 눈꺼풀을 굳이 들어 올리려 애쓸 필요는 없다. 휴대전화 알람 시각을 10분 연장하고 벌렁 누워 버린다.
"...세요! 모닝콜 시각입니다." 앞의 멘트는 대개 듣지 못한다. 그새 10분이 흘렀다. 잠결이지만 능숙하게 또 한 번 모닝콜 시각을 연장 설정하고 또 자리에 벌렁. 세 번째 성화에야 마지못해 졸린 눈을 비비고 자리를 턴다.
10분 전 여섯 시. 아무리 서둘러도 여섯 시 정각에 가게 문을 열기엔 이미 늦었다. 제시간에 식사를 못하고 피로가 쌓이면서 부쩍 자주 나타나는 '변기 위의 전쟁'이라도 도지는 날에는 30분 지각을 각오해야 한다.
사슴 이끌고 고향 앞으로, 그러나...자동차로 5분 남짓의 가게에 '헐레벌떡' 도착. 문 열리기를 기다리던 애연가들의 표정이 곱지 않다. 담배 판매점이 흔하지 않은 외딴 시골 국도 변이기에 마지못해 기다려주는 고객과 이틀에 한 번꼴로 이렇게 마주친다.
넓지 않은 가게 구석구석에서 나방과 하루살이, 날개미 시체가 쓰레받기로 가득 나온다. 밤사이 곳곳에 '레이더'를 장치한 거미들과의 신경전도 기다린다. 바닥 걸레질과 각종 상품이 진열된 쇼케이스 청소, 야외 간이 의자며 파라솔 등을 청소하고 안팎의 쓰레기를 봉투에 담으면 대충 아침청소가 끝난다.
그러는 동안 출근한 주방 아주머니(이곳은 식당과 편의점을 겸업 중이다)가 장 볼거리를 메모지에 적어 건네준다. 오전 9시. 지역신문의 인터넷판에 올라온 기사들을 모아 중학교 총동문회 인터넷 카페에 올리는데 30분은 족히 걸린다. 점점 느려지는 컴퓨터 처리속도 탓에 답답함이 아침부터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가게에서 5km 정도 떨어진 안흥시장에 가서 식재료들을 구입하고, 이장님 댁 비닐하우스에 들러 대파를 '훔친다'. (사전 양해는 있었지만 주인도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농작물을 수확해 오는 행위라 이런 표현을 쓴다.)
이렇게 시작된 일과는 밤 11시에 마무리된다.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에서 살짝 엿볼 수 있지만 국도 변 휴게소 내에 있는 식당과 편의점을 운영하는 게 내 직업이다. 이제 겨우 3개월을 넘긴 처지라 '직업'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게 좀 어색하다.
8년 전, 그러니까 2003년10월 대농장주의 꿈을 안고 마리당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엘크사슴 22마리를 앞세우고 고향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30대 후반이었으니, 거의 20년 만에 귀향한 셈이다.
서울 등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니던 직장 역시 농축산 분야여서 대농장을 일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컸다. 하지만 지금은 구두굽 높이에 맞춘 바지가 길고 거추장스러워 장딴지까지 걷어 올리고 주방과 계산대를 종종걸음으로 누비는 내 모습에서 목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험하지 않고 작성한 '귀향 사업계획서' 쓸모없어다 정리한 건 아니지만 사슴농장은 이미 크게 축소됐고, 나의 주력 사업도 아니다. 고맙게도 수년간 믿고 찾아주시는 단골손님들과의 인연을 정리할 수 없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귀향(귀촌) 사업계획서에서 사슴농장 다음의 비중을 차지했던 농촌민박도 접은 지 오래다. 구구절절 '나는 이렇게 했는데 저렇게 안 되더라'며 푸념섞인 그간의 과정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다만, 더욱 철저한 사전조사 또는 직간접적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의 '오만한' 사업계획으로는 결코 농촌살이를 성공으로 이끌 수 없다는 게 그동안 얻은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없다. 즉 일꾼이 없다는 얘기다. 농사일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활동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도회지에서 눈칫밥 좀 먹고 세상 물정 살피기에 조금 나은 귀향인들에게 그 역할이 집중적으로 주어지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