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외수
최유진
- 과거 선생님이 쓴 <괴물>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작품의 세계관도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웠고. 반면 요즘 쓰신 책은 읽기 편안합니다. 선생님이 조금 상업적으로 변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문제는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옛날에 쓴 <들개> <꿈꾸는 식물> 등은 대개 좌절과 절망 그리고 자살로 귀결이 돼요. 스스로 '나는 참 무책임하다'는 자책을 했어요. 물론 아직도 내 마니아들은 그때처럼 써 달라고 해. 그런데 내가 진정한 작가면 구원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지.
니체는 구원을 초인에게 맡겼고, 톨스토이는 종교에 맡겼어. 그럼 나는? 동양에서 할 수 있는 게 뭐야? 그래서 내가 공부를 좀 했어요. 서양의 새로운 문예·철학·예술 사조는 모두 반동에 의해서 태어났어. 하지만 동양은 반동이 아니라 온고지신, 즉 옛 것을 통해 새것을 찾았어요. 서양은 시시각각 철학의 대상이 변해. 경제, 자연, 이성, 구조, 혼돈.... 하지만 동양은 시종일관 철학의 대상은 '도'야. 그래 이거야! 내 젊은 날의 소설 주인공을 구할 방법을 찾은 거지요.
노자, 장자 다 공부했는데, 우리 것은 뭘까? 보니까, 풍류도가 있어. 우리는 '시서예악'을 모르면 깨달음을 얻지 못해요. 이걸 알아야 노닐 수가 있어. 그냥 알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그걸 즐길 줄 알아야지. <벽오금학도>를 기점으로 내 문학적 색채는 전환됐어요.
내가 춘천교육대학을 중퇴했는데, 언젠가 총장이 명예 졸업장을 주면서 도서관에 전시할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새 그림을 기증하고 거는데 한 무리의 학생이 지나갔어요. 총장이 애들을 보고 '얘들아 이리와 봐라, 이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하고 물었는데 아무도 모르는 거야. '몇 학년이야 니들?'하고 물었더니 2학년이래. 아, 10대, 20대가 내 소설을 안 읽는구나 하고 느낀 거지. 그래서 10대, 20대가 읽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어요."
10대와 20대가 읽는 소설을 쓰기 위해 그는 그들의 문화를 분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바로 '조립식 문화'였다고 한다.
"당시 젊은이들을 분석해보니 조립식 장난감, 토막 난 만화, 토막 난 연속극을 보며 자랐더라고. 그래서 좋다. 그럼 소설을 그렇게 써보자 해서 소설을 다 토막을 내고 조립해서 읽을 수 있게 한 게 <괴물>이에요. 참 애정을 많이 쏟아 부은 작품이에요. 아이 참 이거... 내가 또 흥분했네. 하하하. <괴물>을 생각하면 흥분할 때가 많아."
- 많은 책을 내셨고, 큰 대중성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예상은 거의 받지 못하셨어요. 서운하지 않습니까?"이순신 장군이 무슨 상 받았어? 진짜들은 다 척박한 거예요. 내가 <세대>라는 문예지에서 중편소설로 등단을 했어요. 이 문예지에서 등단하는 건 많은 작가들의 로망이었지. 3년 동안 수상자가 없었는데, 내가 된 거지. 내가 등단했을 때 떠들썩했어. 극찬도 많았고. 그런데 3년 동안 청탁이 안 와. 정말 이상하잖아. 나중에 알고 봤더니, 자기들끼리 학연, 지연, 선후배 따지고 다 하더라고.
사실 3년 내내 청탁 안 오면 왕따 당한 기분 들지. 좋다! 그럼 내가 문단을 왕따시켜 줄게! 그래서 등단 이후 40년 가까이 작가-출판사-독자 이 삼각구도만 믿고 살아왔어요. 사실 힘들었지. 다른 사람보다 몇 배 노력을 해야 했어요."
- 요즘 집필하는 작품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물 위를 걷는 사람 이야기예요. 그래서 직접 겪어보고 그곳에서 집필하려고 중고 요트 하나를 구입했어. 요트는 집필이 끝나면 화천시 관광상품으로 기증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