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전 의원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책 나눔 캠페인'에 추천할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동환
"시민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공화정은 시민들이 읽기와 쓰기, 말하기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여러 가지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읽기, 쓰기, 말하기가 모두 침체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시민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통치자가 결정 내려주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읽기 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책 읽기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지요."'장벽없는 책 읽기가 공화정의 기초가 될 수 있다'. 정치가다운 답변이었다. 정치인 중 유별난 다독가로 알려진 17대 국회의원 최재천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분야를 막론하고 읽으면 좋을 책들을 다양하게 추천했다.
"매일 책 한 권씩 읽는 것이 목표"라는 최 전 의원의 책 사랑은 그가 얼마 전 출간한 본인의 저서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자서전이나 정치적 입장을 담은 책이 아니라, 자신이 읽은 153권의 '양서'에 대한 서평을 담은 책 <최재천의 책갈피>를 썼다. 최 전 의원은 이 책에 서명한 후 '책 나눔 캠페인'에 기부했다.
최 전 의원은 평생의 독서 중 인상 깊었던 책들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조정래의 <태백산맥>,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 서경식의 <나의 서양 미술 순례>, 언론인 리영희 선생의 저서 등 역사 속에서 인간의 성찰을 담은 책들을 추천했다.
그는 "우리는 책을 통해서 생각과 역사와 문화를 나눌 수밖에 없는데 한국 시민들은 실질적으로 (사회적 계급에 따라) 정보에 접근하고 판단할 기회를 평등하게 가지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균형이 맞춰져야 공동 문제를 공동으로 결정할 수 있고 책 나눔은 그 실현을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책 나눔으로 평등한 세상 만들 수 있어"- 책을 많이 읽는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결이 무엇인가요?"아무래도 작은 아버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다리를 전혀 못 쓰시는 분이었는데 책에 대한 열망이 대단하셔서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타지에 있는 먼 친척의 집에 가서 책을 빌려오시곤 하셨어요.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시골에는 활자로 된 읽을거리가 없었거든요. 저는 농약 설명서도 몇 번씩 반복해서 읽을 정도로 활자에 대한 목마름이 강했는데 작은 아버지가 정말 어렵게 그 목마름을 채워 주셨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몇 권 추천해주세요. "저는 역사와 역사 속 인간에 대한 성찰이 담긴 책을 좋아합니다. 그런 책들은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나 나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주거든요.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제가 종교에 대해서 처음으로 고민해보게 되었던 책이고, 대학 때는 리영희 선생이 쓰신 책들에 큰 영향을 받았지요. 러시아 혁명을 다룬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이나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성찰이 탁월합니다.
저는 추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책은 여러 권을 사서 선물하는 취미가 있는데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와 서경식의 <나의 서양 미술 순례> 같은 책들은 제 기억에 각각 천 권 이상 선물한 것 같습니다. <오래된 미래>는 우리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함께 꼭 읽어봤으면 하고요, <나의 서양 미술 순례>는 서양의 그림 속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읽어내는 좋은 책입니다."
- 기증하시는 책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최재천의 책갈피>는 제가 2009년 3월부터 <주간경향>에 연재했던 서평 모음입니다. 제가 살면서 깊은 영향을 받았던 책 수십 권을 골라서 서평 안에 다음 세대에게 건네고 싶은 저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 이번 책이나 그동안 쓴 저서들을 보면 분야도 다양하지만 특히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는 책들이 많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저는 사실 저에게 책에 대한 세례를 내려주신 작은 아버지와 제가 책을 읽을 수 있었던 한국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윈도우즈를 만든 빌게이츠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런 전문가가 되었을까'라는 말을 했다지요. 저도 작은 아버지, 한국 사회가 없었다면 지금의 모습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받은 만큼 이 사회에 되돌려야한다는 마음 때문에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조급해 하기도 합니다. 비록 지식인도 아니고 저널리스트도 아닌 애매한 위치지만 내가 우리사회에서 배운 것들, 받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책을 가급적 쉽게,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헌법상 기본권인 시민권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