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순씨, 대한민국 정치를 '밀어서 잠금해제'

[주장] 특별한 사람들에 갇힌 정치를 '잠금해제' 할 특별한 시도

등록 2011.10.20 17:43수정 2011.10.2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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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필부의 아들로 태어나 모두가 그랬듯 가난을 겪었고, 없는 살림에도 열심히 공부해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서울대에 들어간,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들이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 1970년대 많은 대학생들이 그랬듯 독재 정권에 항거했다. 학생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대학에서 제적당한 것도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학생운동과 제적은 '정의의 상징' 같은 것 이었으니까. 이후 그는 다른 대학에 들어갔고 서울대로 복학이 가능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에게는 삶의 첫 번째 갈림길이었을 것이다. 특별함과 평범함의 갈림길에서 그는 '평범함'을 택했다.

위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시민후보로 나선 기호 10번 박원순씨의 이야기다. 그는 그의 삶 속에서 수차례 갈림길을 만났고 그 때마다 '평범한 삶'이 있는 쪽을 선택했다. 잘나가던 검사 자리를 때려치고 '인권 변호사'라는 낯선 직함을 가졌을 때, 잘 나가던 변호사가 대기업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겠다고 했을 때, 그는 언제나 번쩍거리는 명패를 집어던지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서 일하고자 했다. 그렇게 원순씨는 평범한 삶을 살고자 했다.

세상은 그를 평범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평범한 삶을 지향한 그의 선택을 두고 혹자는 '정의로워 보이려는 식자의 허세'로 평가하기도 한다. 검사, 변호사를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집을 가득 채울 정도의 책을 살 수 있었으며, 그래서 그런 선택이 가능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마치 강남좌파처럼. 물론 그런 허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도 그의 속을 알 수 없으니….

하지만 그가 걸아온 삶의 경로를 봤을 때, 그는 분명 평범함을 지향했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득권을 과감히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가진 재산을 시민단체에 기부하고 자꾸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그의 명성이 높아진 것뿐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기에, 그는 의도치 않게 특별한 삶을 살게 됐다. 즉 평범하게 살려고 했지만 그의 용기가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선택

그는 이제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특별한 길로 들어서겠다고 선언했다. 늘 기득권을 버리는 선택을 해왔지만 이번만큼은 과감히 '기득권의 중심에서 정치를 외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를 변하게 했는가? 그를 변하게 한 것은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아우성이다.

아이들에게 밥 한 끼 주는 문제로 나랏돈을 수십억원 쓰면서 정치권이 꼴 사나운 다툼을 하는 동안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내지 못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아우성 쳤다. 수천억 원을 횡령하고도 '보석'이라는 이름으로 태연하게 석방되는 재벌 총수가 있던 교도소에서 그는 가난에 허덕이다 보험금을 노리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아우성을 들었다. 그 아우성을 들은 원순씨는 더 이상 평범해질 수 없었다. 정의롭게 살고자 평범함을 거부했는데 특별한 위치에 올라와버린 자신이 '평범해 지겠다'고 모른 체 뒤돌아서는 것은 그의 인생관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특별함을 인정했다.

특별한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그가 발을 딛은 여의도 정치판은 그의 선택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가난으로 인해 겪은 가족의 이별사는 어쩌면 '병역기피를 위한 호적 쪼개기'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재단이 받은 기부금은 어쩌면 참여연대의 날선 비판을 잠재우려는 검은 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특별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이상 이 모든 의혹들은 거짓없이 솔직히 밝혀져야 한다. 그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이 겪지 않아도 될 여정의 한 가운데 놓여있음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그는 정치인이 됐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삶은 특별해졌고 그는 다시 평범한 삶을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이 정치인의 운명이다. 그래서 토론을 피하지 말고,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스스로 깨끗하다면 털어 보여주고 잘못한 것은 시인해야 한다. 눌변인지, 달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의혹이 있다면 밝히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정면에서 승부하라. 네거티브 공세에 네거티브로 맞서기 보다는 '나를 깨끗하게 만들어 상대를 낯설게' 하라. 그렇게 경쟁해서 살아남는 것. 그것이 원순씨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해야할 일이다.

평범한 사람이 원순씨에게
평범한 사람들은 그의 특별한 결심을 환영한다. 평범했던 원순씨가 평범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살다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가 서울시장이 된다면 서울시는 '평범한 개인들의 특별한 이야기'로 가득찰 것이다.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던 정치를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게 됐고, 또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특별한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그에게 기대를 건다.


이번 보궐선거는 나경원 후보의 승리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의미있다. 그 도전자체만으로도 '정치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열려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남은 선거운동 기간에도 그 가능성을 더 보여주어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가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 정도로 깨끗하게' 의혹을 해소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이 폐쇄적인 대한민국 정치를 '해제'시켰으면 한다. 대한민국 정치를 '밀어서 잠금 해제'하는 것. 원순씨가 우리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다.
#박원순 #선거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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