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9일 오후 최상재 당시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천안함 조사결과 설명회에서 침몰한 천안함의 우현쪽에 있는 오그라든 스크류를 살펴보고 있다.
유성호
논란이 증폭되자 합조단은 피격의 충격으로 추진축이 함미로 밀리면서 발생한 관성력을 들고 나왔다. 만약 그 때문에 스크류가 그 정도로 휘었다면 스크류와 연결된 추진축이나 기어박스 등에도 그에 상응하는 충격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런 충격으로는 스크류가 90이상 휘고 끝부분이 다시 반대로 약간 휘어나간 실제 천안함의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폭발은 좌현에서 있었음에도 좌현 스크류가 멀쩡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천안함 사건에서 무엇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함미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에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하는 점이다.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22분께인데 함미의 위치를 최종 확인한 것은 만 이틀이 지난 3월28일 오후 10시 30분께였다. 그 과정을 보면 괴이쩍은 생각을 감추기 어렵다.
2010년 3월 30일자 언론 보도에 의하면 백령도의 어부 장씨가 28일 오전 해병대로부터 수색작업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자신의 고기잡이배를 끌고 바다로 나가 군이 찍어 준 예상지역을 뒤지다가 자기 어선의 어군탐지기로 함미 위치를 포착했다.
최초폭발지점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었는데, 4년 전 구매한 250만 원짜리 어군탐지기를 장착한 17년 된 어선이 불과 3시간여 만에 찾은 함미를 왜 군 당국은 이틀이 지나도록 찾지 못했을까. 사고 당시 인근 해역에는 해군 함정들이 적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고 이튿날인 3월 27일 해경이 함미로 의심되는 물체를 발견했다고 해군에 알렸음에도 해군은 무대응이었다(4월4일자 KBS 보도). 해경이 지목한 지점은 다음 날 어부 장씨가 지목한 지점과 똑같았다. 그동안 해군은 무엇을 한 것일까.
세간의 관심은 온통 천안함 침몰의 원인에 쏠려 있지만 천안함이 버블제트 어뢰에 피격되었든 다른 여타의 이유로 침몰했든 함미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에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국군장병이 무려 46명이나 수장되었다면 사고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수색이 그토록 늦어진 이유가 철저하게 규명이 돼야 하고, 누군가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사상검증의 리트머스지로 변해버린 천안함 사건정부와 군 당국은 다국적의 합동조사단을 꾸려 진상을 조사하고 북한의 '1번 어뢰'를 천안함 침몰의 범인으로 지목하는 보고서를 냈지만 핵심 의혹들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해명되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합조단의 발표에 의구심을 가지는 국민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그런데 정부와 보수언론은 언제부터인가 합조단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친북좌파로 몰기 시작했다. 천안함 사건이 마침내 사상검증의 리트머스지로 변해 버린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최근 헌법재판관 후보로 올랐던 조용환 법관의 경우다. 헌법재판관의 야당 몫으로 추천된 조용환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믿는다, 그러나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문제가 돼 결국 국회인준을 받지 못했다.
참여정부시절 내내 노무현 정권을 일러 "국민을 편 가르기 하는 나쁜 정권"이라고 비난해 왔던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이 이런 식의 편 가르기로 야당추천 헌법재판관 인준을 거부한 것은 전형적인 '마녀사냥'이다.
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천안함 사건의 진상을 규명했다면서 거기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왜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것일까? 과학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정부나 여당이나 혹은 일부 언론의 이런 태도는 무척 납득하기 어려운, 대단히 비과학적인 처사다. 과학적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그 결과라기보다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합조단에 과학자나 전문가가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결과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도출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과학 발전, 권위에 도전해 온 이단아들 있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