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건희 회장과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지난해 3월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회의에 참석해 만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리가 그토록 목을 매온 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 공화국'이란 형용모순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선거 때면 그들은 장밋빛 청사진을 내보이며 우리를 희망에 부풀게 했지만 실은 처음부터 우리의 몫은 없었다. 재벌과 대기업 그리고 1%의 부자들이 경제 권력을 단단히 틀어쥔 채 아파트와 주식이 내걸린 도박판으로 우리를 끌어들였고, 판돈은 점점 커져갔지만 1%의 주머니가 점점 두둑해지는 사이 99%는 빚만 늘어갔다. 처음부터 부자들만이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도박판이었다. 평범한 다수가 경제 권력을 되찾아와 경제의 규칙과 질서를 새롭게 바꿔내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다지난 몇 년간 우리 모두가 온통 경제에, 돈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는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개혁 정부 시절은 곧 우리 경제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맞닥뜨려야 했던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혹독한 구조조정 끝에 우리들의 소박한 미래마저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우리들 모두는 불안한 마음으로 도박판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십수년을 지나온 지금 더 이상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런 식으로는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 뒤에 감춰져 있던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다시 끄집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문제는 다시 '주권'이고 '민주주의'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우리가 그토록 목말라하던 민주주의가 주로 정치 권력의 획득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손에 넣어야 할 그것은 훨씬 더 넓은 영역을 포함한다. 정부, 언론, 검찰 그리고 재벌·대기업과 법원, 정당 등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제멋대로 날뛰고 있는 모든 권력들에 다시 민주주의라는 재갈을 단단히 물려야 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우리 사회의 권력이 한줌도 안 되는 세력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평범한 다수의 뜻을 거스르고 짓밟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
마침 선거를 며칠 앞두고 곳곳에 난잡하게 찍힌 권력의 발자국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지금껏 나와 내 이웃의 삶은 왜 점점 힘겨워지기만 했는지, 그나마 소박한 꿈을 꾸는 것조차 왜 허락되지 않았는지를 따져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선거만큼이나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사건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의 잣대로 후보와 정당을 살펴야서민 정책과 복지 공약, 또 지역 발전 공약들을 살피는 일은 뒤로 미루기로 하자. 어차피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끼워 맞췄을 가능성이 짙다. 그보다 민주주의라는 잣대로 후보들과 정당들을 꼼꼼하게 파헤치고 비교해보는 일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또는 그 정당의 발자취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장해온 길 위에 놓여있는지, 혹시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일에 힘을 보탰거나 그런 순간들에 침묵하지는 않았는지, 재벌·대기업 등 경제 권력의 횡포에 맞서 평범한 다수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그밖에 언론·검찰·법원 등 멋대로 날뛰는 우리 사회의 온갖 권력에 재갈을 물릴 단호한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선된 뒤에도 기꺼이 자신의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며 국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지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고, 당선된 뒤에도 줄곧 시민들에게 권력을 되돌려주기 위해 애써온 박원순 시장의 모습은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부디 이번 선거에서 또 다시 '문제는 경제야'를 되뇌며 스스로를 경제 프레임에 가두는 일은 없길 바란다. 지금껏 겪었듯 문제는 더 이상 경제가 아니다. 문제는 다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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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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