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로 만들어 드릴게요'... 눈뜨고 당했다

[게릴라 칼럼] 경제 공약은 잊어라, 문제는 민주주의다

등록 2012.04.08 20:37수정 2012.04.0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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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11월 10일 열린 비상경제책회의에서 자료를 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지난해 11월 10일 열린 비상경제책회의에서 자료를 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It's the economy, stupid!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1992년, 이 뜻 모를 문장 하나가 미국 대선 판도를 뒤흔든 일이 있었다. 우리말로 풀면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 정도의 뜻이라고 한다.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민주당 빌 클린턴 진영이 고심 끝에 내놓은 대통령 선거 캐치프레이즈였다.

1990년대 초반 이라크에 토마호크 미사일을 쏟아 부으며 한때 국정수행지지율 90%를 넘기기도 했던 현직 대통령이자 공화당 후보 부시는 이 우스꽝스런 문장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고, 독일을 통일시킨 데 이어, 후세인 독재 정권마저 무릎 꿇렸다며 자신만만하던 그였지만 결국 이 한 문장으로 경제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시에게는 안된 일이었지만, 그 시절 미국은 강했으나 미국민은 가난했다.

그 뒤로 자주 인용되거나 또는 변용되면서 널리 쓰이던 이 말이, 대한민국 선거판을 주름잡기 시작한 때는 아마도 2000년대에 접어든 뒤였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민주·개혁 정부 시절 '먹고 사는 문제'가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하던 무렵, 그러니까 한국 사회는 민주화 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한국민은 점점 가난해져가던 그 무렵이었다.

그 뒤로는 모든 문제가 '경제'로 통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굳이 누가 떠들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었다.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라고 말이다. 2007년 대통령 선거와 그 이듬해에 있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리들 가운데 많은 수가 그랬다. '경제'라 쓰고 '펀드'와 '부동산'이라고 읽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2012년 두 번의 선거를 앞둔 오늘, 우리는 또 같은 이야기를 되뇌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경제'라 쓰고 '서민 경제', '복지', '경제 민주화'라고 읽고 있다는 차이뿐, 실은 별로 다르지 않은 이야기다.

이쯤에서 한번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정말 문제는 여전히 '경제'일까?


한국사회 진짜 문제는 아직도 경제일까

 인천 중구 중산동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
인천 중구 중산동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선대식

가만히 돌아보면 언제부턴가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 경제가 놓여있다고, 경제학으로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마치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고 믿었던 중세 암흑기처럼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세상은 의심의 여지없이 경제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는 그럴듯한 경제 청사진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개혁 정부에게는 이내 아마추어라는 낙인이 찍혔고, 먹고 사는 문제에 다소 서툴렀던 개혁 성향의 젊은 국회의원들은 경제부총리로부터 '경제를 모른다'는 꾸중을 들어야 했다. 이 정부의 등장을 두고 어느 작가가 '이것은 혁명'이라며 가슴 벅차하던 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들이었지만, 우리는 어느새 그런 비난들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문제는 오로지 경제였다.

그렇게 벌써 몇 년이 흘렀고,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다. 대한민국 경제를 해마다 7%씩 키워 국민소득을 4만 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장밋빛 경제 청사진을 펼쳐 보인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고, 우리 동네를 뉴타운으로 바꿔 아파트 한 채씩만 나눠 가지면 더 이상 땀 흘려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큰소리 치던 정치 세력이 국회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우리들의 시름은 오히려 더 깊어져만 갔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혹시 문제는 경제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문제는 더 이상 경제가 아니다

때마침 이명박정부의 불법 사찰 의혹이 불거졌다. 하루가 다르게 의혹이 커지면서 검찰은 등 떠밀리다시피 다시 수사에 나섰지만, 이미 밑바닥을 보인 검찰이 새로운 무언가를 들춰낼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언론의 꽁무니만 뒤쫓고 있는 듯한 검찰에게서 "사즉생"을 떠올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언제쯤 사건의 실체가 온전히 드러날지는 알 수 없으나,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온힘을 다해 풀어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짐작케 해준다는 점에서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밝혀진 정황만으로도 이번 사건을 정부가 저지르고 검찰이 덮으려 했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정부 안에서 윗선이 어디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다시 말해 대한민국 정부와 검찰이라는 권력이 고삐가 풀린 채 제멋대로 날뛰면서 저지른 범죄다. 마땅히 주권자인 국민의 통제 아래에 놓여있어야 할 국가 기관들이 거꾸로 국민을 우습게 여기며 우롱하고 짓밟기까지 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박정희·전두환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오랜 세월 어렵게 쌓아올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民主主義)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뿐이 아니다. 벌써 두 달을 훌쩍 넘긴 MBC의 파업을 시작으로 KBS, YTN, 연합뉴스 등이 뒤를 이은 대규모 언론 파업이 보여주듯, 언론 권력의 고삐도 이미 풀려버린 지 오래였다. 아니, 언론 권력의 고삐는 오히려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으려는 정권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언로를 끊고 공론장을 허물어뜨림으로써 언론 권력을 멋대로 쥐고 흔들려는 이 같은 행태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어울릴 폭력이자 범죄다.

 삼성 이건희 회장과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지난해 3월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회의에 참석해 만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과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지난해 3월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회의에 참석해 만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리가 그토록 목을 매온 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 공화국'이란 형용모순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선거 때면 그들은 장밋빛 청사진을 내보이며 우리를 희망에 부풀게 했지만 실은 처음부터 우리의 몫은 없었다. 재벌과 대기업 그리고 1%의 부자들이 경제 권력을 단단히 틀어쥔 채 아파트와 주식이 내걸린 도박판으로 우리를 끌어들였고, 판돈은 점점 커져갔지만 1%의 주머니가 점점 두둑해지는 사이 99%는 빚만 늘어갔다. 처음부터 부자들만이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도박판이었다. 평범한 다수가 경제 권력을 되찾아와 경제의 규칙과 질서를 새롭게 바꿔내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다

지난 몇 년간 우리 모두가 온통 경제에, 돈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는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개혁 정부 시절은 곧 우리 경제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맞닥뜨려야 했던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혹독한 구조조정 끝에 우리들의 소박한 미래마저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우리들 모두는 불안한 마음으로 도박판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십수년을 지나온 지금 더 이상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런 식으로는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 뒤에 감춰져 있던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다시 끄집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문제는 다시 '주권'이고 '민주주의'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우리가 그토록 목말라하던 민주주의가 주로 정치 권력의 획득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손에 넣어야 할 그것은 훨씬 더 넓은 영역을 포함한다. 정부, 언론, 검찰 그리고 재벌·대기업과 법원, 정당 등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제멋대로 날뛰고 있는 모든 권력들에 다시 민주주의라는 재갈을 단단히 물려야 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우리 사회의 권력이 한줌도 안 되는 세력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평범한 다수의 뜻을 거스르고 짓밟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

마침 선거를 며칠 앞두고 곳곳에 난잡하게 찍힌 권력의 발자국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지금껏 나와 내 이웃의 삶은 왜 점점 힘겨워지기만 했는지, 그나마 소박한 꿈을 꾸는 것조차 왜 허락되지 않았는지를 따져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선거만큼이나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사건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의 잣대로 후보와 정당을 살펴야

서민 정책과 복지 공약, 또 지역 발전 공약들을 살피는 일은 뒤로 미루기로 하자. 어차피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끼워 맞췄을 가능성이 짙다. 그보다 민주주의라는 잣대로 후보들과 정당들을 꼼꼼하게 파헤치고 비교해보는 일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또는 그 정당의 발자취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장해온 길 위에 놓여있는지, 혹시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일에 힘을 보탰거나 그런 순간들에 침묵하지는 않았는지, 재벌·대기업 등 경제 권력의 횡포에 맞서 평범한 다수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그밖에 언론·검찰·법원 등 멋대로 날뛰는 우리 사회의 온갖 권력에 재갈을 물릴 단호한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선된 뒤에도 기꺼이 자신의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며 국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지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고, 당선된 뒤에도 줄곧 시민들에게 권력을 되돌려주기 위해 애써온 박원순 시장의 모습은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부디 이번 선거에서 또 다시 '문제는 경제야'를 되뇌며 스스로를 경제 프레임에 가두는 일은 없길 바란다. 지금껏 겪었듯 문제는 더 이상 경제가 아니다. 문제는 다시 '민주주의'다.
#4.11총선 #불법 사찰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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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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