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입고 유세하는 정통민주당 이점자 후보.
정미경
옆의 수행원이 비장한 표정으로 "불과 두 시간 전에 후보님 친정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는 "친정 아버님 부음을 듣고도 유세를 강행하기로 하셨나 보죠?"라고 물었다.
"<오마이뉴스>라고 하셨죠? 기자님, 저희 절박한 상황 좀 널리 알려주십시오. 오죽하면 상을 당한 후보자가 연설을 하러 나왔겠습니까? 저희는 선거운동원들도 없어요. 돈이 없어서, 그동안 활동비 정산을 못해 줬더니 운동원들이 모두 다 떠나버렸어요. 운동원들도 떠나고 후보자는 부친상을 당했는데, 저희는 여전히 뛰고 있습니다. 저희 목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꼭 15%대 지지율을 얻는 것입니다."잠시 차 안으로 들어가 쉬는 이 후보에게 다가갔다.
"제가 친정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뵌 게 지난 4일입니다. 암 말기라 위중한 상태셨거든요. 그래도, 무슨 일 있어도 11일까지는 꼭 버티겠다고 저랑 약속하셨는데...(눈물)" 차 창문을 내리고 기자를 향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11일을 강조하던 후보자는 끝내 운전대에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정통민주당은 광주에서도 후보자를 두 명 밖에 내지 못했다.
- 후보님 측 목표는 적어도 득표율 15% 달성이라고요?"네? 무슨 말씀을요. 제 목표는 당연히 당선이죠!"
흐느낌을 멈추지 못하던 후보자는 고개를 들고 단호한 표정으로 기자의 '오류'를 지적했다. 어렵게 눈물을 참고 연단 위로 오르는 이 후보를 이제 막 연설을 마친 정남준 후보가 위로했다.
유세 차량에 새겨진 대형 사진속에서 이 후보는 세련된 파마머리에 예쁘게 화장을 한 화사한 얼굴이다. 하지만 '생얼'에 상복을 입고 연단 위에 선 여인은 너무나 다른 모습이어서 잠시 청중들은 술렁거렸다.
"제가 상중이라 부득이하게 상복을 입고 나왔습니다. 후보자 본인 맞습니다. 상복차림으로 나와 여러분 거북하시죠?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서구 지역민들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이렇게 상복을 입고 저는 나왔습니다."연단에서 내려온 정남준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불만부터 표시했다. 정 후보는 "난 여론조사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여론조사라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광주에서 새누리당 후보 당선하나그는 야권 단일후보인 오병윤 후보를 향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이른바 '현수막 철거 사건'은 정 후보를 결정적으로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6일, 오병윤 후보 측은 현수막을 교체하면서 '실수'로 정남준 후보 측의 현수막을 철거했다. 하지만 실수가 아니라는 게 정 후보의 주장이다.
"오병윤 후보는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합니다. 국회 정론관에서 이 문제로 기자회견을 할 예정입니다. 거기서 저는 오 후보는 물론 통합진보당 후보자들의 일괄적인 사퇴를 요구할 생각입니다."오 후보 측은 "직원의 착각으로 인한 실수였다"고 해명하고 몇 차례 사과했다. 하지만 정 후보는 계속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정 후보는 '현수막 사건'을 이정현·오병윤 후보에게 집중된 여론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릴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사건의 진실은 경찰 수사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차범위 내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에게 지고 있는 오병윤 후보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악재'다.
<광주일보>와 KBC광주방송이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3∼4일 조사한 결과 이정현 후보는 44.2%, 오병윤 후보 39.3% 지지율을 기록했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이와 같은 시시비비와 잡음으로 서구을은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선두를 다투는 두 후보의 행보도 무척 긴박하다. 바로 한 시간 뒤의 일정을 파악하기 힘들만큼, 예측 불허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몰려 있거나 이목을 집중 시킬 수 있는 곳이라면 실시간으로 달려가는 게 이들의 일정이다.
서구을 유권자들도 누가 승리할지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처음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대권 주자의 최측근이 수도권 전략공천을 마다하고 굳이 지역구로 내려와 고생하는 배경에 의문을 나타냈다. 게다가 그동안 광주에서 '당선 가능성 제로'였던 새누리당 후보로 나선 게 아닌가.
하지만 야당이 공천 잡음 후유증으로 갈피를 잡지 못할 때부터 이정현 후보는 차분하게 유권자들을 만나 공감대를 형성했다. 유권자들은 지지층을 넓혀 가는 이 후보를 보면서 "저러다 설마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자 한 명 당선하는 거 아냐?"하고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는 '설마'가 '진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결국 야권 단일후보 선정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를 감행한 서대석 후보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퇴했다. 곧바로 이 후보 측은 문자메시지를 유권자에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