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야 돈 주는 알바, 참기 어려웠다

[알바 체험기 ⑤] 입시미술학원 '두상 모델'

등록 2012.08.10 12:29수정 2012.08.10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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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여름을 '피서의 계절'이라 했는가. 방학 동안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용돈에 보태고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여름은 '알바의 계절'이다. 편의점, 마트, 과외에서부터 시작해 공장, 택배하역, 엑스트라 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청춘들은 오늘도 땀을 흘린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땀 냄새 물씬 나거나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알바 체험기를 소개한다. [편집자말]
"움직이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여름방학이 3주도 채 남지 않았다. 3주, 집 안에서 허송세월 보내기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알바(아르바이트)를 해보자니 날씨가 너무 더워 집에만 있고 싶어진다. 노동의 욕구와 더위를 피하고 싶은 욕구가 충돌할 때, 우리는 움직이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알바를 꿈꾼다. 연이은 폭염 속, 움직이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꿈의 알바'를 찾고 있던 당신에게 '두상 모델' 아르바이트를 소개한다.

가만히 앉아 있어야 돈 주는 '두상 모델' 아르바이트

 두상 모델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미술학원들이 많다.
두상 모델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미술학원들이 많다.화면 캡쳐

움직이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꿈의 알바'를 찾은 곳은 바로 아르바이트 정보 사이트였다. 마침 여름방학을 맞아 각 아르바이트 정보 사이트에서는 '여름알바 채용관'이라는 카테고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여름방학을 위한 카테고리였기 때문에 장기 알바보다는 단기 알바 정보가 많았다. '두상 모델'도 바로 그 중 하나였다. 호기심이 생겨 모집 공고를 클릭했다. 미술학원 두상 모델, 평생 미술학원 근처도 가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어떤 일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두상 모델'은 입시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의 실기평가를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역할이다. 조소학원의 경우 모델들은 4시간 동안 학생들 앞에서 정면을 응시한 채 앉아 있어야 하며, 학생들은 모델의 얼굴을 조소 작품으로 완성해야 한다.

5000원이라는 시급은 나쁘지 않았다. 현재 (2012년 8월 기준) 국가가 지정한 최저임금은 시간 당 4580원으로, 상당수 업체에서는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에 맞춰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근무 기간이 늘어날수록 시급은 높아지지만, 최저임금에서 몇백 원 정도 올려주는 것이 전부다. 즉, 커피전문점이나 편의점에서 최소 3개월 이상 근무를 해야 시간당 5000원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두상 알바의 시급이 '나쁘지 않았다'라고 평가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모델의 조건은 간단하다. 시간 약속을 반드시 지킬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모델이 약속 당일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모델 지원자들이 약속 당일 아무 말도 없이 펑크를 내기도 한다고 한다.


지원 방법 역시 간단하다. 가능한 날짜와 연락처, 그리고 정면 사진 한 장을 이메일로 보내면 된다. 지원 방법은 간단하지만 의외로 '두상 모델' 되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세 곳의 미술학원에 이메일을 통해 지원했지만 며칠이 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지원자가 많아 내 차례가 늦게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내 얼굴이 두상 모델로서 적합하지 못했던 것인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일 당장 나오실 수 있나요?"


마침내 지난 7월 29일 지원서를 낸 지 7일만에야 홍대에 있는 한 조소전문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학원 측에서는 다음 날인 7월 30일에 학원으로 와달라고 했다. 머리를 묶고, 화장을 짙게 해서는 안 되며 되도록 목이 드러날 수 있도록 라운드티를 입어달라는 주문도 했다. 일하는 시간은 오후 한 시부터 다섯 시까지 총 4시간이었다.

두상 모델을 하기로 했던 30일, 학원에 도착하니 나와 같은 '두상 모델'이 3명이나 더 있었다. 7~10명 정도의 학생 당 모델 한 명이 배정돼야 하기 때문에, 40명 정도의 학생 수에 맞춰 여러 명의 모델이 필요했던 것이다.

찰흙을 준비하던 학생들로 부산했던 교실이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조용해졌다. 교실 안은 이제 학생들이 찰흙을 두들기는 소리뿐이었다. 학생들은 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조소작품을 완성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이 수업이 1분 1초를 다투는 싸움이었다.

내가 지정된 의자에 앉자마자 학생들이 나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원을 만들었다. 나는 그 원의 중심점이 되었다. 10명의 학생들이 사방에서 나를 뚫어지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조소 용구를 이용해 내 얼굴의 비율과 길이를 재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주목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런 시선도 익숙해졌다.

얼굴을 뚫어져라 관찰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내 눈을 어디다 두어야할지 몰라 민망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은 사람을 대하는 눈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이미 나를 작품을 위한 '모델'로 대하고 있었다.

나를 관찰한 학생들은 두상 심봉대에 철썩하며 찰흙을 붙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얼굴형과, 두개골의 형태 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덩어리에 불과했던 찰흙은 내가 두 바퀴를 돌고 나니 두상의 윤곽을 갖추기 시작했다.

목은 뻐근해지고, 어깨는 천근만근... "자세 유지해주세요"

 4시간 동안 두상 알바를 한 뒤 받은 2만 원.
4시간 동안 두상 알바를 한 뒤 받은 2만 원.조윤희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이 두상 모델의 역할은 아니었다. 5분마다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시계방향으로 90°씩 위치를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모델의 얼굴 뿐 아니라 뒤통수, 목, 어깨까지 관찰하기 때문에 방향을 일정하게 바꿔주는 것이 중요하다. 모델이 앉는 의자는 360°로 회전이 가능하다. 알림종이 치면 LTE와 같은 속도로 방향을 바꿔야 했다. 제 때 돌지 않으면 학생들의 날카로운 지적이 돌아오기도 했다. 수업 초반엔 종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1교시 40분이 끝나고 10분의 짧은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곧 2교시가 시작되었다. 한 시간이 지나니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맞춰 침을 흘리듯, 나 역시 벨 소리에 맞춰 무의식적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방향을 바꾸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긴장이 풀리다보니 이제 몸이 슬슬 반응하기 시작했다. 허리를 세우고 정면만 보고 있자니 목이 뻣뻣해지고 어깨가 굳어가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참을 만했다.

학생들은 기본적인 두상의 모양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광대뼈의 높이나 구강 구조 등 안면구조를 분석하고 그것을 흙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많이 나온 부분은 흙으로 덧대고, 너무 높거나 크게 표현된 것은 칼로 깎아내기도 했다. 진도가 빠른 학생들은 귀를 만들고, 머리를 붙이기도 했다.

3교시가 시작되자 고비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정면을 바라보니, 이제 온몸의 근육들이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목은 뻐근해져서 화석처럼 굳어질 것 같았고, 어깨는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져 당장이라도 떼어내고 싶었다. 정면을 응시하라는 말에 한 곳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더니 눈도 사시가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도 많이 기울었고, 어깨도 한 쪽이 내려갔어요. 자세 유지해주세요."

장시간 동안 앉아 있어 몸의 형태가 흐트러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는지 강사가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아봤지만 여전히 몸의 균형은 무너진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있기엔 한계가 온 것 같았다. 가벼운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네 시간 내내 끊임없이 나를 관찰하는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까 계속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힘들어졌지만, 학생들이 내 얼굴을 작품으로 구현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니 내 고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내 얼굴을 가진 10개의 조소 작품이 학생들의 손에서 완성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실전에 대비하기 위해 4시간 내내 서서 쉬지도 않고 작업만 했다. 작업이 끝나자 체력이 고갈되어 바닥에 널브러지는 학생도 있었다. 가만히 앉아있는 나도 힘들었지만, 작업 내내 서 있어야 하는 학생들에게도 4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이날 내가 4시간 동안 벌어들인 돈은 2만 원. 봉투에 든 2만 원을 확인하니 온 몸의 긴장이 풀려 기운이 쭉 빠졌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돈이 제 발로 들어온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쉽지만은 않았다. 사실 두상 아르바이트를 찾게 된 계기는 돈을 쉽게 벌고자 했던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폭염 속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는 것처럼 '두상 모델'의 노동 강도가 높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 일을 통해 느꼈던 점은 '세상에서 가장' 쉬워 보이는 일이었는데도 막상 해보니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동안 학원 알바, 과외 등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왔지만, 돈을 버는 데 '쉬운 일'은 없다는 말을 그 어떤 알바보다도 이 일을 통해 절실히 느꼈다. '돈 벌기 쉬운 알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돈 버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더욱 절실히 와 닿았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노력과 고통이 따른다. 일의 강도에 따라 물리적인 차이는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돈 버는 일 중에 쉬운 게 하나도 없다. 두상 모델로 일했던 그 날 이후 나는 세상의 모든 직업을 존중하게 되었다. 20년 넘은 아버지의 직업도, 내 나이만큼 가정주부로 일해 온 어머니의 노동도 모두 소중하고 감사하다. 4시간 동안 번 나의 임금은 지금 적금통장에 들어가 있다. 많은 깨달음을 준 돈이었기에 커피값으로 허무하게 날리지 않기 위한 내 나름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조윤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조윤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상 모델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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