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상 모델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미술학원들이 많다.
화면 캡쳐
움직이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꿈의 알바'를 찾은 곳은 바로 아르바이트 정보 사이트였다. 마침 여름방학을 맞아 각 아르바이트 정보 사이트에서는 '여름알바 채용관'이라는 카테고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여름방학을 위한 카테고리였기 때문에 장기 알바보다는 단기 알바 정보가 많았다. '두상 모델'도 바로 그 중 하나였다. 호기심이 생겨 모집 공고를 클릭했다. 미술학원 두상 모델, 평생 미술학원 근처도 가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어떤 일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두상 모델'은 입시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의 실기평가를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역할이다. 조소학원의 경우 모델들은 4시간 동안 학생들 앞에서 정면을 응시한 채 앉아 있어야 하며, 학생들은 모델의 얼굴을 조소 작품으로 완성해야 한다.
5000원이라는 시급은 나쁘지 않았다. 현재 (2012년 8월 기준) 국가가 지정한 최저임금은 시간 당 4580원으로, 상당수 업체에서는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에 맞춰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근무 기간이 늘어날수록 시급은 높아지지만, 최저임금에서 몇백 원 정도 올려주는 것이 전부다. 즉, 커피전문점이나 편의점에서 최소 3개월 이상 근무를 해야 시간당 5000원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두상 알바의 시급이 '나쁘지 않았다'라고 평가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모델의 조건은 간단하다. 시간 약속을 반드시 지킬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모델이 약속 당일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모델 지원자들이 약속 당일 아무 말도 없이 펑크를 내기도 한다고 한다.
지원 방법 역시 간단하다. 가능한 날짜와 연락처, 그리고 정면 사진 한 장을 이메일로 보내면 된다. 지원 방법은 간단하지만 의외로 '두상 모델' 되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세 곳의 미술학원에 이메일을 통해 지원했지만 며칠이 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지원자가 많아 내 차례가 늦게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내 얼굴이 두상 모델로서 적합하지 못했던 것인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일 당장 나오실 수 있나요?"
마침내 지난 7월 29일 지원서를 낸 지 7일만에야 홍대에 있는 한 조소전문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학원 측에서는 다음 날인 7월 30일에 학원으로 와달라고 했다. 머리를 묶고, 화장을 짙게 해서는 안 되며 되도록 목이 드러날 수 있도록 라운드티를 입어달라는 주문도 했다. 일하는 시간은 오후 한 시부터 다섯 시까지 총 4시간이었다.
두상 모델을 하기로 했던 30일, 학원에 도착하니 나와 같은 '두상 모델'이 3명이나 더 있었다. 7~10명 정도의 학생 당 모델 한 명이 배정돼야 하기 때문에, 40명 정도의 학생 수에 맞춰 여러 명의 모델이 필요했던 것이다.
찰흙을 준비하던 학생들로 부산했던 교실이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조용해졌다. 교실 안은 이제 학생들이 찰흙을 두들기는 소리뿐이었다. 학생들은 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조소작품을 완성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이 수업이 1분 1초를 다투는 싸움이었다.
내가 지정된 의자에 앉자마자 학생들이 나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원을 만들었다. 나는 그 원의 중심점이 되었다. 10명의 학생들이 사방에서 나를 뚫어지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조소 용구를 이용해 내 얼굴의 비율과 길이를 재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주목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런 시선도 익숙해졌다.
얼굴을 뚫어져라 관찰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내 눈을 어디다 두어야할지 몰라 민망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은 사람을 대하는 눈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이미 나를 작품을 위한 '모델'로 대하고 있었다.
나를 관찰한 학생들은 두상 심봉대에 철썩하며 찰흙을 붙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얼굴형과, 두개골의 형태 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덩어리에 불과했던 찰흙은 내가 두 바퀴를 돌고 나니 두상의 윤곽을 갖추기 시작했다.
목은 뻐근해지고, 어깨는 천근만근... "자세 유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