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비정규직은 왜 결혼 생각을 접었나

[세 비정규직 이야기] 3000명 정규직화를 바라보는 시선

등록 2012.08.31 09:28수정 2012.12.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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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울산공장에서 현대차노조의 2012년 임단협 출정식이 있던 6월 1일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회사 본관을 쳐다보고 있다 ⓒ 변창기


"정규직인 아버지는 야간 노동 때문에 혹사당하고, 비정규직 아들은 자기 처지를 비관해서 절망한다."

지역 노동운동가들이 현대차 노조 파업이나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인용하는 말이다. 현재 울산이 처한 노동 환경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 생산라인은 왼쪽에는 정규직이, 오른쪽에는 비정규직이 일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른쪽, 왼쪽 모두 할 말이 많다. 수십 년간의 심야노동으로 몸이 망가졌다고 고통을 호소하며 주간 2교대제를 요구하는 정규직, 이에 반해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과 처우에 큰 차이가 나서 비정규직.

하지만 서민, 노동자를 위하겠다며 당선한 지자체장이나 지역 국회의원들은 노동자들의 호소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비정규직 관련 현대차 사태가 장기화되는 요인 중 하나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치권을 믿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사회적 합의로 마련된 법적·제도적 장치가 한낱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더 억울하다고 했다.

"가족 강요로 노조 탈퇴... 정규직은 조합원 몫"

울산이 고향인 김인수(34, 가명)씨. 그는 2002년 군에서 제대한 후 현대차 하청업체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아버지가 지인을 통해 업체를 소개했다. 그는 정규직과 함께 1~2년 일을 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정규직에 비해 총임금이 절반도 되지 않아 화가 났다. 2004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으로 비정규직노조가 조합원 배가운동을 할 때 그는 비정규직노조에 가입했다.


하지만 그는 2010년 말 노조를 탈퇴했다. 당시 노조는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5일간 공장점거 농성을 벌였고, 이때 업체 사장이 그의 아버지를 찾아와 아들의 노조 탈퇴를 강요하다시피 했다.

아버지 김상준(58, 가명)씨는 "노조에 그대로 뒀다가는 아들이 잡혀가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들 김씨는 "그때 아버지와 심하게 다퉜다"며 "조합원으로 있어야만 파업 후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아버지를 설득했지만 아버지 생각은 그 반대였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비정규직노조가 벌이고 있는 파업을 유심히 보고 있지만 동참은 않고 있다. 그는 "나도 '비정규직은 억울하다'고 소리 지르고 싶지만 이제 그럴 용기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나도 비정규직이 불공평하고, 근태가 좋으면 회사가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막강한 대기업하고 싸워봐야 상처만 남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아들 김씨는 "그동안 고생한 노조 간부들이나 지금도 밤낮으로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조합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혹시 대법원 판결에 따라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그것은 노조 활동을 많이 한 조합원들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회사가 3000명을 정규직으로 한다는데, 그건 정년퇴직하는 정규직 자리를 메우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노동부, 대법원 모두 불법 파견이라고 해도 이뤄지는 게 없다. 우리나라의 법적장치가 너무 허술한 것 같다"고 말했다.

34세인 김씨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존심이 무척 강한 아들이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결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며 "울산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가 너무 나고, 주변에서 바라보는 눈이 있으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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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한 노동자가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권우성


지난 2006년 부산에서 일자리를 찾아 울산에 온 최성환(50, 가명)씨. 현대차 울산공장 정규직 노동자인 고향 친구가 여러 업체 섭외 끝에 한 하청업체에 일자리를 알선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부산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친구가 급히 연락이 와서 울산에 내려왔는데 바로 취업이 되더라. 비정규직이지만 6년간 일하면서 아이들 공부를 시켰다. 지금 이 마당에 정규직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비정규직노조가 벌이고 있는 파업과 집회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2016년까지 3000명을 정규직으로 해 준다고 하더라. 열심히 일하다 보면 혹시 회사가 정규직을 시켜줄지 누가 아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출퇴근 할 때 정규직이 번듯한 명찰을 달고 다니는데 나는 업체 명찰을 숨겨가며 죄 지은 것 같이 공장을 드나드니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고 말했다. 그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대학 4년생인 큰 딸(23)이 남자를 사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음에 사돈 될 사람과 인사를 하면 아버지가 비정규직이라는 것에 딸이 굽히고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당한 권리 찾자는데 왜 겁을 먹나?"

지난 2002년 현대차 울산공장 하청업체에 입사한 정일균(34, 가명)씨. 그는 다른 도시에서 지인의 소개로 울산에 일자리를 찾아왔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데도 총액 대비 임금 약 60%만 받는데 점점 억울한 심정이 들었다. 점점 일을 할수록 호봉 등으로 인해 정규직과 임금 격차는 더 커졌다. 무엇보다 참기 힘든 건 차별 대우였다. 한창 혈기왕성한 20대 중반에 현대차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자아상실, 미래에 대한 불안, 과연 오래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2004년 노동부의 현대차 하청노동자 불편파견 판정이 있고 난 후 비정규직 노조가 집회와 농성을 이어갔다. 그는 2006년 비정규직노조에 가입했다. 그는 현재 노조의 지침에 따라 부분파업, 집회 참여 등에 빠짐이 없이 참여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이 낮은데 대해 정씨는 "물론 하청업체 소장들의 힘에 눌려 주눅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노조에 가입하면 불이익 받을 걱정부터 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겁나는 그 순간만 참고 미래를 위해 생각을 집중하면 노조에 가입 못할 이유가 없다"며 "조합원은 파업을 하는데, 그 반면에 파업을 무색하게 만드는 비정규직을 보면 어이가 없다"고 분개했다.

그는 "노동부와 대법원도 우리를 정규직으로 하라고 판결했는데 노조에 가입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나"며 "우리나라 헌법에도 나와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또한 최근 현대차가 내놓은 3000명 정규직화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라며 "회사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 꼼수를 부린다는 건 어린아이도 다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법원 판결과 파견법대로라면 지금 일하고 있는 전체 하청노동자가 모두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며 "현대차는 자기들 입맛대로, 말 안 듣는 노조원은 빼고 꼭두각시만 골라서 정규직 퇴직자 자리에 대신 넣겠다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씨는 정치권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난리인데도 시민들을 챙겨야 하는 울산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지역 주민인 노동자들보다 회사 입장만 듣는 지자체장을 보면 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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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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