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0원짜리 점심, 이렇게 바뀌었어요

[밥상이 바꾼 세상 ①] 울산 북구의 도전으로 웃는 시민들

등록 2012.10.18 09:50수정 2012.11.1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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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화두입니다. 그렇다면 2010년 지방선거를 달궜던 무상급식 의제는 어떻게 됐을까요? '좌빨 정책'이라 공격받던 친환경 무상급식은 학교와 지역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요? <오마이뉴스>는 무상급식으로 달라진 사회 풍경을 독자 여러분들에게 전합니다. 작은 밥상 하나가 바꿔놓은 세상을 보면서 더 나은 사회를 꿈꿨으면 합니다. [편집자말]
 11일 울산 북구 약수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점심을 먹다 브이자를 그리고 있다
11일 울산 북구 약수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점심을 먹다 브이자를 그리고 있다박석철

"밥맛 어때요?"
"좋아요~!"

기자가 묻자 아이들이 합창하듯 말했다. 지난 11일 낮 12시 10분, 울산 북구 약수초등학교 교내 식당에서 급식을 먹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날 메뉴로는 발아현미밥에 쇠고기미역국, 삼치 소스구이, 해파리무침, 배추김치가 나왔다. 쌀과 반찬 등 식재료 모두 무농약 친환경으로 생산됐다. 당연히 저 멀리 외국에서 온 식재료가 아니다. 국내, 그것도 인근 북구 지역 농민들이 농사 지어 배급한 식재료다. 이웃마을 아저씨가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 학생들이 먹는 거다.

울산 북구청은 지난 2010년부터 친환경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많이 환영하는 정책이다. 지역 농가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학교에 직접 공급해 유통 중간 마진을 없앴다. 지역 주민 만족, 아이들 건강, 농민 소득 증가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셈이다.

친환경 무상급식 학부모들이 더 좋아해

북구의 외곽에 있는 약수초교는 한 학년에 한 학급씩, 전체 학생이 130명 남짓이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한 가족처럼 더 정겹다. 4학년 이숭혁 학생은 "점심시간이 신난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매일 먹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들 급식지도를 하고 있던 이남희 영양사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좋은 재료로만 조리를 하니 안심이 된다"며 "무엇보다 학부모들이 좋아한다. 다음주에는 북구급식지원센터에서 나와 학부모들에게 먹거리 교육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함께 급식 지도를 하고 있던 6학년 담임 정종진 교사는 "사실 아이들은 친환경 급식 개념을 몰라 처음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며 "하지만 학부모 사이에서 친환경 급식이 자녀 건강에 좋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아이들도 덩달아 즐거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지역 일선 초등학교에서 한끼당 급식비는 희망품목인 우유를 제외하면 평균 2540원이다. 약수초교의 경우 농어촌 지역 지원금이 있어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기 전 한끼당 1420원을 학생들에게 받았다. 또한 학교의 급식 재료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식자재 업체에게 공급받았다. 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격에 맞춰 식자재를 구입해야 했다.


울산 북구청 친환경 무상급식은 윤종오 구청장이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당선한 뒤 그해 하반기부터 시작됐다. 그는 당선 뒤 첫 사업으로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했다. 학생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0원'이 됐고, 급식의 질은 높아졌다.

북구는 올해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으로 17억8000만 원을 책정했다. 이중 친환경 급식비는 8억 원, 나머지는 무상급식 지원이다. 울산시에서는 2억7000만 원을 지원한다.

사실 북구는 울산 5개 구·군 중 재정 상태가 두 번째로 열악하다. 예산 부족으로 지역 20개 초등학교 6학년에게만 무상급식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 급식비로 1~6학년 전체 1만3602명에게 한끼당 410원을 지원한다. 이날 방문한 약수초교는 친환경 무상급식 시범학교로 지정돼 전체 학생들에게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울산북구급식지원센터 김형근 센터장은 "울산 북구의 친환경 무상급식은 행정이 직접 나서 시장이 지배하던 학교 급식을 공공개념으로 바꾼 사례"라며 "울산은 부자도시라지만 시와 교육청의 지원이 적어 친환경 무상급식을 전 학년으로 확대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울산 북구 중산동 농가. 이곳에서는 지역 학생들에게 먹일 친환경 무상급식 식자재를 주문 받아 생산한다
울산 북구 중산동 농가. 이곳에서는 지역 학생들에게 먹일 친환경 무상급식 식자재를 주문 받아 생산한다박석철

지자체 예산 사정으로 북구 모든 학생에게 적용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전체에 지원되는 친환경 급식만큼은 좋은 사례로 꼽힌다. 우선 학교 급식을 둘러싼 비리 등을 근절했고, 지역 농가 소득에 보탬을 줬으며, 행정이 직접 학교급식을 공공개념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북구의 20개 초등학교 영양사들은 매달 한자리에 모여 지역 농가의 생산량과 품목을 파악한 후 학교에서 소비되는 식재료 양을 산정, 이를 북구급식지원센터에 통보한다. 그러면 급식지원센터는 이를 북구 농수산과에 있는 작목반과 협의해 지역 농가에 생산을 의뢰하고, 주문을 받은 지역 농가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한마디로 맞춤형 생산과 소비다. 현재 북구 전역에서 31개 농가가 친환경 급식 식재료 재배에 참여하고 있다.

김형근 센터장은 "그동안 지역 농가들은 생산한 농산물을 학교 급식에 넣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공공개념이어야 할 학교급식이 그동안 시장논리에 따라 대기업 급식업체에 좌지우지됐던 탓"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통에 따른 중간 이윤이 발생하지 않기에 농가의 수입이 늘었다"며 "학교급식은 가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농가에서 큰 수입을 올릴 수는 없지만, 농민들이 생산자로서 공적 활동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친환경 무상급식,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 불러와

북구의 사례는 재정이 열악해도 예산 배정에서 우선 순위를 정해 실천하면 지역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북구는 농수산과 안에 친환경 무상급식지원계와 급식지원센터를 부서로 새로 편성했다. 행정지원은 급식지원계가, 식자재 공급과 농약 검사 등 실무적인 일은 지원센터가 맡고 있다. 급식지원계는 일선 학교와 지역의 여론을 수렴해 행정에 반영하고, 지원센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식자재에 대한 농약 잔류 검사 등을 한다.

지역 주민의 만족도가 높으니 공무원들도 친환경 무상급식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울산 북구청 친환경무상급식계 변지현 주무관은 "우리 지역 사례를 접하고 전국에서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지역 학부모들이 좋아하실 때 무척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도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인데, 내 업무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우수 농산물을 아이들에게 먹이는 일이어서 기분이 매우 좋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가장 작은 단위의 지자체인 북구는 고군분투에도 울산의 친환경 무상급식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울산은 무상급식 혜택을 받는 초중고 학생 비율이 9.6%로 전국 꼴찌다. 무상급식 비율이 가장 높은 충북 77.9%는 물론이고, 전국 평균 46%에도 크게 밑돈다.

울산은 부자도시다. 통계청이 밝힌 2010년 전국의 지역소득 통계를 보면 울산시는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지역총소득, 개인소득이 모두 독보적인 전국 1위다. 그런데 왜 무상급식은 꼴등일까? 박맹우 울산시장과 김복만 울산교육감의 인식 탓이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지난 2011년 9월 16일 열린 울산시의회 임시회 개회식에서 "급식비를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소위 '부자 무상급식'을 할만큼 예산이 풍족하지 않다"며 "부자 무상급식을 할 예산이 있다면 그 예산으로 취약계층을 위한 교육지원을 더 강화한다든지, 기타 화급한 복지를 더 향상시켜 나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며 선별적 복지의 뜻을 강조했다. 

울산시 전체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면?

이런 박 시장의 '철학'에 따라 울산시는 올해도 무상급식 개념의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다. 5개 구·군에 내려주는 친환경급식비 15억 원, 저소득층 급식지원비 18억4000만 원만 책정했을 뿐이다. 울산시의 한 해 예산은 약 2조4000억 원이다.

울산 북구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 김성렬(55, 가명)씨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하며 웃었다.

"처음 친환경 급식재료를 재배해 달라는 북구의 제의를 받았을 때 긴가민가 했다. 학교에 급식 식재료를 공급하니 큰 벌이는 아니어도 중간 유통업자에게 식재료를 팔 때보다 수입이 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역의 학생들이 우리가 재배한 식품을 먹으니 자부심을 갖고 친환경에 더 신경을 쓴다."

만약 울산시와 교육청이 생각을 바꿔 북구처럼 친환경 무상급식에 앞장서면 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울산지역 학생, 학부모, 농민, 공무원 등 모두가 좋아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박석철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울산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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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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