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구 중산동 농가. 이곳에서는 지역 학생들에게 먹일 친환경 무상급식 식자재를 주문 받아 생산한다
박석철
지자체 예산 사정으로 북구 모든 학생에게 적용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전체에 지원되는 친환경 급식만큼은 좋은 사례로 꼽힌다. 우선 학교 급식을 둘러싼 비리 등을 근절했고, 지역 농가 소득에 보탬을 줬으며, 행정이 직접 학교급식을 공공개념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북구의 20개 초등학교 영양사들은 매달 한자리에 모여 지역 농가의 생산량과 품목을 파악한 후 학교에서 소비되는 식재료 양을 산정, 이를 북구급식지원센터에 통보한다. 그러면 급식지원센터는 이를 북구 농수산과에 있는 작목반과 협의해 지역 농가에 생산을 의뢰하고, 주문을 받은 지역 농가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한마디로 맞춤형 생산과 소비다. 현재 북구 전역에서 31개 농가가 친환경 급식 식재료 재배에 참여하고 있다.
김형근 센터장은 "그동안 지역 농가들은 생산한 농산물을 학교 급식에 넣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공공개념이어야 할 학교급식이 그동안 시장논리에 따라 대기업 급식업체에 좌지우지됐던 탓"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통에 따른 중간 이윤이 발생하지 않기에 농가의 수입이 늘었다"며 "학교급식은 가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농가에서 큰 수입을 올릴 수는 없지만, 농민들이 생산자로서 공적 활동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친환경 무상급식,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 불러와북구의 사례는 재정이 열악해도 예산 배정에서 우선 순위를 정해 실천하면 지역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북구는 농수산과 안에 친환경 무상급식지원계와 급식지원센터를 부서로 새로 편성했다. 행정지원은 급식지원계가, 식자재 공급과 농약 검사 등 실무적인 일은 지원센터가 맡고 있다. 급식지원계는 일선 학교와 지역의 여론을 수렴해 행정에 반영하고, 지원센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식자재에 대한 농약 잔류 검사 등을 한다.
지역 주민의 만족도가 높으니 공무원들도 친환경 무상급식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울산 북구청 친환경무상급식계 변지현 주무관은 "우리 지역 사례를 접하고 전국에서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지역 학부모들이 좋아하실 때 무척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도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인데, 내 업무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우수 농산물을 아이들에게 먹이는 일이어서 기분이 매우 좋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가장 작은 단위의 지자체인 북구는 고군분투에도 울산의 친환경 무상급식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울산은 무상급식 혜택을 받는 초중고 학생 비율이 9.6%로 전국 꼴찌다. 무상급식 비율이 가장 높은 충북 77.9%는 물론이고, 전국 평균 46%에도 크게 밑돈다.
울산은 부자도시다. 통계청이 밝힌 2010년 전국의 지역소득 통계를 보면 울산시는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지역총소득, 개인소득이 모두 독보적인 전국 1위다. 그런데 왜 무상급식은 꼴등일까? 박맹우 울산시장과 김복만 울산교육감의 인식 탓이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지난 2011년 9월 16일 열린 울산시의회 임시회 개회식에서 "급식비를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소위 '부자 무상급식'을 할만큼 예산이 풍족하지 않다"며 "부자 무상급식을 할 예산이 있다면 그 예산으로 취약계층을 위한 교육지원을 더 강화한다든지, 기타 화급한 복지를 더 향상시켜 나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며 선별적 복지의 뜻을 강조했다.
울산시 전체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면?이런 박 시장의 '철학'에 따라 울산시는 올해도 무상급식 개념의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다. 5개 구·군에 내려주는 친환경급식비 15억 원, 저소득층 급식지원비 18억4000만 원만 책정했을 뿐이다. 울산시의 한 해 예산은 약 2조4000억 원이다.
울산 북구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 김성렬(55, 가명)씨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하며 웃었다.
"처음 친환경 급식재료를 재배해 달라는 북구의 제의를 받았을 때 긴가민가 했다. 학교에 급식 식재료를 공급하니 큰 벌이는 아니어도 중간 유통업자에게 식재료를 팔 때보다 수입이 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역의 학생들이 우리가 재배한 식품을 먹으니 자부심을 갖고 친환경에 더 신경을 쓴다."만약 울산시와 교육청이 생각을 바꿔 북구처럼 친환경 무상급식에 앞장서면 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울산지역 학생, 학부모, 농민, 공무원 등 모두가 좋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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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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