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엔 아무 것도 기대할 게 없다"

[오마이공약-대선쟁점인터뷰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등록 2012.11.26 15:18수정 2012.11.26 15:18
0
원고료로 응원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 최지용


 "현재로서는 노동 분야의 변화를 기대하려면 야권 후보가 집권해야 한다. 박근혜 후보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냉정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사실상 박 후보의 노동정책에 낙제점을 매겼다. 객관적 평가를 꺼내봤지만 곧바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후안무치한 이명박 정부와 다르지 않다"는 독설이 날아왔다. "딱히 비교해서 평가할 만한 정책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난 1986년 '민주노조 사랑방'으로 시작해 1995년 출범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진보적 성향의 손꼽히는 노동 관련 싱크탱크다. 김 소장은 지난 2006년부터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 소장은 박 후보의 노동정책에 대해 "제목만 있는 정도"라며 "그나마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공공부문에서 2년 이상 상시 근무의 경우 정규직화 하겠다는 것인데, 다른 후보들도 다 이야기 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과 관련해서는 내세우는 게 없다고 봐야 한다, 변하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박 후보는 공공부분의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화와 함께 비정규직 차별시 '징벌적 금전보상제도' 도입, 차별시정제도 사내하도급까지 확대 적용 등의 정책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민간부분의 비정규직 대책은 뚜렷한 게 없고, 논란이 되고 있는 정리해고나 노사관계에 관한 정책은 거의 전무한 상태다. 법률과 제도 개선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이야기 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산별교섭-초기업교섭을 강조한 안철수 후보에 비해 정책 범위나 구체성이 떨어진다.

"법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적극적 해석이 중요"

a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김 소장에게 가장 후한 평가를 받은 것은 문재인 후보다. 그는 문 후보 정책에 대해 "그동안 진보진영, 노동진영에서 요구한 것을 거의 다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며 "집권 후 현재 제시한 플랜대로 집행할 수 있다면 노동자들의 상황이 상당히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비정규직 사용기간 및 사용사유 조정 등의 강력한 제도 개선을 예고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실시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별 정책 호감도 투표에서도 문 후보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관련 기사: 비정규직, '차별억제'냐 '정규직화'냐 그것이 문제). 김 소장은 23일 후보직 사퇴의사를 밝힌 안 후보의 정책에는 "노동기본권이나, 초기업교섭 강화 등을 비롯해 구체적인 법 집행과 해석을 강조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정책 검증 인터뷰는 문재인 후보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문 후보는 특히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 현안에 '전국민 평등고용법' 제정 등 법제도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김 소장은 "법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며 "제도 개선과 더불어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의 투트랙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문 후보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법개정을 강조하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노동 문제는 법을 개정해 바꾸기 쉽지 않다. 차기 정권을 누가 잡든지 현재 국회는 여야가 팽팽하다. 이명박 정부도 법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현행법령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법을 개정하는 노력과 적극적인 해석을 하는 방식,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 문제 같은 것도 현재 있는 법으로도 개선이 가능하다. 권력을 잡고 나서 국회만 쳐다볼 게 아니라 행정부 권한으로 집행할 수 있는 것들은 진행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배울 게 있다. 이들도 법 개정이 어렵다보니 노동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법해석을 통해 밀어붙인 게 많다."

- 행정부의 적극적 법해석으로 달라질 수 있는 구체적 사례는 무엇인가?
"비정규직 문제 해법의 경우 사용사유제한으로 가면 좋다. 하지만 이것은 법을 개정해야 한다. 지금 세 후보가 모두 공공부문의 상시지속 업무의 정규직화를 말한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웬만한 경우는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 지난 4월 서울시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 방식이다. 2년 이상 일을 해야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지속적인 업무라면 정규직화 한다는 말이다.

박근혜 후보도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화를 말하는데, 청소와 경비 같은 업무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항상 해야 하는 일이다. 상시지속 업무가 정규직화의 기준이라면 이런 부분도 가능하다. 박 후보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민간부분은 행정권력으로 치고 들어가야 한다. 지금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하고 있는 현대차의 경우 법대로 하게 만들어야 한다. 민간부분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이 모두 필요하지만, 지금은 채찍을 들어야 할 때다."

"노동시간 단축, 노조 조직율도 정부가 나서야"

a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또 노동시간 단축은 문재인 후보가 주요하게 제시하는 노동정책 가운데 하나다. 후보 사퇴로 단일화를 이룬 안철수 후보 역시 핵심적인 정책으로 제시한 만큼 이후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더욱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측면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측면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한 정책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추진한 과제로 한국사회의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 40시간 노동이 시행됐지만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많은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김 소장은 "한국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빠른 속도로 이뤄져 왔다, 그럼에도 OECD 가운데 노동시간이 가장 많다"며 "그렇다고 우리가 주 35시간 근무로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법에는 주 40시간 근무에 주당 연장 근무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연장근무를 포함해 52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전체에 20~25% 가량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 초과하는 시간을 모아보니 약 70만 명의 일자리가 나오고 그것이 문재인 후보가 말하는 70만 일자리 창출 공약의 근거라는 게 김 소장의 해석이다.

김 소장은 "실제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면 설비도입이나 다른 부분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일자리 창출 효과는 상당부분 있을 것"이라며 "이것 또한 적극적으로 행정력을 동원한 법적용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노조 조직율이 10% 정도밖에 안 되는 것 또한 노동자 권익이 보호받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대해 문재인 후보는 별다른 정책을 내놓지 않았지만 단일화를 이룬 안철수 후보의 정책이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안 후보는 산별교섭-초기업교섭 확대를 통해 노동조합의 자체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소장은 "초기업교섭 활성화는 복수노조 제도의 교섭창구 단일화를 제거해야 하는 조건이 따른다"며 "산별교섭을 위해 노조를 모아놔도 교섭 대표권이 없으면 빠지게 된다. 일단 '교섭창구 단일화'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는 노동계가 핵심적으로 요구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김 소장은 이어 "그 다음은 사실 법 보다 정부 쪽에서 어떤 정책 분위기를 끌고 가느냐가 중요하다"며 "노동계는 사용자 단체의 구성 의무화를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산별노조의 교섭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지만 이것 역시 결사의 자유기 때문에 정부가 강제하기 어렵다, 결국 산별노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그걸 바탕으로 사용자 단체의 구성을 강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여기서 정부가 제도적 인프라를 깔아줘야 한다. 산업별 노사협의회나 노사정협의회 등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권 당선되면 여태까지 노동의 흐름 바뀔 것 기대한다"

a

지난달 17일부터 울산 북구 현대차 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정규직 전환 이행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아래)와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 유성호


사실 노동의 문제는 차기 정권의 방향만을 말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현재도 여러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나서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다리 위로, 철탑 위로 오르는 상황이다. 울산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로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이 송전탑에 오른 지 30일이 넘었고, 지난 20일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평택 공장 앞 송전탑에 오르기도 했다. 그밖에 유성기업, 대양운수재 등 전국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곳은 4곳이나 된다.

그럼에도 야권의 두 후보가 단일화 논란 속에 갇혀 있는 동안 이들의 이야기는 뉴스에서 사라졌고, 박근혜 후보는 일절 언급이 없는 상황이다. 대선 판에서 '노동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유선 소장은 "후보들이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쟁점화, 이슈화를 시켜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떠냐, 입장을 밝혀라'고 서로를 압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박근혜 후보만 '오케이' 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야권도 단일화 되고 나서는 또 표에 도움이 되는지를 고려할 것이다, 전향적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소장은 노동문제가 소외되는 현상과 관련해 세 후보의 상황을 진단하며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 주변화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외환위기 이후 확산된 노동시장유연화가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의 원인이라는 지적에 "대선 후보 모두 노동시장유연화가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 현안 문제 이외에도 경제민주화, 정치개혁, 복지국가 등 다른 의제에 비해 '노동'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대선 전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핵심현안으로 불거진 것과는 반대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사실상 몰락했다. 노동의제가 잘 보이지 않는 데는 그런 면이 반영된 것도 있다. 또 박 후보는 노동 관련한 현안이 문제가 되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생긴 공감대를 가지고 어느 정도 진일보한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노동의제의 확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 주변화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는 IMF 이후 15년 동안 이어진 노동시장유연화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후보들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지만 이를 평가하거나 반성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노동시장유연화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 정책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유연성보다 안정성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다. 문 후보는 일정 참여정부 시절 잘못한 것을 인정하기도 한다. 참여정부나 '국민의 정부'가 악의를 가지고 노동시장 유연화로 갔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시대적 담론 자체가 신자유주의 논리였고 글로벌 스탠다드였다. 이것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노동시장유연화는 더 이상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다. 다만 지금은 그 다음 어디로 갈 것인지, 어떻게 갈 것인지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모색기라고 할 수 있다. 노동시장유연화가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을 후보들도 인식은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김 소장은 인터뷰 말미에 다시 한 번 야권의 집권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로서 노동 부분의 변화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야권에서 집권해야 한다, 박근혜 후보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권이 당선된다면 이전까지 노동의 흐름을 반전시킬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집권하게 되면 공약으로 제시된 것들을 차질 없이 집행해야 한다." 그는 안철수 후보가 사퇴한 직후 <오마이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두 후보가 노동정책에 큰 차이는 없지만, 산별교섭 강화와 같은 정책은 문 후보 쪽에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 #노동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대통령, 또 틀렸다... 제발 공부 좀
  2. 2 한국에서 한 것처럼 했는데... 독일 초등교사가 보내온 편지
  3. 3 임성근 거짓말 드러나나, 사고 당일 녹음파일 나왔다
  4. 4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요양원 나온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한 일
  5. 5 채상병 재투표도 부결...해병예비역 "여당 너네가 보수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