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처럼 보이려다, 새 차가 바닷속으로...

[공모-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 자동차 TV 광고 흉내내다 수장될 뻔

등록 2013.03.28 15:01수정 2013.03.2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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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TV에서 방영되었던 인상적인 광고 하나, 파도가 찰랑거리는 어느 바닷가에서 멋진 배우 정우성이 차를 몰고 바퀴 자국을 남기며 해변을 질주한다. 10년도 더 됐지만 많은 사람 특히, 남자들에게 어떤 로망을 심어주는 광고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것도 어디 먼 외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찍었다니, 나도 차를 장만하면 저렇게 한 번 달려봐야지 생각했다. 나와 애마 사이에 있었던 잊을 못할 추억 아니, 잊기 힘든 사건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서해안의 멋진 해변들이 길게 이어진 안면도는 육지에서 다리가 연결되어 있어 찾아가기 좋지만, 예나 지금이나 대중교통편이 불편해서 주로 자가용을 몰고 가는 여행지다. 애마를 갖게 되면 맨 먼저 가고팠던 곳이기도 하다. 옆자리에 예쁜 여친(여자친구의 줄임말)까지 있다면 자동차 드라이브, 섬 여행과 함께 남자들 로망의 완성이 되겠다.


적금 붓듯 월급을 모아 마침내 장만한 순백의 애마, 순전히 사귀던 여친을 태우고 다니고 싶어서였다. 여친과의 백일 기념으로 떠난 곳이 안면도였고 그 섬엔 정우성이 광고를 통해 내게 로망을 심어준 해변이 있었다. 애마를 뽑고 처음 먼 곳으로 떠나는 그녀와의 여행, 그때의 설렘과 즐거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름마저 낭만적인 '바람아래 해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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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래 해변을 바람같이 달리고파 애마타고 찾아간 안면도 여행 ⓒ 김종성


편안한 이름을 간직한 섬이지만 육지와 가까워 차를 타고 연육교를 건너 갈 수 있는 섬 아닌 섬 안면도. 이 섬의 가장 큰 매력은 백사장, 삼봉, 밧개, 두여, 꽃지 등 열 개가 넘는 해변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는 것. 해변마다 저마다 느낌이 달라 하나씩 들러보는 재미도 좋아 드라이브 여행의 기분이 제대로 나는 섬이다. 맨발을 감싸는 부드럽고 풍성한 모래사장도 좋고, 바닷가에 둘러선 소나무 숲의 고즈넉한 산책길과 솔 향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할미, 할아비 바위와 어울린 노을과 일몰 풍경으로 유명한 꽃지 해변을 지나면 바닷가는 사라지고 좁은 국도가 나타난다. 이제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해변을 만나게 되는 길이다. 지금껏 바닷가에 난 도로를 따라 해변을 손쉽게 만난 것과 달리 해변 하나하나를 찾아가기 위해 전봇대가 일렬로 서 있는 마을길과 농로 사이를 구비 구비 달려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정말 이 길 끝에 해변이 있는 게 맞을까? 의구심이 드는 바닷가 가는 길. 요즘처럼 내비게이션이 없을 시절이라 지도와 지나가는 동네 주민에게 물어가면서 찾아갔다.

샛별, 운여, 장삼포에 이어 안면도의 남서쪽 끝에 '바람아래 해변'이 자리하고 있다. 오토바이나 차량이 모래사장 위로 달릴 수 있다는 바로 그 바닷가다. 이름마저 더없이 낭만적인 바닷가엔 작은 어선 두어 척만이 모여 있고, 가까이에 있는 민가는 대문이 열린 채 주민들은 바다로, 밭으로 일을 나갔는지 백구만이 반쯤 누워서 집을 지키고 있다. 한껏 한가롭고 고즈넉하기만한 바닷가 마을 풍경. 유명한 관광지 해변이 아니라서 여름휴가 때가 아니면 관광객들도 볼 수 없다. 안면도에서 연인과의 바닷가 여행지로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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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은 차로 달리는 게 아니라 맨발로 걷는 게 제일이다. ⓒ 김종성


여친에게 TV 광고 얘기를 해주며 코앞에 나타난 '바람아래 해변'을 향해 바람같이 달려갔다. 그녀는 반신반의 걱정스런 표정을 짓지만 곧 나를 멋지게 보겠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신나게 액셀을 밟았다. 기합소리인지 비명소리인지 모를 애마의 엔진소리가 크게 터져 나오며 차가 앞으로 질주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를 향해 차를 몰고 달려가는 기분은 정말 묘했다. 두려움과 짜릿함이 교차하고 정말 광고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

하지만 역시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난다고 했던가, 그쯤 했으면 그만 두고 나올 것을… 난생 처음 해보는 경험에 취해 멋모르고 모래사장 위를 신나게 달리다가 사단이 나고 말았다. 어느 순간 브레이크도 안 밟았는데 차가 스르르 멈추면서 앞 범퍼 부분이 밑으로 쑤욱 내려앉았다. 어디 부딪친 충격이 없어 별 생각 없이 몇 번 액셀을 꾸욱 밟았지만 엔진의 굉음소리만 요란할 뿐 애마는 계속 그 자리.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재빨리 밖으로 나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살짝 고개를 숙인 애마의 앞바퀴가 모래 속에 반쯤 박혀 있었다. 간접 경험도 못해본 처음 겪는 일이라 문제의 심각성도 깨닫지 못한 채, 뭐 이쯤이야 하는 표정을 지으며 당황하는 여친을 안심시키고 애마 구조에 들어갔다. 겉으로 보아선 바퀴가 들어간 모래를 파내면 곧 바닥이 드러날 테고 그러면 다시 시동을 켠 애마의 바퀴가 모래 바닥과의 마찰로 쉽게 빠져 나올 것 같았다.

모래에 빠진 자동차 앞바퀴... 바닷물은 점점 들어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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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린스피드사가 개발했다는 물속을 헤엄치는 차가 될 뻔한 내 애마. ⓒ 린스피드


그러나 얕아보였던 모래사장의 바닥이 그렇게 깊을 줄이야. 주변에서 주어온 나무 판때기로 모래를 파내면 파낼수록 애마는 더 깊이 빠져 들기만 했다. 여친이 먼저 생각해낸 것은 보험회사 긴급 출동 서비스. 그때 보험회사를 불렀음 간단히 해결될 것을 해변 레이싱에 실패한 나는 남자로서 뭔가 보여주고 싶은 어리석은 마음이 들었다. 애마의 액셀을 최대한 힘껏 밟으면 빠져 나올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한동안 헛바퀴만 돌렸고 바퀴가 더 깊이 빠지는 악수까지 두고 말았다.      

애마의 바퀴가 완전히 모래사장에 파묻히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한숨 놓고 견인차를 기다리며 여유를 부리는 가운데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이 애마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얘기를 나누며 문득 뒤를 돌아봤더니 글쎄 멀어 보였던 바닷물이 어느새 눈앞에까지 들어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달의 허락을 받고 썰물과 임무 교대한 밀물이 해변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없이 낭만적이었던 서해 바다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줄이야.

다급한 마음에 다시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해당 지역의 견인차 기사한테 전화가 갈거니 기다리라고만 한다. 여친 앞에서 말까지 더듬으며 재촉을 하자 견인차 기사한테 전화가 오긴 왔다. 살짝 느린 말투의 기사에게 사정 얘기를 했으나 지금 가고 있으니 이삼십 분만 기다리란다. 왜 그리 구석까지 갔냐는 투덜거림과 함께.

'이삼십 분!' 가까이에서 찰랑거리는 바닷물을 보면서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오고 괜찮을까, 어쩌나 애만 탔다. 이럴 때 남자라면 걱정스런 표정의 여친에게 "이러다 우리 9시 뉴스에 나오겠구나, 하하!" 뭐 이런 유머를 날려야 하는 건데, 그러기는커녕 머리속은 하얀 백지장이 되어 아무런 생각이 안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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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로운 운명의 여신 덕분에 행복한 추억으로 남게 된 안면도 여행. ⓒ 김종성


다행히 운명의 여신은 갓 나온 순백의 차를 아직 버리지 않으시려 했는지 내 애마는 바닷물에 수장되기 직전에 모래사장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우리를 구한 백마의 기사는 이삼십 분 걸린다는 견인 기사가 아닌 동네 주민 아저씨. 작은 화물차를 타고 마을을 지나가다가 모래사장에 빠진 내차를 본 것이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아저씨의 화물차에게 양손을 들어 열렬히 흔드는 모습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난파한 사람이 구조선을 향해 손짓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을 듯싶다.

삶의 희로애락을 먼 여행지에서 하루 만에 겪어 그런지 여친과는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었던 것 같다. 이후에도 그때의 '사건'을 떠올리며 안면도 바닷가를 계절마다 여행했다. 지나고 보니 해변은 차가 아니라 연인과 손잡고 맨발로 걷는 게 제일 좋았다.
덧붙이는 글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 응모의 글
#안면도 #바람아래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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