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에서 첫 데이트...이런 차 키를 잃어버렸다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 자동차 열쇠 잃고 사랑 찾은 이야기

등록 2013.04.09 21:00수정 2013.04.1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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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교통사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OECD국가 중 교통사고 사망율이 가장 높은 나라여서 그럴까? 그만큼 교통사고는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것들 중 하나인가 보다.


나 또한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을 생각해 보면 사고와 관련된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누구나 운전하면서 최소한 한번 이상은 가벼운 접촉사고라도 경험을 했을 테니 말이다.

첫 번째 응모글 '사고 난 차로 영동고속도로를 질주한 이유'를 쓰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이 과연 사고에 대한 경험밖에 없을까? 나는 스노우보드 타는 것을 좋아한다. 첫 번째 이야기도 스노우보드 타러 스키장에 가다가 발생한 사고 이야기였다. 지금 하려는 두 번째 이야기도 스키장에서 생긴 일이다.

내 인생 최고의 여자를 만나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회사 신입사원 면접시험 때다. 이미 입사지원 서류를 접수할 때부터 유심히 보아둔 터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당연히 면접에 합격하였고 나의 후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녀와 우연을 가장한 러브라인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일을 핑계로 그녀와 대화시간을 조금씩 늘려갔고 홍보 담당이었던 그녀와 팜플렛 제작을 빌미로 외근 업무를 자주 만들었다. 일을 핑계로 도움을 요청하고, 일 도와줘서 고맙다는 이유로 커피나 밥을 사면서 둘만의 시간을 많이 만들었다. 이런 적극적인 노력으로 나는 그녀의 마음을 약간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신입사원인 그녀에겐 사내커플이라는 부담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선임으로, 밖에서는 그냥 아는 오빠동생사이로, 아직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겨울이 왔다. 드디어 스노우보드의 계절이 온 것이다. 다행이 그녀도 스노우보드 타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생겼다. 12월 들어 나는 그녀와 스키장에 함께 가려고 몇 주일을 꼬셨다. 그녀의 허락을 얻고 회사 동료들 모르게 둘이서 스키장에 갈 계획을 세웠다. 복잡한 주말을 피해 평일에 가기로 하고 각자 휴가를 신청했다. 둘이 동시에 휴가를 내면 의심할 것 같아 나는 가족여행을 이유로, 그녀는 갑작스런 부모님의 건강을 이유로 시차를 두고 휴가신청을 했다. 물론 휴가는 몇주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하여 나는 가족여행을 이유로, 그녀는 갑작스런 부모님의 건강을 이유로.

우리는 서로 들뜬 마음으로 스키장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주말보다는 한산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많아 보였다. 하루 종일 넘어지고 구르고 웃고 떠들면서 그동안 좀 서먹했던 서로의 감정은 서서히 녹아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야간스키 시간이 끝나고 두 손 잡고 스키하우스를 나와 주차장으로 사이좋게 발 맞춰 걸어서 차 앞에 갈 때까지는 그랬다.

주인 잃은 자동차 키를 찾습니다

차문을 열고 장비를 실어야 하는데 바지주머니에 넣어 놨던 자동차 키가 잡히지 않았다. 불현듯 전해오는 불길한 예감. 순간 당황한 나는 잠시 생각했다. '어디다 뒀지?'
여자들은 눈치가 빠르다. 그녀가 묻는다.

"정 대리님, 아니 오빠 왜 그래요 ? 자동차 키가 없어요?"
"웅, 아냐, 잠시만"

나는 장비를 차 앞에 놓아두고 왔던 길을 되짚어 뛰어갔다. 그녀가 뒤에서 계속 부르지만 난 대답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길을 되짚어 갔지만 이미 날은 어두워진 지 오래됐고 사람들도 모두 야간스키를 마치고 나오는 시간이라 복잡하여 자동차 키를 찾을 수 없었다. 광활한 슬로프를 바라보고 있자니 더욱 막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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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마, 자동차키, 그리고 나의 사랑 그렇게 20여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동차 키를 찾아 헤맸다. 추위에 떨고 있을 그녀를 빨리 차에 태워서 따뜻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정경영


그렇게 20여 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동차 키를 찾아 헤맸다. 추위에 떨고 있을 그녀를 빨리 차에 태워서 따뜻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렸다. 그녀에게서 온 것이다. 이미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아~, 그녀는'
그제야 그녀가 주차장에 혼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내가 뭔가 큰 실수를 하나 더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급히 받았다.

"여보세요 ?" 

핸드폰 너머로 정적이 흐른다.

"춥지? 지금 갈게. 사실 자동차 키를 잃어버려서 찾느라고...."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그녀가 감정을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다.

"미안해. 아니 자동차 키가 없어져서 찾느라고....지금 가는 중이야. 잠시만 기다려"
"자동차 키가 추위에 혼자 떨고 있을 나보다 더 중요한 건가요? 그래서 자동차 키는 찾았어요?"
"아니.."
"......" 

전화가 끊어졌다.

일단 차로 뛰어갔다. 그녀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추운 주차장에서 혼자서 20여 분을 서 있었다. 그녀는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자동차 키를 잃어버린 것보다 자기 혼자 덩그러니 남겨 놓고 간 것에 대해 화가 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먼저 지켜주고 함께 있어주기를 바랐던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할 남자친구가 자동차 키 찾겠다고 혼자 사라졌으니 얼마나 기막힌 상황인가.

나는 나름대로 그녀를 위해 혼자 뛰어 다닌 것이다. 그녀를 걱정시키기 싫었고 빨리 차에 들어가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다. 같이 뛰어다니면서 찾으면 시간도 더 걸리고 그녀도 힘들 테니, 내 마음은 이랬다.

그녀를 위해 급한 마음에 한 행동이지만 결과적으로 미처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나의 불찰이었다. 미안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추운 주차장에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홀로 남겨진 그녀. 20분의 시간이 얼마나 외롭고 긴 시간이었을까?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에는 이미 큰 상처가 났고 그녀와 나 사이에는 겨울밤의 찬 기운만큼이나 차가운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

현실로 돌아와 일단 자동차 키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처음부터 생각을 가다듬어 여기저기 주머니와 자동차 키를 둘 만한 곳은 모조리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스노우보드를 타다 넘어지면서 주머니 속에서 빠져버린 것 같았다. 혹시 안내데스크에 맡겨진 자동차 키가 없나 확인도 해봤지만 없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오고 스키장 주차장에는 차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주차장 요원의 도움으로 우선 차문은 열었다. 그녀와 나는 일단 장비를 챙겨 넣고 조수석과 운전석에 나란히 앉았다. 차안은 추웠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구사일생(九死一生)

이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녀는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투덜거렸다. 이해한다. 나도 답답했다. 견인해서 서울까지 갈까?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외진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량만이 주차해 있었다. 누구한테 부탁해서 집에 있는 자동차 키를 가져오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동네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첫 번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주위가 굉장히 시끄러웠다. 어딘지 물어보니 경찰서란다. 교통사고가 나서 경찰서에 와 있단다. 내 사정은 이야기도 못하고 친구사정만 들어주고 전화를 끊었다. '잘 해결되길 빈다. 친구야~'

두 번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 친구도 주위가 광장이 시끄러웠다. 오늘 연말 회식이라 2차로 노래방에 왔단다. 별 도움이 안 되지만 답답해서 내 사정을 이야기 했다. 진심어린 위로만 받았다. '술 적당히 마셔라. 친구야~'

세 번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일단 집이란다. 다행이다. 나의 사정을 이야기 했다. 자동차 키를 가지고 와 준단다.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맙다. 친구야~'

불행은 곧 행복으로 전화위복(轉禍爲福)

그러는 동안 밤 10시 반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적어도 2시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녀도 나도 너무 추웠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안아 주었다.

얼었던 그녀의 마음을 진심으로 녹여주고 싶었다. 그녀의 화가 난 마음을 읽어 주고 나의 진심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녀를 미리 배려하지 못한 나의 불찰과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나누지 못한 진지한 이야기들. 서로에게 좋았던 감정들과 기억들.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서. 친구를 기다리는 2시간 남짓한 시간은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 둘에겐 행복을 가져다 준 최고의 시간이었다.

차 안은 그녀와 나의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랑의 온기로 점점 따뜻해져 갔다. 비록 나의 실수로 시작된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결국 나에겐 그녀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황금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내 인생에 동반자가 되어 지금 두 아이와 함께 내 옆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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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한 우리가족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나의 인생에 동반자가 되어 지금 두 아이와 함께 내 옆에 앉아있다. ⓒ 정경영


덧붙이는 글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 공모입니다
#스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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