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할머니가 바리스타로... "내 일자리, 내가 만들었다"

[전국기획-광주 광산구의 도전④] 28개 협동조합, 대안경제 일군다

등록 2013.05.16 09:27수정 2013.05.1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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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일상생활과 지방자치단체의 관계 밀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해진 주민의 이해와 요구를 능동적으로 실현해가는 지방자치단체의 혁신성공 사례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로 광주 광산구의 도전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많은 이들에게 아직 '협동조합'은 생소하다. 협동조합이라면 사람들은 대부분 농협·수협·신협을 떠올릴 것이다. 여기에 한살림·아이쿱(icoop) 같은 생협을 추가하는 이가 있다면 협동조합이라는 기업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12월부터 봇물이 터졌다. 연일 곳곳에서 새로운 협동조합들이 생겨나고 있다. 2013년 3월 말 현재 기획재정부 집계로 전국에 693개나 된다. 일차적으로는 '협동조합기본법' 발효에 따른 여파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뭇 다르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경제에 지친 사람들이 대안 경제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이후 전국적인 이목이 집중된 곳 중 광주광역시 광산구를 빼놓을 수 없다. 2013년 3월 말 현재 광주시의 협동조합은 100개, 그중 28개가 광산구의 협동조합들이다. 물론 여느 협동조합들과 마찬가지로 생긴지 5개월 미만의 걸음마 단계인 기업들이다.

광산구가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협동조합들이 좀 유별나기 때문이다.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이 곧바로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이어진다고 하니 궁금증도 생긴다. 일자리 유지·창출, 복지 확대, 공동체 만들기 같은 사회적 가치가 기업의 영업 행위에서 비롯될 수 있을까. 사회적인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전국 최초 '공무노동자' 협동조합 탄생

'클린광산' 협동조합은 유명세를 탔다. 광산구의 생활쓰레기를 수거하는 대행업체가 폐업 신고하자 그곳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들이 순식간에 실직자로 내몰릴 처지였다. 과거였다면 노사분쟁, 주민 쓰레기 민원 증가 같은 악순환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클린광산'은 전국 최초의 '공무노동자' 협동조합이다. 폐업으로 실직 위기에 놓여 있던 청소노동자들이 일자리 유지를 위해 설립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람들은 다른 해법을 찾았다. 청소노동자들이 협동조합 설립으로 가닥을 잡자 광산구가 이를 뒷받침했고, 일이 쉽게 풀렸다. 노동자들은 해고 없이 고용을 유지했다. 광산구는 '깨끗한 도시환경'이라는 공익을 공백 없이 이어갈 수 있었다. 주민들의 복리 증진이라는 '공무'를 수행하는 최초의 노동자 협동조합은 이렇게 탄생했다.


조용곤 '클린광산' 간사는 협동조합 설립 후 청소노동자들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조합원들이) 주인의식이 생겨 일에 대한 열정이 더 커졌다. 작업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게 됐고, 주민들이 제기하는 민원도 친절하면서도 능동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주민들에게도 좋고, 우리들도 신명나는 협동조합의 모범을 전국에 보여주고 싶다."

어르신들, 복지 수혜자에서 공급자로

광주시 협동조합 1호인 '더불어락'은 지금까지 복지 수혜자로만 여겨졌던 어르신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다. 광산구 운남권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이 그 주역이다. 일명 '취업취약계층'으로 불리던 어르신들이 북카페·팥죽가게·두부공장을 열고, 직접 일자리를 만들었다.

광주시 협동조합 1호인 '더불어락'은 어르신들이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고, 수익금 일부로 지역사회를 위해 나눔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나아가 이제는 오히려 지역사회에 나눔까지 실천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지역경로당·취약계층 아동들을 찾으며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어르신들이 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복지 생산자 내지는 공급자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북카페인 '더불어락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박미선(70)씨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지난 1월 카페 운영을 위한 월례회의에서 박미선씨는 "우리가 이곳 카페를 운영하는 의미는 우리 스스로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었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 스스로 기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수익금 일부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해줄 일도 많으니 열심히 해보자"고 말했다.

주민들의 생활 공동체 협동조합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최저 생계비 확보와 작업 안전을 목표로 한 '마중물' 협동조합도 있다. 작업하는 어르신들과 신가동 주민들이 함께 조합원으로 참가했다. 지역사회가 어르신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경우다.

마을 공동체 만들기가 목적인 협동조합도 생겼다. '선운여성친화마을'은 어르신·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만들었다. 조합원들은 단지 내에 공동작업장·반찬가게·북카페를 열고 자급자족하는 아파트 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들이 제2의 고향인 한국사회에 정착하고, 동시에 자립의 기반을 닦기 위해 만든 '고려인 마을' 협동조합도 있다. 이들은 현재 어린이집·여행사·마트 등을 운영하며 고려인 공동체 설립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런 협동조합들이 자리를 잡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면 상부상조하던 옛 마을 공동체의 모습을 도심에서 볼 날도 머지않았다.

고려인들의 공동체 만들기를 꿈꾸는 '고려인마을' 사람들이 협동조합 설립 절차와 방법에 대해 듣고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시대의 흐름을 읽으니 협동조합이 보여

민형배 광산구청장이 협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한 것은 오래 전. 민 구청장은 이렇게 말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승자독식과 무한경쟁을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1%를 위해 99%를 희생시키는 경제가 전부라고만 배워왔다. 150여 년 전통에, 99%가 공생하면서도 튼튼하게 뿌리내린 협동조합이라는 대안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양극화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경쟁과 이윤보다는 협동과 연대로 움직이는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때마침 2011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됐고, 이듬해 12월 발효될 것으로 예고됐다. 조합원의 자치를 바탕으로 1인 1표의 민주주의의 원리로 움직이는 협동조합은 자치단체의 입장에서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자치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산실이 바로 협동조합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제도적으로 뒷받침 할 정책 '착착'

광산구는 지난해 초부터 발빠르게 움직였다. 협동조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더니, 8월에는 전담부서인 '협동조합지원팀'을 신설했다. 협동조합지원팀에서는 우선 협동조합 교육에 주력했다. 앞서 밝혔듯이 우리나라는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 협동조합 문화가 거의 없는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광산구는 기초이해와 실무로 나눠 총 6회의 '협동조합학교'를 열었고, 3회에 걸쳐 특강도 진행했다.

지난해 9월 광산구에서 첫 '협동조합학교'가 열렸다. 이 학교는 협동조합지원팀과 아이쿱생협이 공동주관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난해 12월 1일 이후 여기저기서 협동조합에 대한 문의·설립이 이어졌고, 이런 실무를 도맡아 처리한 곳도 협동조합지원팀이다. 올해 1월에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협동조합 지원 조례'도 제정·공포했다. 지자체에서 협동조합을 지원·활성화하고, 협동조합 생태계를 조성할 제도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지역 금융기관과 협동조합 자금지원 업무협약

이어 2월에는 지역 상호금융기관인 '광주어룡신용협동조합'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초기 자본과 운영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신생 협동조합들의 경영난을 해소해주기 위해서였다. 어룡신협은 연 10억 원 규모로 지역 협동조합에게 무이자 또는 저리로 자금을 대출해 주기로 약속했다.

어룡신협 김춘석 이사장은 "1월부터 광산구를 찾아 협동조합 정책지원자금에 대해 많은 의견을 교환했다, 업무협약서에는 신협과 지역 협동조합이 상생하는 방법을 담았다"며 "신협은 '사회공헌반' '협동조합연구회' 같은 충분한 재무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 인력을 활용해 신생 협동조합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손익분기점까지 지원할 수 있는 금융상품과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첫 대출도 이미 이뤄졌다. 지난 4월 '클린광산' 협동조합이 시중 금리보다 낮게 5000만 원을 어룡신협으로부터 빌렸다. 광산구는 어룡신협 이외에도 연 100억 원 규모의 협동조합 지원기금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 금융권과 계속 협의 중이다.

구에서 설치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주민참여 중간지원조직인 '광산구공익활동지원센터'도 지난 4월에 개소했다. 광산구는 이미 이곳에 협동조합 교육을 위탁했고, 6월 '사회적경제 아카데미'가 예정돼 있다.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는 앞으로 이런 교육 이외에도 협동조합 인큐베이팅·협동조합 생태계 조성을 위한 문화 확산 등의 역할도 담당하게 된다.

지난 4월 광산구와 협동조합 지원 업무협약을 맺은 광주어룡신협이 '클린광산'에 첫 대출을 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올해 6월에는 '협동조합의 집'도 생긴다. 광산구는 협동조합과 협동조합 연합체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거점으로 이 공간을 꾸민다는 방침이다. 나아가 이런 모든 여건이 갖춰지면 본격적인 민간주도 협동조합 운동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지원팀은 설립 실무 위주의 지원만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협동조합 지원 정책의 핵심은 '자생력' 키우기

협동조합은 '자생력'이 생명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광산구의 각종 정책이 자칫 협동조합의 의존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사회는 사회적기업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고용률·취업률·창업률 같은 실적을 강조하는 정부지원 앞에 사회적기업의 자생력은 설 자리가 없었다. 그 결과 정부지원 중단 이후 살아남은 사회적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민 구청장은 이와 관련해 "광산구의 협동조합 지원 정책의 핵심은 '자생력' 키우기에 있다"며 "단기적 성과나 수치적 실적에 연연하면 협동조합은 망한다, 광산구가 직접적인 지원을 꺼리고 민간주도의 협동조합 활동을 활성화하려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광산구의 협동조합 지원 정책은 민간의 자율성을 높이고, 시행착오를 줄여보자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협동조합은 보통 서민들이 경제적 목적으로 시작한다. 단 한 번의 실패도 뼈아픈데, '협동조합은 생존 자체가 성공'이라는 말은 엄연한 현실이다. 경쟁과 이윤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협동조합은 협동과 연대를 문화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혼자 빨리 가자'가 아니라 '여럿이 멀리가야 한다'라는 협동조합의 구호를 명심해야 한다."

명실상부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메카'는 강원도 원주시다. 40년 넘는 세월 동안 시민들의 자발성을 바탕으로 협동과 연대의 힘을 차곡차곡 쌓아온 결과다. 일부 생협과 신협을 제외하면 광산구의 협동조합의 역사는 겨우 5개월 남짓이다.

광산구 협동조합의 미래가 어떨지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갈 길 또한 멀다. 그렇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필요를 지자체가 먼저 이해하고 준비하고 실천했다는 점 하나로도 광산구의 협동조합 정책은 의의가 있다. 지방자치의 본질이 '자치'와 '참여'라고 봤을 때, 다른 지자체에도 큰 시사점을 던질 것이다.
#광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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