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불량부품'만 문제가 아니었다

[2013 전국투어- 부산경남⑨] '노후' 고리원전 1호기, 대안은 없나

등록 2013.05.29 22:28수정 2013.05.3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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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5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부산경남입니다. [편집자말]
원전 '불량부품 서류조작'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가 된 원전은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1호기다. 그러나 불량부품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3․11 일본후쿠시마원전 참사 1주기가 될 즈음인 2012년 3월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 은폐사건이 터졌다. 전국 23개 원전에서 고장 정지와 사고가 잇따르고 그해 11월엔 가짜 시험성적서를 첨부한 '짝퉁부품'이 주요 원전에 장착된 것이 적발돼 영광 5·6호기 등 대형 원전의 가동 정지사태가 빚어졌다.

지난해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고리원전 1호기 재가동 허용 결정 이후 지역 주민의 이해와 납득이 없이는 재가동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지식경제부 장관도 8월 전력대란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재가동을 강행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3월에 확정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설계 수명을 넘긴 원자로의 재가동을 전제로 하는 데다 지난 4월엔 한국수력원자력이 연장시한까지 4년 밖에 남지 않은 고리원전 1호기에만 2382억원을 들여 부품교체에 들어가기로 해 2차 수명 연장을 위한 준비 절차로 보는 우려 섞인 시각도 많다.

게다가 최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 1호기와 경북 경주 월성 1호기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이달 중에 시작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데 대해 지역환경단체와 주민들은 "노후화 원전 가동 연장을 위한 면죄부로 활용해선 안 될 것"이라며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후쿠시마원전 참사를 계기로 노후화된 고리원전 1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가 하는 것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불량부품 문제로 원전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원자력행정에 대한 불신을 털어내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불신 받는 원자력 행정

 부산 기장군 장안읍 소재 고리원전 1호기(오른쪽)와 2호기.
부산 기장군 장안읍 소재 고리원전 1호기(오른쪽)와 2호기.윤성효

원전사고의 은폐는 대조앙의 전조라는 사실을 후쿠시마원전 참사에서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원자력 내부의 부패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방지할 것인가 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지난해 3월에 밝혀진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 은폐사건은 고리원전 제1발전소장의 조직적 은폐 기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상부 보고 지체, 원자력안전위 주재관의 감독 부실 등 '원자력행정'의 무책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런 가운데 터진 원전의 부품 납품비리사건은 원전이 비리의 복마전으로 원전행정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해 원자력안전위 차원에서 2~3개월에 걸쳐 고리 1호기에 대한 안전점검을 벌이고, IAEA(국제원자력기구) 특별점검반이 현지에 와서 조사를 벌여 '기술적인 면에서 안전하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고리지역 주민들은 물론 국민 대다수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후쿠시마 원전 참사는 은폐·축소를 계속해온 일본 원자력행정의 '비밀주의'와 '안전신화'가 빚은 인재라는 게 중론이다. 노후화된 후쿠시마원전의 안전문제는 사고 전에도 심각했고 은폐사고 또한 일상화돼 있었다. 고이즈미 정권 시절인 2002년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수증기건조기에 발생한 균열사고를 도쿄전력이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이 원전 제작사인 제너럴일렉트릭 파견기술자의 고발로 드러났다. 당시 도쿄전력의 국유화까지 거론되는 등 사회문제가 되자 얼마 뒤 도쿄전력 회장·사장 등 최고경영자 5명이 물러났다. 당시 조사 결과 도쿄전력의 원전 정기검사기록에 후쿠시마 1, 2호기 등의 노심내 설계에 균열이나 그런 징조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기는 등 은폐사건이 더 드러났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 뒤 감독기관인 경제산업성 고위 관료들의 도쿄전력 낙하산 인사가 관행화돼 유착관계가 심해지면서 원전은 계속 증설되는 반면 안전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부패구조가 형성됐던 것이다. 이러한 부패구조를 잡지 않으면 원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국민에게 신뢰를 얻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부산시 원자력안전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원자력안전위의 결과발표회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정부의 대국민 설득 방법과 절차상의 문제가 크다는 점을 피부로 느꼈다. 마치 원자력안전위의 안전점검이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원자력안전위는 지난해 고리 1호기 안전점검에서 시민단체가 제기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노후화된 원자로 용기의 안전성에 대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운전심사(2006~2007) 및 제3기관의 검증평가(2011) 결과를 놓고 자료 재검토만 한 뒤 '기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고 불안을 가중시켰다.


이번에 원자력안전위가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를 대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환경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원안위(원자력안전위원회)가 채택한 유럽연합의 스트레스 테스트 방식은 일본 후쿠시마 사태와 같은 사고에 대비한 지진·해일 대책에 대한 안전점검일 뿐 설계수명이 다된 노후 원전의 종합적 안전진단이 될 수 없음에도 이를 통해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으로 가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유럽연합식의 스트레스 테스트가 아니라 지난해 7월 11일 부산을 찾은 일본 도쿄대학 이노 히로미츠 명예교수(공학박사, 금속물리학 전공)가 주장한 것과 같이 고리 1호기의 6개 중 마지막 남은 감시시편 하나를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감시시편은 실제 원자로용기가 받는 중성자 조사량보다 많은 양을 받도록 노심 가까이에 감시용기를 설치하여 수명말기 원자로 용기 재료의 건전성을 미리 확인하는 것으로 원자로 압력용기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그리고 원자력안전위는 마땅히 고리원전 주변 지역의 원전재해예방 및 발생시 구체적 대책도 함께 제시하고 향후 원전의 폐쇄정책에 대한 로드맵, 그리고 사고은폐사건 및 납품비리사건의 발본색원을 위한 관리감독 책임을 확실히 묻고 예방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원자력안전위 위원 구성의 다양화가 필요한데 위원회에 반대의견을 지닌 반핵전문가와 원전 입지 광역·기초지자체 단체장 및 주민대표 등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통상자원부 등 원전 감독기관의 고위간부가 한수원이나 한전 등에 낙하산 인사로 가는 구조를 원천적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베크의 법칙'이 필요한 이유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고리원전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2012년 4월 27일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대형 '배너'를 제작해 펼쳐 보이는 활동을 벌였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고리원전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2012년 4월 27일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대형 '배너'를 제작해 펼쳐 보이는 활동을 벌였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안전이라는 것은 객관적이 될 수 없다. 안전은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원전의 안전성에 관해서는 소위 '베크(Beck)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베크의 법칙이란 1965년 미국의 베크 박사가 1964년까지 과거 21년간 미국 원전 246기의 원자로 및 원전 사고기록을 분석해 발표한 논문의 결론이다.

"첫째, 원전 사고의 경우 상상 가능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둘째, 사고 시에는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사고는 예상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원인으로 일어나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상상 가능한 사고'란 원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사고를 말한다."

반원전학자인 오쿠노 고야(荻野晃也) 전 교토대 공학부 교수는 2011년 9월 도쿄에서 행한 한 강연에서 "원전 추진파들이 철저히 베크의 법칙을 무시하고 있는데 원전 추진파의 생각이야말로 오히려 희망적 관측으로 시종일관하고 있어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고 "지난번 후쿠시마원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비록 안전대책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그 뒤 예상치 못한 원인으로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면에서 국민의 원전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불신을 극복하는 길은 고리 1호기를 이번 기회에 폐로하는 것이다. 국정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의 문제이다. 고리 1호기 폐쇄 결정이야말로 정부가 국민에게 내놓을 수 있는 원전의 안전관리에 대한 대정부 신뢰성의 최소한의 증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명박 전 정부의 원전르네상스정책을 재고해 시대를 역행하는 원전의 증설이나 수출대신 원전의 연구 홍보에 들어가는 엄청난 재원을 재생에너지 연구 개발로 전환하고 대국민 에너지절약캠페인을 적극 펼쳐야 할 때다.

원전폐로에 대한 좋은 사례로 독일의 북동부 루브민(Lubmin)지역의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원전을 들 수 있다. 2012년 5월 5일 일본 NHK BS1 다큐멘터리 웨이브(Wave) '탈원전에 요동치는 마을-독일 세계최대 원전적지(跡地)' 프로그램은 22년 전 폐지된 독일 그라이프스발트원전의 폐로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고리원전의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독일 통일 직후인 1990년에 옛 소련제 원전에 대한 불안여론이 높자 이곳 원전 5기를 독일정부가 정치적으로 폐로를 결정한 것이다. 폐로 22년이 지난 지난해까지 해체 및 오염제거작업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동안 든 비용이 약 41억유로(약 6조원)이며, 앞으로 20~30년간 더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라이프스발트원전 지역은 폐원전의 터빈건물에 해양풍력발전기를 제조하는 덴마크기업을 비롯해 폐원전 부지안에 모두 30여개의 각종 대안에너지기업이 입주해 있는 재생가능에너지산업단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 원전지역의 오염 제거 및 해체작업을 하며 사용후 폐연료봉을 용기에 보관하는 중간저장시설을 관리하는 EWN사는 민간기업이었던 것이 2000년 국유화됐다고 한다. 현재 이 회사와 관련돼 일하는 사람만 2000명으로 과거 원전 운전당시의 5000명에는 못 미치지만 20년 이상 계속 일을 해오고 있으며 그간 노하우가 쌓여 러시아를 비롯해 5개국 7개 원전의 해체작업을 수주하는 등 새로운 탈원전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언론에선 '루브민의 기적'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독일 그라이프스발트원전의 폐로 과정에서 배울 점

이런 점에서 볼 때 고리원전 1호기는 독일 그라이프스발트원전의 폐로 과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거기에 아이디어를 하나 더 보태자면 고리 1호기를 지연해체하는 방식을 통해 '고리차세대에너지파크'로 리모델링해 근대산업유산을 살리면서도 전 국민의 '원전안전 및 대안에너지교육의 장'으로 삼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한편 고리원전이 있는 기장군 일대의 원전방재대책을 실질적으로 세워야 한다. 최근 탈원전선언을 한 스위스의 사례를 보면 종래 5기의 원전이 비교적 인구밀집지역 인근에 있었는데 '원자력과의 공존'을 인정하고 전 국토를 3개 구역으로 나눠 사태의 심각도에 대응한 긴급시 대책을 면밀히 수립해왔다. 가옥신축시 지하실이나 피난처 확보를 의무화했고, 공기청정기를 부착한 공동대피소도 곳곳에 마련돼 있으며 각 지구의 방사선량을 실시간으로 자택에서 체크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한다. 부산시 또한 시 원자력안전대책위원회를 좀 더 적극적으로 운영해 고리 1호기 폐쇄 및 고리핵단지 중단의 목소리를 중앙정부에 내고, 지난해 3월 고리 1호기 폐쇄를 촉구하는 대정부 결의안을 채택한 부산시의회도 좀 더 적극적인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세계적으로 '원자로입지 심사지침'은 '혹 일어날 지도 모르는 최악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대도시 인근은 피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부산 고리지역은 이렇게 핵벨트화돼 가도 좋은 것일까.

이런 면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1월 '에너지 절약과 생산으로 원전1기 줄이기'와 '시민 참여형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획기적이다. 서울시는 서울 시민들이 평소 사용하던 전력소비량을 13% 정도 줄이면 핵발전소 1기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선언을 왜 정작 부산 울산 경남의 지자체 단체장은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지난해 2월에는 서울 노원구 김성환 구청장을 비롯해 여야를 망라한 전국 45개 지방자치단체장이 '탈핵 에너지 전환을 위한 도시선언 심포지엄'에 참석해 에너지 조례 제정, 에너지 협동조합 설립을 통한 신재생에너지 보급, 녹색 일자리 창출, 수명을 다한 원전 가동 중단과 증설 반대 등의 탈핵 선언문을 발표한 것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원전은 국책사업으로 안전대책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항이다. 이 때문인지 원전 운영에 그동안 지자체는 아무런 권한이 없고 오로지 사고수습에 대한 책임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 원자력안전위를 비롯해 각종 원전행정에 지자체가 적극 참여하도록 관련 법을 바꿔야 한다. 이제부터는 원전을 '지방자치의 문제'로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 단체장과 시의원은 특히 '에너지 지방분권'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참사를 계기로 '과학기술을 주민의 손에'라고 하는 새로운 주민자치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위험한 원전을 재정이 약한 지역에 보조금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유치토록 하는 구조를 고쳐야 한다. 우리는 1986년 체르노빌원전참사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했다. 이제 후쿠시마원전 참사의 교훈마저 더 이상 남의 나라 일로 보아선 절대 안 된다. 후쿠시마원전 마을의 길로 갈 것인지, 그라이프스발트원전 마을의 길로 갈 것인지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이며, 부산시 원자력안전대책위원회 위원(시민단체 추천)입니다. 2013년 '녹색평론 5․6월호'에 '고리원전 1호기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글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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