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 골목파란만장 연애소설의 배경
이희동
버스종점 변두리 마을 정릉, 즐비한 술집 속에 천연덕스럽게 들어 앉아있던 방배동, 골목 하나 사이에 두고 어쩜 그리 다를 수 있을까 싶었던 홍대와 합정동, 재개발에 밀려 하루아침에 몇 천 만원 뛰어버린 전세금에 밀려났지만 낯선 서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한강의 야경을 볼 수 있었던 동네 옥수동, 남편의 직장이 인천이라 선택의 여지없이 서울의 서쪽 끝에 둥지를 틀었던 신혼집 오류동, 그리고 다시 남편의 이직으로 서울을 횡단해 이사 온 서울의 동쪽 끝 강일동.
서로 다른 얼굴이지만 내겐 모두가 '서울특별시'변두리 동네의 정겨움, 번화가 뒷골목 반지하방의 또 다른 낭만, 젊음의 거리와 오래된 재래시장 사이의 절반의 안정, 달동네 쪽방이지만 밤이 되면 트리처럼 반짝이던 서울의 야경, 구로공단의 끝 서울의 가장 싼 땅값에 지어진 물류창고 너머로 보이던 매연 속에서 더욱 붉었던 노을, 허허벌판에 계획적으로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황량함. 아홉 번의 이사를 하며 내가 겪은 서울의 아홉 개의 동네는 제각각 서로 다른 얼굴이었지만 내겐 모두가 '서울특별시'였다.
잦은 이사로 지치기도 하고 대출을 받아서라도 내집을 마련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불안한 부동산 시장과 빠듯한 살림 속에 아직 '서울의 내집'은 먼 이야기이기만 하다. 그래도 자주 옮긴 이사 덕에 서울 사람보다 더 많이 서울의 골목, 언덕, 동네를 겪었고, 한때 '우리 동네'였던 곳이 아홉 개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