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횟집이 아닙니다, 군청입니다

강원 화천군, '선등거리' 점등 시작

등록 2013.12.05 11:12수정 2013.12.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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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30일, 선등거리 점등식이 있었다. ⓒ 신광태


"…다섯, 넷, 셋, 둘, 하나, 점등!"

화천읍내에 운집한 수많은 관객들이 카운트다운 끝에 '점등'을 외치자, 수천 개의 산천어燈(등)에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트리가 점등되는 순간이었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참여한 화천 주민들을 비롯한 관광객들은 일제히 환호를 올리며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이 등은 2014년 2월 14일 정월 대보름까지 불을 밝힌다.


지난 11월 30일 오후 6시.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내에선 선등거리 점등식이 열렸다. 산천어 모양의 등(燈)을 만들어 불을 밝히는 행사. 시행된 지도 벌써 5년이 됐다.

2009년, 산천어축제가 개최된 지 7년째 되던 해, 화천군은 고민에 빠졌다.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참여하는 산천어축제, 그들은 저녁만 되면 썰물처럼 읍내를 빠져나갔다. 인근 시(市)에 산천어축제에 참여했던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화천군은 분석에 착수했다. 답은 아주 간단히 나왔다. 야간에 즐길 만한 문화가 없다는 것.

"읍내 도로전체를 돔 형식으로 꾸미고 이곳에 산천어로 만든 등을 매달면 어떨까? 산천어 거리. 또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2009년 봄, 산천어축제를 만든 정갑철 화천군수(현 3선 군수)의 제안으로 선등거리를 탄생시켰다. 그 많은 등을 만들 사람들이 필요했다. 어르신들을 각 마을 노인정에 모셨다. 산천어등 제작. 노인들의 일거리 창출로 연결되는 계기를 마련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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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등거리, 이 거리를 거닐면 누구나 신선이 된단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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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등거리, 500여미터의 거리에 수천개의 산천어등이 매달렸다. ⓒ 신광태


"화천 3락(樂), 이 거리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습니다. 신선이 되는 즐거움, 심신이 아름다워지는 즐거움, 복을 듬뿍 받는 즐거움, 이곳을 선등거리라 하면 어떨까요?"


화천군 다목리 감성마을 촌장인 이외수 작가의 말에 산천어등거리는'선등거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거리를 거닐면 누구나 신선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5년이 되었는데 아직 신선이 되었다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어느 관광객의 농담에 이 작가는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면 그것이 신선이다"라고 답했다. 500여 미터의 선등거리에 들어서면 한겨울 혹한에도 포근함이 느껴진다. 꿈길을 걷는 듯 한 상상에 사로잡힌다. 만나는 사람마다 오랜 친구 같다.

도로 한복판에서 휴대폰을 이용해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도 멈춘다. 좀처럼 빵빵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 작가의 말처럼 마음에 평화를 얻었기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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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앞에 매달린 대형 산천어등(燈) ⓒ 신광태


"여기 횟집 아녜요?"

선등거리 점등식을 시작으로 화천군청 정문 앞에는 2미터여 크기의 대형 산천어등에도 불을 밝힌다. 지난해 어스름한 저녁, 민원실로 한 무리의 관광객이 찾았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직원의 안내에 방문객들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산천어 횟집인 줄 알고 찾아왔다'고 말했단다.

산천어등(燈)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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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부터 산천어등을 만들어 왔다는 심희자 할머님 ⓒ 신광태


"손주들 용돈 벌이는 되지, 늙은이가 그거면 됐지. 뭘 더 바라."

지난달 방문한 산천어공방, 14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산천어등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철사를 구부려 물고기 모양의 틀을 만드는 것은 할아버지 몫이다. 철사에 창호지를 붙이고, 빨강, 노랑, 파랑 등 현란하게 물감칠을 한다. 마지막으로 비를 맞아도 훼손되지 않도록 니스를 칠하는 과정 등 할머님들의 손놀림은 능숙했다. 선등거리 첫해인 2009년부터 이 작업을 해왔다니 이 분야에 관한 한 베테랑들이다.

노인들의 건강을 생각해 27명이 2교대로 작업에 임한다. '일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또래 노인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근무시간인 4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를 정도란다.

"왜 있잖아. 김 노인 옆집에 10년 동안 살던 하얀 강아지. 걔가 어제 차 사고로 죽었대."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만났는데."

산천어등을 만드는 '화천공방'은 산천어등을 만드는 장소 외에 지역 노인들의 정보교류를 위한 공간이기도하다. 어느 집에서 딸을 낳았다는 이야기, 박 노인의 팔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 누가 다음 군수선거에 나올 거라는 이야기 등 정치적인 이야기도 곧잘 등장한다.

"내가 만든 등에 누가 구멍을 냈어. 내 밤새 지키고 있다가 이놈을 잡을 거야."

노인분들의 산천어등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매년 2만5000여 개의 산천어등을 손수 만들어 왔기 때문이겠다. 선등거리에 걸린 등을 매년 뜯어내 창호지 붙임 작업을 반복한다. 색이 바래기도 했거니와 볼품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할아버지 할머니들껜 연중 일거리가 생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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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어 소망엽서, 어느 소녀의 글귀에 가슴이 찡했다. ⓒ 신광태


"엄마, 아빠 내가 '왜 그렇게 많이 살아?' 할 때까지 살아!"

산천어 등에는 소망엽서도 붙인다. 남친을 만나게 해달라는 소망, 취직을 하게 해달라는 소망 등 수십만 개 각양각색의 소망지가 붙는다. 지난해 그 중 어느 한 소녀의 소망엽서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얼마나 부모님을 사랑했으면 자신이 부모님 수명을 컨트롤(?) 하겠다는 걸까.

2014 새해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등거리를 거닐며 소원을 기원하고 모두 신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관광기획담당입니다.
#선등거리 #산천어등 #산천어축제 #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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